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야>하겠다는데 왜 시비야?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낭독극 형식으로 꾸며 봤습니다.

by 무글이

등장인물

: 1. 해설 & 연출(여배우가 1인 2역) 2. 조연출

3. 노배우들 - 천, 김, 박, 백(여)


해설 코로나로 인해 일 년 넘게 관객의 박수를 받지 못한 어느 도시의 시립극단.

셰익스피어 작품을 파격적으로 만들어 새로운 연극의 시대를 열어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지역 연극의 역사와 공존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고 싶었던지 원로 배우들에게도

오디션 제안을 하게 되는데..


조연출 여깁니다. 스텝회의 다 끝나가니까 연출님 곧 오실 겁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떻게 이렇게 네 분이 똑같이 일찍 오셨네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언제나 약속시간보다 일찍 오는 법!”

우린 무대를 사랑하니까요.

조연출 ( 짧고 큰 박수 ) 역시! 대단하십니다.

아! 전 이번 작품에 조연출을 맡고 있는 강석훈이라고 합니다.

선생님들 앞에 있으니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곰 곯리기 하는 개소리 고마 하고 가서 황천길 재촉하는 믹스커피나 타 와봐라.

조연출 아 예!

으이그~ 청승은.. 저기 말볼리오 같은 후배님~.

해설 거의 땅에 닿는 코트를 입고 온 여배우는 지갑에서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낸다.

요 앞에 카페 새로 생겼던데 미안하지만 거기 가서 황천길 더디게 만드는 까페라떼 네 잔 부탁해요.

후배님도 즐겨 먹는 거 하나 마시고..

조연출 아 그 정도는 이 말볼리오가 구해올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그럼 못써!

우리가 공연을 할지 못할지는 오직 유피테르신만이 아시는 거예요.

자 받아요. 현금영수증은 내 폰번호로 하고.. 내 폰번호 알죠?

조연출 네. 감사합니다.

저어.. 고등학생 때 <리어왕> 봤었는데 거기서 선생님께서 맏딸 거너릴 하시는 거 봤습니다.

와~! 정말 대단하셨죠.

선생님 연기 때문에 리어왕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 리어왕이 내다.

조연출 어? 아! 맞네. 죄송합니다. 그럼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퇴장)

저 자슥이..

두 분 다 여전하시네요.

그 곤조 어데 가나?

성격이라고 하세요!

아니 근데.. “출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 하면 될 거를 뭘 늘그막에 오디션을 보라카노?

정정당당하게 해야죠.

무대 서면 늙으나 젊으나 다 똑같은 배우니까요.

구해서 얻는 오디션도 좋지만 구하지 않고 얻은 오디션 기회라서 더 좋은데요?

그리고 이렇게 우리만 따로 날 잡아서 보도록 해주는 게 어딥니까?

그기 정관예의 카는 기다.

전! 관! 예! 우!

그나저나 박 선생은 오디션 본다고 백구두까지 장만했네?

요새 형편 좋은 갚지?

저번 주에 생계지원금 탔다 아입니까?

형은 요즘 무대 안 서세요?

나이테가 60겹이 넘어가니까 안 불러준다.

뚜껑(가발) 벗을 수 있다 캐도 안 써주네.

이젠 뚜껑 쓰고 있는 게 더 부자연스럽구만.

뭐라꼬?

(무시하며) 이번에 셰익스피어 한다 그랬죠?

연출이 누군데?

서울에서 온 객원 연출이에요. 김 채희라고..

가시나가?

여성 연출가라고 하세요!

작년 대한민국 연극제 4관왕에다 ‘올해의 연출가’상까지 받은 대단한 친구예요.

지난달 한국연극 표지에도 나왔더라고요.

요람에서 기어 나온 지 얼마나 됐는 공?

올해 스물아홉이라던가..

이야! 난 그 나이 때 한창 니쥬 나르고 있었는데..

덧마루라고 하세요!

니 오늘 그 날이가?

이보세요!

다들 왜 이러세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번에 하는 작품이 뭐라꼬?

기존의 셰익스피어를 완전해체해서 파격적인 작품으로 만들 거라네요.

제목이 좀 길어요. < '십이야' 하겠다는데 왜 시비야? >.

쎅써피어 작품 중에 그런 기 있었나?

십이야! 우리 같이 했던 건데 몰라요? 주정뱅이 토비경 했었잖아요?

아~ 그거? 베니스에서 고기 도매상 하는 거 말이재?

됐어요.

그라마 이번에도 박 선생이 토비경하면 되겠네.

페이 얼마 주는지 들어봐야지요.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선배들인데 이번 공연하게 되면 출연료는

어려운 후배들 응원금으로 내놓는 거 어떻습니까?

오! 그렇게 하면 가뭄이 창궐해 있는 지역 연극계에 마중물이 될 수도 있겠네요.

역시 내 마음의 페트루치오~!

폐 끼치는 소리 하고 있네. 나는 그래 못한다.

하루 해가 기울면 술잔도 기울여야 되듯이 공연을 했으마 페이를 받는 게 당연한 거 아이가?

가오 잡다가 굶어 죽을라 카나?

(백 선생에게) 숙아! 가오는 우리말로 뭐라카노?

(혼잣말로) 제발 집에 가오~.

잡담 고마 하고. 어쨌든 오디션 보러왔으이 옛날 생각하면서 입이나 풀고 있자.

그럴까요? 형은 자유연기 뭐 하시게요?

글쎄.. 주옥같은 역할들을 원캉 많이 해서 뭐 할지 고민이다.

오빤 뚜껑만 벗으면 자유연기예요.

(대사 하듯) 오~! 너의 그 세치 혀가 내 심장에 차가운 단검으로 와닿는구나.

제발 그 칼을 거두고 부동산이나 보살피러 가거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니 아파트 장사해 가 돈 많이 벌었다며?

극장 하나 만들어라. 백 경숙 아트센터! 캬~ 죽이네.

공정하게 거래해서 얻은 결과인데 왜들 그러세요?

그리고 전 땅장사하는 마담이 아니라 연극배우라고요!

네. 맞습니다. 이 방안에선 우리 모두 연극배우죠.

우와 이거 오디션 볼 생각 하니 긴장되는데요?

근데 우리 지정연기 대사는 와 그렇노?

대사가 뭔데?

남자는 “네. 공작님.”

여잔 “네. 아가씨”.

장난하나?

역시! 신세대 연출가는 다르네.

그것만 듣고도 충분히 배우를 평가할 수 있다 이거 아이겠나?

그런가? 천잰데..

해설 평범한 노크소리.

그런데 왠지 모르게 노배우들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 잡고 앉는다.

조연출 커피 왔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놀래라. 이 자슥아!

해설 조연출이 커피를 돌리는데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며 한기가 들이밀고

뒤따라 들어오는 의문의 여자.

연출 많이 기다리셨죠?

조연출 아! 오셨네요. 이 분이 이번 작품 맡으신 김 채희 연출님이십니다.

연출 조연출님. 선생님들 앞에서 절 높이는 건 큰 실례인 거 모르세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출 공부하고 있는 김 채희라고 합니다.

아이고! 반갑심다.

(커피를 내밀며) 이거 내 입 안 댔으이끼네 연출님 잡수이소.

연출 감사합니다만 전 커피 안 마십니다. 카페인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희한하네. 그런 것도 있으요?

연출 네. 발연기 알레르기도 있습니다.

(잠시 정적.)

죄송합니다만 제가 곧 신문사 인터뷰가 있어서요.

실례인 줄 압니다만 바로 오디션 해도 될까요?

화끈하시네. 그라입시다.

연출 지정연기 대사 다들 아시죠?

부담 갖지 마시고 바로 여기서 해볼게요.

레이디 퍼스트. 백 경숙 선생님? 먼저 해보시겠어요?

(목소리 가다듬더니 거만하게) 네. 아가씨.

연출 “정확하게 말하는 것보다 참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죠.”

선생님께선 올리비아 아가씨가 아니라 시종입니다.

가오 잡지 마시고 다시 한번 부탁드릴게요.

(잠시 당황. 바로 안정을 되찾고 하인 느낌으로) 네! 아가씨!

연출 헤이 호! 훨씬 좋으신데요.

남자 선생님들은 세분 같이 하시면 됩니다. 해볼까요?

남자들 (서로 눈치 보더니) 네.. 네! 공작님!

연출 박 선생님. 혹시 약주하셨나요?

(당황) 아! 그기.. 몇 년 만에 보는 오디션이라 긴장이 돼서 점심 묵으면서 반주로 한잔..

연출 (말 자르며) 작품 같이 하시게 되면 자제 부탁드립니다.

브로드웨이 뒷골목에서 위스키 나발 불던 노배우들도 오디션 다가오면

<배우수업> 책 들고 다니거든요.

(기죽어) 난 양주는 못 묵어요.

연출 그리고 천 선생님. 일부러 내시처럼 하시지 마시고

정상적으로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해볼까요? 레디~ 큐!

남자들 (헛기침 한 번씩 하고는) 네! 공작님!

연출 좋습니다. 오디션 끝났고요.

늙은 시종 둘 필요한데 결과는 조연출 통해서 내일 개별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뭐 궁금하신 거 있으신가요?

저어.. 출연하면.. 그..

연출 페이 말씀이시죠?

(뜨끔) 아! 아닙니다.

뽑아만 주시면 폐 안 끼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연출 출연료 부분은 합격하신 분에 한해서 따로 말씀드리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퇴장)

(잠깐 멍해있다가) 우와~! 뭐 저런..

이야~ 무서워서 못 있겠다. 퍼뜩 가자.

소문대로 대단한데요? 전 안될 것 같습니다.

아이다. 니하고 백여사 되지 싶다.

새벽마다 오줌 찔끔하는 것도 서글픈데 내보고 내시라 안 카나?

(대사 하듯) 가여운 아버님~

티 안 나는 기저귀 팬티 한 박스 사드릴까요?

아이고! 고맙구나. 거너릴~

( 다들 모처럼 생기 있는 큰 웃음. 웃음소리 점점 줄어들면 )


해설 다음날 오후.

조연출은 네 명 모두에게 전화를 했다.

젊은 시종 둘이 갑자기 펑크가 나서 네 명 모두 출연할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전화 통화가 있던 그때,

네 명의 노배우들은 각자 다른 장소에서 색 바랜 십이야 대본을 보고 있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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