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

[제5화]

by 오백이

나는 서른 살이고 도박으로 망한 인생이다.

현금화 할 수 있는 별의별 방법을 다 해봤고 사채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다.

도박에 빠져 돈을 빌리다 못해 내 친구들의 피 같은 돈마저 잃고 말았다.

내 신뢰도는 바닥을 쳤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려 빚더미와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매일 밤이 고통스러워 자살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고생만 하신 엄마 아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나의 비참한 사정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었지만 어디론가 도망치듯 떠나 일을 해야만 했다.

숙식 제공이 되는 곳 위주로 알아봤고 옷을 사 입거나 꾸미는 돈조차 아끼고 싶었다.

그렇게 도피처로 선택했던 멸치잡이 어선은 상상을 초월하는 생지옥이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억지로 버틸 만했지만 그 이상은 갈 곳 없는 사람이나 하는 미친 짓이었다.

직접 해보고 나서야 사람들이 왜 배를 타지 말라고 뜯어말리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 지옥 같은 파도 위에서 도망친 내가 결국 당도한 곳은 한국도 아닌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아니 끔찍한 빚을 갚기 위해 나는 불법 온라인 카지노 사이트의 작업장 딜러로 취직하고 말았다.

수십 대의 모니터가 뿜어내는 푸른빛이 작업장의 매캐한 담배 연기를 가르고 있었다.

"야, 김지훈."

뒤통수에서 들려오는 묵직하고 서늘한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이곳 작업장을 총괄하는 조선족 실장이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호구 하나 니 방에 배당할 테니까, 확실하게 작업 쳐서 다 빨아먹어라."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기계적으로 대답하며 내게 할당된 3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는 'VIP 전용 프라이빗 바카라'라는 화려한 타이틀의 방이 개설되어 있었다.

새로운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관리자 데이터베이스 창을 클릭했다.

마우스 휠을 내리던 내 손가락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돌처럼 굳어버렸다.

화면에 뜬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가입 인증 시 제출한 신분증 사본.

이태성.

나의 가장 친한 불알친구이자, 내가 도박에 미쳐 돈을 빌려달라고 매달렸을 때 자신의 전세 보증금까지 빼주었던 그 녀석이었다.

순간 숨이 턱 막히며 시야가 하얗게 점멸했다.

태성이가 도대체 왜 이런 악질적인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한 것일까.

아마도 나 때문에 입은 막대한 금전적 피해를 복구하려고 이리저리 무리하다가 이 밑바닥까지 흘러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당장이라도 모니터를 부수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이 캄보디아 작업장은 인간의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마굴이다.

실적을 내지 못하거나 배신을 하면 감금과 폭행은 기본이고 심하면 정글 깊은 곳에 버려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했다.

내가 여기서 무사히 살아서 나가기 위해서는 화면 속 태성이의 돈을 모조리 빨아먹어야만 한다.

화면 상단에 표시된 태성이의 보유 시드머니는 무려 1억 원이었다.

필시 제1금융권부터 사채까지 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을 받은 돈이리라.

예전 어선 대기소에서 허리가 아파 쉬고 있던 기관장 아저씨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 아저씨는 통장 잔고 600만 원 중에서 300만 원씩 사이트에 이체해 가며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도박을 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미친 듯이 하면 돈을 다 잃을 것 같은데도 계속 도박에 매달리던 그 초점 없는 눈빛이 지금의 태성이와 겹쳐 보였다.

도박꾼의 말로는 결국 파멸뿐이다.

어차피 태성이는 여기서 돈을 잃지 않아도 결국 다른 사이트에서 이 1억을 모조리 잃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저 돈을 따서 내 목숨이라도 건지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 아닐까.

합리화라는 악마의 끈적한 속삭임이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야이 병신아, 멍 때리고 뭐 하냐? 빨리 딜링 시작 안 하고."

조선족 실장의 날카로운 독촉이 등줄기에 소름을 돋게 했다.

"아, 넵! 지금 바로 칩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마우스를 고쳐 잡았다.

화면 우측에 띄워진 라이브 채팅창으로 태성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려 매크로 답변을 전송했다.

본격적인 바카라 게임이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무조건 태성이에게 유리한 승패의 그림을 주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호구가 경계심을 풀고 판돈을 과감하게 올리기 때문이다.

뱅커 승.

플레이어 승.

다시 뱅커 승.

태성이의 베팅액이 연달아 적중하며 그의 시드머니가 눈 깜짝할 사이에 1억 3천만 원으로 불어났다.

이곳의 바카라 시스템은 딜러가 마음만 먹으면 다음 카드의 결과를 100% 조작할 수 있는 철저한 사기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제 한껏 고무된 그를 끝없는 절망의 지옥으로 밀어 넣어야만 한다.

마우스를 쥔 손끝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파르르 떨렸다.

내 모니터 구석에 있는 붉은색 조작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음 판은 무조건 태성이가 돈을 건 반대쪽이 이기게 세팅된다.

태성이는 지금 승부수를 띄운 듯 뱅커에 무려 4천만 원을 한 번에 걸었다.

이 버튼을 누를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정배당을 줄 것인가.

내 더러운 목숨과 하나뿐인 친구의 마지막 희망이 잔인하게 저울질당하고 있었다.

"야."

실장이 어느새 소리도 없이 내 뒤에 바짝 다가와 서 있었다.

"그 새끼 뱅커에 존나 세게 걸었네."

그의 탁한 목소리에는 서늘하고 짙은 살기가 묻어났다.

"지금 꺾어서 죽여."

단 한 치의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는 간결한 명령이었다.

나는 고통스럽게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빚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부모님 때문에 차마 죽을 수 없었던 비겁하고 이기적인 놈이다.

결국 나는 이역만리 타국에서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내 집게손가락이 마우스 버튼을 강하게 짓눌렀고 경쾌한 클릭음이 방 안을 울렸다.

화면 속 카드가 무심하게 뒤집혔다.

플레이어 8, 뱅커 2.

태성이가 걸었던 4천만 원이 허공의 먼지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도박의 늪에 깊이 빠진 자의 전형적이고도 파멸적인 패턴이었다.

잃은 돈을 한 번에 복구하기 위해 판돈을 두 배로 올려버리는 이른바 마틴게일 베팅.

그것은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거는 파멸행 급행열차나 다름없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이 터졌는지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 확 감돌았다.

나는 반쯤 미친 사람처럼 다시 한번 조작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도 철저하게 세팅된 조작의 결과가 화면을 잔인하게 채웠다.

태성이의 잔고는 이제 고작 1천만 원만이 남겨져 있었다.

심장이 발밑의 지하실 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 때문에 진 빚.

그 단어들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내 망막과 심장에 화인처럼 찍혔다.

도대체 내가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인가.

나를 믿고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친구의 마지막 동아줄마저 내 두 손으로 불태워 버린 것이다.

"크큭, 저 새끼 완전 멘탈 나갔네."

실장은 채팅 화면 가득 올라오는 태성이의 절규 섞인 욕설을 보며 비열하게 웃음 지었다.

"남은 천만 원도 시간 끌지 말고 마저 싹 다 발라먹어라."

그의 악마 같은 지시가 고막을 때렸지만 내 손은 더 이상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시야가 흐려지고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뱃사람들이 도대체 왜 배를 타지 말라고 뜯어말렸는지 뼈저리게 알았던 그 지옥 같은 어선의 갑판보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곳이 수백 배는 더 잔혹한 생지옥이었다.

나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직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를 유일하게 믿어주었던 친구의 마지막 피와 살을 뜯어먹는 끔찍한 괴물 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