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 <논어>
<Tasty G 고전 칼럼 5>
살아남은 책
- 공자 <논어>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맹무백문효 자왈 부모유기질지우)
맹무백이 효를 묻자 공자는 말하였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
(논어 2-6)
공자는 늘 자식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효라고 했다.
부모의 일이란 그저 자식걱정이다.
희랍철학의 창시자가 탈레스라면, 중국철학의 창시자는 공자와 노자다. 기원전 5세기경 중국인들은 하늘을 의심하고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논어>는 노나라에서의 공자 말년 5년간의 삶을 담은 어록이다. 노나라는 문왕이 주공(문왕의 아들로 주나라의 기틀을 다짐)에게 하사한 나라로 주공의 아들 백금이 통치했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송나라의 후예로 거구의 무인이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노나라 사람이다. 공자 역시 송나라의 후예로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종교적인 송나라와 인간적인 노나라의 영향을 받은 공자는 융합형 인재다.
숙량흘은 공자를 낳은 후 안징재를 떠났다. 어머니 밑에서 자란 공자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호학(好學)과 음악(音樂)이다. 음악에 탁월했던 공자는 “나는 불완전하고 허점투성이지만 배우는 데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적이다.”라고 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도둑들이 성읍 밖에 모여 살았다. 이들은 주로 무덤을 파헤쳐 나온 유물로 생계를 이어갔다. 체제를 못 견디고 자유로웠던 이들에게 공자가 문자와 음악을 가르쳤다는 풍문도 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워서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뜻을 같이 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 1-1>
공자는 선비의 본질은 공부(工夫)라고 했다. 공부의 일본어 번역은 ‘벤쿄오 수루(힘써서 억지로 한다)’다. 중국어로는 ‘니엔수(책을 읽다)’다. 공부의 어원은 중국 무술 ‘쿵푸’다. 속뜻은 ‘신체적 단련을 통해 장인의 경지에 오르는 일,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즉 공부란 ‘운동을 통한 신체적 단련과 독서를 통한 사고력 훈련’이다.
욕망은 몸의 관성이다. 욕망을 제어하는 것 또한 공부다. 그렇다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논어>는 ‘스승을 따라하며, 자신의 느낌을 키우는 것’이 공부법이라 서술했다.
스승에게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스승이 공부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좋은 스승이란 호학하는 사람이며, 중국인들이 공자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는 것도 공자가 공부를 대했던 태도에서 연유한다.
공자는 <논어 1-1>에서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이야말로 군자”라고 했다. 거리를 보면 명품일색이다. 필자도 명품을 좋아한다. 유행에서 다소 자유로운 디자인과 우수한 품질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경제력이 뒷받침 된다면 명품을 누리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거리에서 보게 되는 명품일색은 분에 넘치는 모습이다. 타인을 의식하고 우월함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의 표출이다. 반군자적이다.
개인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신자유주의의 조작이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자유란 ‘소비의 안에서의 자유’다. 아이쇼핑하러 백화점에 갈 때와 몇 천 만원을 들고 백화점에 갈 때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모습은 다르다.
‘소비야말로 우월함의 바로미터’라는 신자유주의적 강박에 맞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을 위한 건전한 소비의 지혜를 <논어>를 통해 배울 수 있다.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자왈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라,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할지니.”
<논어 1-16>
수많은 가면을 쓰고 하루를 산다. 가면은 타인과의 관계유지 타인으로부터의 인정받고 싶음을 전제한다. 가면을 벗고 공자의 말처럼 내가 남을 알지 못할까 걱정하다보면 한결 더 가볍고 한층 더 자기만족적인 삶을 경험 할 수 있다.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말 잘하고 표정을 꾸미는 사람치고 인한 이가 드물다”
<논어 1-3>
말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다.”는 의미다. 상대의 입맛에 맞게 말을 하려면 과장과 왜곡이 필요하다. 진실을 진실로 전할 수 없다. 잘하는 말은 재미를 주지만 진실은 감동을 준다.
<논어>는 구닥다리 중국철학이 아니다. 강박적 소비로부터 삶을 지키는 지혜, 관계 맺기에서의 지혜, 진실을 알아보는 지혜를 일러준다. 고전이란 ‘살아남은 책’이다. 오랜 시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주었기에 오늘도 고전은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