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도박은 끝났다.
내 서른 살 인생도 거기서 셔터를 내렸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천장이 아니라 핸드폰에 찍힌 빚 독촉 문자였다.
현금화할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사채까지 손을 댔으니, 이제 남은 건 장기뿐이라는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빌린 돈은 우정이라는 이름의 이자가 붙어 나를 짓눌렀다.
"아... 씨발, 진짜 죽어야 하나."
죽으려고 한강도 가봤다.
그런데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자식새끼 빚잔치나 하라고 남겨두고 가면, 그 노인네 가슴은 누가 메워주나 싶어서 발이 안 떨어졌다.
일단 떠나야 했다.
어디든 좋으니 숙식이 되고,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인터넷 창을 켜고 '숙식제공'을 검색했다.
호텔 관리, 생산직, 조선소... 여러 가지가 떴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이왕 나를 벌줄 거라면 확실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 손으로 망친 인생, 내 몸뚱이 하나 갈아서라도 갚아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부산해양고용센터'였다.
흔히 말하는 원양어선 소개소.
조건을 보니 원양은 자격이 안 됐고, 그 밑 단계인 근해어선 자리가 있었다.
잠수 타기에 딱 좋은 핑계였다.
"배 탄다고 하면 아무도 못 찾겠지."
전화를 걸었다.
마침 이틀 뒤에 멸치잡이 배 두 명을 구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고 연락한다며 전화를 끊고,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졌다.
후기는 몇 년 전 것들뿐이었고, 죄다 '가지 마라', '지옥이다', '소개소는 사기다'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보합제
기본급 250만 원을 깔고, 3개월 계약이 끝나면 잡은 양만큼 배분하는 방식이다.
선주가 50%, 나머지를 간부들과 선원이 나눠 갖는다.
고기만 많이 잡으면 대박이지만, 못 잡으면 기본급에서 다 까인다는 소문도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따지듯 물었다.
내 일머리와 체력은 자신 있었다.
조선소, 정비, 타일... 빡세다는 일은 다 해봤으니까.
"저기요, 고기 못 잡으면 기본급도 못 받는 겁니까?"
수화기 너머 소장의 목소리는 짜증이 가득했다.
"아니, 보합제를 이해 못 하셨나? 의심 가면 다른 일 알아보쇼."
말투가 좆같았지만 참았다.
지금 내 처지에 말투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음 날 바로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소개소 사무실은 넓고 삭막했다.
외국인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라면을 끓여줬다.
라면 물은 한강이었지만, 그게 내 마지막 만찬인 줄 알았다면 더 맛있게 먹었을 거다.
2층 침대가 놓인 대기실에서 잠을 청하며 멸치잡이 영상을 찾아봤다.
비린내, 중노동, 잠 부족... 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세상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이틀을 공쳤다.
데리러 오기로 한 멸치 배 선장은 베트남 애들이 왔다고 말을 바꿨고, 제주도 잡어 배는 초보라고 거절했다.
대기실에서 만난 기관장 아저씨는 하루 종일 핸드폰으로 도박을 하고 있었다.
300만 원을 한 번에 이체하는 그의 잔고를 보며, 나는 씁쓸한 동질감을 느꼈다.
"진도에 꽃게 배 자리 났다. 가볼래?"
소장이 불쑥 말을 던졌다.
먼저 온 애들은 겁먹고 도망갔단다.
나는 무조건 알겠다고 했다.
작업복을 샀더니 11만 원이 나왔다.
돈이 없어서 외상을 달았더니 계약서엔 20만 원이 적혔다.
시작부터 마이너스 인생이었다.
진도 서망항에 도착해 만난 '성호' 선장은 덩치는 작았지만 아우라가 있었다.
선장 사모님은 인상이 좋았다.
자기 남편이 협회장이라며 돈은 꼬박꼬박 잘 준다고 자랑했다.
계약서를 썼다.
기본급 250만 원.
중도 하차 시 소개비 120만 원을 내가 물어낸다는 독소 조항이 있었지만, 사인했다.
"오늘 밤 12시에 출항한다."
숙소는 7평 남짓한 공간에 2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좁고 열악했지만 상관없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는데 옆자리 놈이 이빨을 갈기 시작했다.
드르륵, 득, 득.
신경질이 솟구쳤지만 참아야 했다.
밤 12시 12분.
항구에 거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이 덜 깬 선원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작업복을 챙겨 입었다.
나도 가방을 들고 따라나섰다.
배에 오르자마자 밧줄을 풀고 출항했다.
조종실 밑 지하 자는 곳으로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보던 딱 그 비좁은 공간이었다.
기관실 바로 옆이라 그런지 모터 진동이 머리끝까지 전해졌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핸드폰은 터지지 않았다.
두 시간쯤 나갔을까.
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작업 시작이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통발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50대 한국인 형님이 요령을 알려줬다.
"이렇게 6단으로 쌓으면 돼. 할 만하지?"
통발 무게는 3~4kg 정도.
처음엔 괜찮았다.
하지만 '양망'과 '투망'이 반복되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배가 달리는 중에 옷은 축축하게 젖었고, 바닷바람은 칼처럼 살을 파고들었다.
12틀을 해야 한단다.
한 틀에 40~50분.
중간에 밥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미역국에 밥을 말아 10분 만에 마셔야 했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는데 멀미가 올라왔다.
"우웩!"
참으려 해도 안 됐다.
입에 손가락을 넣고 물토를 했다.
파도가 심해질수록 세상이 뒤집혔다.
선원들은 담배를 뻑뻑 피워댔고, 그 냄새는 멀미를 더 자극했다.
"야, 2층! 통발 밀린다! 똑바로 안 해?"
확성기에서 선장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죄송하다고 말할 힘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통발을 쌓았다.
손가락은 퉁퉁 부어올랐고, 장화 속 발바닥은 물집으로 엉망이었다.
그렇게 16 틀을 마치고 자러 들어간 시간은 오후였다.
5시간을 잘 수 있다고 했다.
옷이 젖어 잠이 오지 않았지만,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다시 사이렌이 울렸을 때, 나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둘째 날은 더 지옥이었다.
파도는 더 높았고, 선장의 오더는 더 거칠어졌다.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로 기계처럼 움직였다.
어제는 잘한다고 칭찬하던 선장이 오늘은 시원찮다며 확성기로 면박을 줬다.
"몸이 안 따라줍니다..."
결국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죽을 것 같았다.
"몸 안 따라주면 집에 가야지. 이번만 타고 내려라."
선장의 말에 나는 즉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진도로 돌아가는 길은 3일이 걸린다고 했다.
그 3일이 30년처럼 느껴졌다.
선장은 내가 관둔다고 하자마자 말투를 더 좆같이 바꿨다.
알려줘야 할 일도 소리를 지르며 시켰고, 내가 인상을 쓰자 "들어가! 아예 하지 마!"라며 폭발했다.
나는 그대로 지하로 내려가 누웠다.
밥 먹으라는 말도 없었다.
핸드폰 지도를 켜보니 배가 진도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선장이 어디서 자빠져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회항하는 것이었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쌌다.
선주는 내게 소개비를 어쩔 거냐며 소리를 질렀다.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나중에 벌어서 갚겠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차비도 안 줄 줄 알아! 당장 꺼져!"
이틀 일한 수고비는커녕, 올라갈 차비도 못 받았다.
차가 끊겨 숙소에서 하루만 더 자게 해 달라는 구걸 섞인 문자를 남기고 짐가방을 멨다.
부두에 서서 멀어지는 배를 봤다.
서른 살 인생의 가장 뜨거웠고 비렸던 이틀이 끝났다.
내 손은 퉁퉁 부어 있었고, 앞니는 흔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