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

[2화]

by 오백이

바다는 말이 없고, 남은 건 부르튼 손뿐이다

진도항의 새벽은 비릿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를 집어삼킬 듯 출렁이던 바다는 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고요하지 않았다.

아니, 온몸의 신경이 살아 움직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이자마자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손이었다.

장갑 속에 갇혀 며칠간 소금물과 땀에 절어 있던 손가락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마치 싸구려 소시지를 억지로 불려놓은 것처럼 퉁퉁 부어올라 주먹조차 쥐어지지 않았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뻣뻣하게 굳어 마치 남의 살점을 붙여놓은 듯 감각이 무뎠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자 이번엔 허리가 끊어질 듯한 통증을 보냈다.

하루에 수백 개의 통발을 나르고 쌓던 대가였다.

발바닥은 장화 속에서 하루 종일 짓눌린 탓에 물집이 잡혀 걷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거울 속의 나는 불과 며칠 만에 십 년은 늙어 보였다.

앞니는 흔들거리고 몰골은 처참했다.

"짐 다 쌌냐?"

선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토록 화를 내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던 그 목소리였다.

내가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잠만 잤다며 차비조차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던 선주.

소개소에 연락해 봤지만, 그쪽에서도 선주와 해결하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네, 다 쌌습니다."

나는 퉁퉁 부은 손으로 겨우 가방끈을 고쳐 멨다.

이틀간 죽을 고생을 하며 배를 탔지만, 내 손에 쥐어진 건 단돈 1원도 없었다.

기본급 250만 원, 대박이 나면 보합금까지 챙길 수 있다던 장밋빛 꿈은 그렇게 비린내 나는 포구에 버려졌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선주의 말투는 짐승을 대하듯 거칠어졌고, 나는 그저 도망치듯 배에서 내려야 했다.


터미널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차비 한 푼 없는 처지에 서울까지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막막했다.

어제 숙소에서 신세 좀 지겠다고 간신히 허락을 구한 것이 마지막 자비였다.

어선 '성호'의 사람들은 그나마 착한 편이었다.

외국인 선원들도, 나를 가르쳐준 형님도 이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착한 사람들도 배 위에서는 귀신이 되었다.

하루 16 틀, 많게는 28 틀까지 반복되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는 사람을 기계로 만들었다.

일반적인 육지 일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8시간 노동에 잔업을 12시간 하는 수준의 강도를 며칠씩 이어가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형님, 저 진짜 갑니다."

나를 2층에서 도와주던 형님에게 작게 인사를 건넸다.

그 형님은 본인도 나이가 들어 갈 곳이 없어 마지못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누가 배를 탄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던 그의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군 전역하고 경험 삼아 온 애들도 하루면 다 도망간다는 그 바다.

나 역시 그 도망자 무리에 합류하게 된 셈이었다.

터미널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게 느껴졌다.

며칠간 씻지도 못하고 배에서 찌든 비린내가 온몸에서 진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핸드폰을 켜보니 여전히 빚 독촉 문자가 와 있었다.

바다 위에서는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잠시 잊고 있었던 현실이 다시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죽으러 간 건 아니었으니까."

엄마 생각이 났다.

도박으로 인생 망치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내가, 고작 이틀 배를 타고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이지만, 바닥 중에서도 가장 깊은 밑바닥을 경험하고 나니 묘한 오기가 생겼다.

월 1,000만 원을 준다 해도 다시는 타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가진 돈을 탈탈 털어 겨우 마련한 차비로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진도의 풍경을 보며 나는 내 부르튼 손을 내려다봤다.

장화를 오래 신어 퉁퉁 부은 발바닥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마음은 오히려 차분했다.

배 위에서의 1분 1초는 영겁 같았고, 잠시라도 쉬고 싶어 미칠 것 같던 순간들.

그 고통에 비하면 육지에서의 삶은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 도박으로 망한 인생.

다시 예전처럼 신뢰를 회복하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지옥 같은 파도 위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땅 위에서 못 할 게 뭐가 있겠나 싶었다.

소개소 소장의 좆같은 말투도, 선장의 고함도, 이젠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도착하면... 일단 씻고 싶다."

뜨거운 물에 몸을 불리고, 이 지긋지긋한 비린내를 씻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는 도박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배 위에서 본 그 기관장 아저씨처럼, 평생을 바다에서 구르며 번 돈을 하루아침에 탕진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더 이상 모터 진동에 머리가 울리지도, 옆 사람의 이 가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고요한 잠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더 이상 배를 타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한 사람들과 섞여, 평범한 밥을 먹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나는 비린내 나는 바다를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