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기회의 땅 혹은 지옥의 입구
인천공항 제1터미널의 공기는 차갑고도 건조했다.
출국장 전광판에는 전 세계로 향하는 비행 편들이 화려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퉁퉁 부은 손으로 여권을 꽉 쥐었다.
진도 앞바다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는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내 눈은 희망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월 500만 원.
그 달콤한 숫자가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저기, 한결 씨?"
뒤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강남 오피스텔에서 만났던 그 실장이 아니었다.
조금 더 젊고,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내 이름이 적힌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아, 네. 맞습니다."
"반가워요. 현지에서 관리팀 맡고 있는 김 팀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악수를 청했다.
부어오른 내 손을 보더니 그는 짧게 혀를 찼다.
"고생 많이 하셨나 보네. 캄보디아 가면 이런 일 안 해도 됩니다."
"진짜 딜러 일만 하면 되는 거죠?"
"그럼요. 에어컨 빵빵한 데서 카드만 돌리면 끝이에요. 밥도 한식으로 잘 나옵니다."
김 팀장의 확신에 찬 말투에 내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졌다.
내 옆에는 나 말고도 세 명의 남자가 더 있었다.
다들 어딘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하지만 눈빛만큼은 절실한 이들이었다.
우리는 마치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원정대처럼 당당하게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를 때, 나는 창밖을 보며 다짐했다.
다시는 이 땅에 루저로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프놈펜 공항에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열기가 나를 덮쳤다.
진도의 갯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끈적하고 무거운 동남아의 열대 기후였다.
"자, 다들 이쪽으로."
김 팀장이 우리를 검은색 선팅이 짙게 된 승합차로 안내했다.
차 안은 에어컨 덕분에 시원했지만,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하던 5성급 리조트 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낡은 건물들, 붉은 흙먼지, 그리고 오토바이 떼.
"어디로 가는 건가요?"
옆에 앉은 동기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아누크빌이라고, 카지노 밀집 지역입니다. 좀 멀어요."
김 팀장은 운전석 옆에서 스마트폰만 두드렸다.
차는 포장도 제대로 안 된 도로를 서너 시간 동안 달렸다.
점점 건물이 사라지고 울창한 정글과 높은 담벼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진도에서 탔던 그 낡은 어선이 떠올랐다.
탈출하고 싶어도 바다 한가운데라 도망갈 곳이 없던 그 지옥.
설마, 여기가 또 다른 바다는 아니겠지?
차가 멈춘 곳은 거대한 철문 앞이었다.
리조트라기보다는 감옥이나 군사 기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담벼락 위에는 가시철조망이 칭칭 감겨 있었고, 총을 든 경비원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철문이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
김 팀장의 목소리에서 아까의 부드러움은 사라져 있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수천 대의 컴퓨터가 돌아가는 열기로 가득 찬 거대한 창고형 건물 앞이었다.
"어... 카지노는 어디에 있나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김 팀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비릿하게 웃었다.
"카지노? 아, 그거. 온라인 카지노 말하는 거야."
그는 내 여권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이게 뭐야... 여권은 왜 가져가요?"
"여기는 보안이 생명이라서 말이야. 일단 보관해 둘게."
그때 건물 안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그들의 손목에는 하나같이 붉은 반점들이 돋아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24시간 동안 채팅창을 두드린 흔적이었다.
여기는 5성급 리조트가 아니었다.
온라인 사기와 불법 도박을 일삼는 '돼지 도살장'이었다.
"자, 이제부터 너희 일과는 간단해."
김 팀장이 우리를 컴퓨터 책상 앞으로 몰아넣었다.
"여자 사진 걸어놓고 한국 사람들 꼬셔서 돈 입금하게 만드는 거. 알지?"
"저... 저는 딜러 하러 온 건데요?"
내 말에 김 팀장이 내 부어오른 손을 발로 툭 쳤다.
"이 손으로 뭔 카드를 섞어? 타자나 쳐, 이 새끼야."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속에는 '사랑해요 오빠, 이번에 좋은 정보 있는데...'라는 문구가 띄워져 있었다.
진도 앞바다의 비린내가 그리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적어도 거기는 내가 땀 흘려 일하면 밥은 줬다.
여기는 남의 피눈물을 짜내야 내가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부어오른 손가락 끝이 키보드에 닿을 때마다 지독한 통증이 느껴졌다.
"자, 첫 번째 타겟 들어온다. 눈 똑바로 뜨고 낚아."
김 팀장의 채찍질 같은 고함이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내 서른 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재활 치료는, 그렇게 지옥의 서막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