성도로서 자신을 돌아보다..
무너져 숨을 헐떡이면서도 세례는 삶의 이유였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것.
새 생명으로 다시 거듭남으로(요3:5)
그리스도와의 연합(롬 22:3~4).
따라서 세례받음은 "나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겠다" 는 영적 정체성의 선언 인것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나를 막아섰던 일련의 사건들(전편)을 모두 통과하고, 마침내 세례를 받은 지 며칠 뒤였다.
꿈을 통해 뜻 밖의 세 곳으로 초대되어졌다.
나는 무릎을 붙이고 두 팔을 깍지 낀 채,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고 있었다.
몸이 물을 가르며 내려가는 동안 슈웅— 하고 길게 울리는 물살의 기류가 귓가를 스쳤다.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다만 피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숨이 막히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편안한 호흡 사이로, 나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자신을 의식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닥에 닿는 ‘멈춤’의 감각이 느껴졌다.
‘이제 끝이니, 올라가겠지.’
그 생각과 거의 동시에, 내 몸은 가라앉은 만큼 아주 긴 거리의 상승을 시작했다.
어둠을 헤치고 위로 밀려 올라가는 동안, 나는 묘한 해방감과 무중력의 떨림을 동시에 느꼈다.
그 상승이 잠잠히 멈추었을 때,
‘다 올라왔나?’ 직감하는 순간에,
내 눈이 저절로 떠졌다.
그리고 나는, 뜻밖의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눈앞에는 마치 한창 무르익은 잔치의 중심에 들어선 듯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그 모습은 내가 세상에서 본 그 어떤 장면과도 달랐다.
그들의 얼굴은 꽃보다 더 아름답고 눈부셨다.
‘해 같이 빛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그 순간 처음으로 실감했다.
서양인의 모습들이었지만, 그들의 특징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얼굴에 스며 있는
환희와 사랑의 충만함이었다.
빛이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듯했고, 존재 자체가 기쁨의 결로 이루어진 사람들 같았다.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넋을 잃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무리 사이를 지나가면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발걸음만 겨우 옮길 수 있을 정도였다.
장면이 전환되듯, 나는 또 다른 한 곳에 서 있었다.
넓은 광장 같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고, 그곳에는 각 교회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끝없이 모여 있었다.
oo교회, oo교회, oo교회…
각기 다른 교회의 이름이 적힌 팻말이 줄지어 있었고, 푯말 아래에는 마치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인 듯 한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몇몇이 함께 모여 서 있기도 했고, 혼자 푯대를 들고 서 있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당시 출석하던 교회의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푯대를 들고 있던 사람은 목사님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는 전도사는 아니었지만, 예배 때마다 찬양을 인도하던 청년이었다.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긴 듯, 그는 늘 얼굴이 붉게 상기될 정도로 뜨겁게 찬양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까지도 찬양의 일부처럼 보일 만큼, 전심을 다해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말없이 교회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영문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들의 얼굴과 표정을 살피며 그 무리를 지나쳤다.
또다시 장면이 전환되었다.
나는 상상조차 못했던, 전혀 뜻밖의 장소에 서 있었다.
그곳은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공간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영역이, 빽빽하게 들어선 판잣집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그 거대한 풍경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둘러보았다.
판잣집들은 일정한 규칙으로 지어져 있었다.
좁게 난 긴 직선의 길이 정면으로 뻗어 있었고, 그 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같은 모양의 집들이
연결되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길 끝 너머까지,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같은 형태가 반복되었다.
집의 뒷편에도 붙어서 바로 똑 같은 구조로 연결되어있었다.
앞뒤가 맞닿은 채 한 칸, 또 한 칸…
마치 바둑판 위의 바둑알처럼, 틈 없이 붙어 있는 구조였다.
내 시야에 잡히는 범위만 해도 너무 넓었고, 이 광대한 판잣집 지대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집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 구조물은 ‘집’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웠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마치 개집 같은 작은 칸막이들이었다.
그런데 내 시선을 붙든 것은 각 칸 앞에 한 사람씩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릎을 끌어안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두 팔로 다리를 감싼 자세 그대로, 꼼짝없이 굳어 있었다.
본 광경을 표현
나는 그 의문의 장소 앞에서 숨을 고르며, 그 들의 표정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온 세상의 분노와 절망을 한데 짜 넣은 듯한 표정이었다.
불만, 원망, 분노, 뒤늦은 회환 (?)…,
그 모든 감정이 얼굴 위에서 잿빛으로 뒤엉켜 있었고, 마치 이를 악다문 듯한 모습으로까지 보였다.
그들은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모두가 바닥만 뚫어지게 바라본 채, 깊은 어둠 속에 묶인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지?
그리고 저 사람들은 왜 저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걸까….’
나는 설명할 길 없는 의문을 품은 채 그들을 지켜보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세례 후 꿈에서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세 부류의 사람들과 세 장면을 연달아 보게 되었다.
너무 생생하고 선명한 광경이었다.
눈을 뜨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방금 전까지 선명하게 펼쳐졌던 장면들을 되뇌었다.
첫 번째는 분명 천국의 광경에 가까웠다.
빛, 환희, 사랑의 충만함,
내가 이 땅에서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모습들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두 번째 장면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을 동일하게 축소해 놓은 듯했다.
교회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어떤 팻말 앞에는 한 사람만 홀로 서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서도 목사님의 둘째 아들이 교회의 팻말을 붙들고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교회 기둥을 붙잡고 있는 귀한 존재 같은,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교회마다 기둥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러나 세 번째 장면은 달랐다.
성경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설명할 언어조차 마땅치 않은 생소한 공간.
집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한 사람이 들어가 앉아 있을 정도 크기의 칸막이집.
그리고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절망과 분노와 원망이 뒤엉킨 얼굴로 바닥만 응시하고 있던 사람들.
그곳은 천국도 아닌 듯했고, 그렇다고 지옥이라고 하기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도대체 그곳이 어디인지,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마음 한편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의문과 묵직한 여운만 계속 남아 있었다.
조심스런 의문이지만, '혹 바깥어두운 곳?!'.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비추어 생각해봤다.
"그러나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8:12)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던지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마22:13)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마25:30)
굳이 신학적인 표현을 옮긴다면,
집안 '밝은곳'은, 초청받은 자들이 즐거움과 교제 안에서 머무는 장소.
'바깥 어두은 곳' 은 초청에서 제외된 자들이 서 있는 자리로서,
즉, 하나님의 통치와 생명, 기쁨에서 벗어난 영적 상태.
또한 '빛'은, 종종 하나님 임재. 구원, 진리를 의미.
'바깥 어두운 곳'은 곧, 하나님의 임재가 닿지 않는 곳,
단순히 '벌 받는 장소' 가 아닌 관계의 부재를 나타내는 표현.
예수님의 비유에서 이 말씀의 표현은 언제나 초대받았으나 응답하지 않은 자, 맡긴 사명을
저버린 자에게 등장한다.
'울며 이를 간다'는 표현은
절망, 통곡, 분노, 뒤늦은 회환 을 나타내는 당시 유대적 상징임을 신학적 해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마8:12; 마22:13; 마25:30.)중,내가 꿈과 연결해 주목한 부분은
옷을 갈아 입지 않은 채 잔치에 들어온 사람이었다.(마 22:13)
그는 예복을 입지 않은 자였고,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은혜는 받되 변화는 거부한 자" 로 해석된다.
예수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향한 말씀이 아니라, 잔치 안까지 들어온 사람인데,
신학적 해석으로는 "겉으로는 경건하지만 속은 변하지 않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의 그곳은, 성경에서 상징하고 있는 지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천국도 아니었다.
그러나 영적으로 암울한, 절망과 같은 현장이었다.
지금도
그곳이 어딘지, 왜 그곳을 보여주셨는지, 그리고 그곳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간혹 주님께 묻기도 하지만, 언제나 침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