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진도 공용터미널의 플라스틱 의자가 딱딱하게 엉덩이를 찔렀다.
그래도 이틀 동안 엔진 진동에 온몸을 떨며 자던 배 밑바닥보다는 천국이었다. 나는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봤다. 서울행 막차 출발 시간이 지난 지 한 시간째.
주머니에는 선주가 던지듯 내뱉은 욕설과 텅 빈 지갑만 남았다.
"진짜... 임금 한 푼도 안 줄 줄은 몰랐네."
3일째 멀미로 쓰러져 있었다는 이유로 선주는 약속했던 일당은커녕 차비조차 주지 않았다. "당장 짐 빼서 꺼져!"라고 고함칠 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걸 그랬나. 아니, 그럴 힘도 없었다.
말발이 좋아서 어디 가서 꿀리지 않던 예전 성격은 파도에 쓸려간 지 오래였다.
나는 퉁퉁 부어오른 두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 마디가 남의 살처럼 두껍고 딱딱했다. 배에서 만난 형님들이 왜 하나같이 앞니가 나가고 손이 부어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하루 16~28시간. 살인적인 투망과 양망 반복.
그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다.
---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비린내 밴 작업복을 벗고 가방에서 꺼낸 옷으로 갈아입으려는데 팔을 올리는 것조차 비명이 나왔다. 허리는 90도로 굽지 않았고, 발바닥은 물집이 터져 장화 모양 그대로 불어 있었다.
거울 속엔 서른 살 청년이 아니라, 세상 모든 풍파를 맞은 노숙자가 서 있었다.
"그래도... 살았네."
문득 배에서 본 기관장 아저씨가 떠올랐다. 4개월째 쉬면서 하루 종일 폰으로 도박하던 그 사람. 수백만 원 배팅에도 무표정하던 눈빛. 빚을 갚으려고 노예처럼 일하던 외국인 선원들.
나는 그들과 달랐을까?
아니. 나는 더 나약하고 어리석었다.
도망치듯 찾아온 바다에서 배운 건 '일하는 법'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감각'이었다. 멀미약 없이 물토를 쏟아내며 버틴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역설적으로 살고 싶다는 갈망을 느꼈다.
터미널에서 비굴하게 구걸을 해 겨우 서울행 버스표를 끊었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창밖 도시의 불빛들이 낯설었다. 배 위에서 그리워했던 육지의 공기. 비린내 없는 평범한 바람이 차창 틈으로 들어왔다.
---
서울, 열흘 후.
구직 앱을 열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경력 2년 이상, 4년제 졸업..."
모든 공고가 나를 거부했다. 손은 여전히 부어 있었고, 허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채 빚 독촉 전화가 하루에 열 통씩 왔다.
"안 갚으면 아는 거지? 너네 부모님 주소 다 알아."
그날도 PC방 구석 자리에서 구직 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 버티는 하루. 점심은 컵라면 하나.
그때였다.
화면 맨 위에 뜬 광고 하나.
[급구] 캄보디아 카지노딜러 모집 - 월 500만 원 보장 / 숙식 제공 / 왕복 항공권 지원
손가락이 멈췄다.
월 500만 원.
빚 갚고도 남는 돈. 숙식 제공이면 생활비도 안 든다. 클릭하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게 함정이면 어떡하지...'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었나. 나는 이미 밑바닥이었다.
---
3일 후, 강남역 근처 오피스텔.
"들어오세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었다. 정장에 명품 시계. 사무실은 깔끔했고, 벽에는 캄보디아 카지노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앉으세요. 차 드릴까요?"
"아... 괜찮습니다."
남자는 내 이력서를 훑어봤다. 이력서랄 것도 없었다. 대학 중퇴, 경력 백지.
"보니까 어선 일 하셨네요?"
"네... 며칠 했습니다."
"고생하셨겠어요. 바다 일이 얼마나 힘든데."
남자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묘하게 안심이 됐다.
"우리 회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5성급 리조트 카지노랑 계약돼 있어요. 한국 직원은 딜러나 서버 매니저로 일하고, 월급은 500만 원 선불이에요."
"선불이요?"
"네. 출국 전에 300만 원 먼저 드려요. 현지 가면 나머지 200만 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300만 원이면 당장 독촉 전화부터 막을 수 있다.
"근데..."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불법 아닌가요? 뉴스에서 캄보디아 사기 많이 본 것 같아서..."
남자가 웃었다.
"아, 그거요. 저희는 정식 라이선스 받은 카지노예요. 여기 보세요."
그는 노트북을 돌려 보여줬다. 캄보디아 정부 인증서, 사업자등록증, 리조트 홈페이지. 그럴듯해 보였다.
"불안하시면 나중에 생각해 보셔도 돼요. 근데 이번 주 출국이라 자리가 두 개밖에 안 남았거든요."
마감 압박. 영업의 기본.
하지만 나는 이미 낚였다.
"할게요."
---
면접이 끝나고 오피스텔을 나섰을 때, 하늘이 이상하게 파랗게 보였다.
부어오른 손으로 계약서를 꽉 쥐었다. A4 용지 3장. 대충 읽어봤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월 500만 원. 3개월이면 빚 다 갚는다.'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 부은 손가락으로 고리를 따는 게 여전히 힘들었지만, 입안을 감도는 달콤한 온기가 좋았다.
"배 타는 거에 비하면 세상 일 다 개꿀이지."
캄보디아가 어디든, 카지노가 뭐든 상관없었다. 일단 돈만 벌면 됐다.
나는 계약서를 가방 깊숙이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서른 살, 도박으로 망한 인생의 재활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바다의 비린내가 아니라 돈 냄새나는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