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막다른 길, 바다가 부른다
서른.
누군가에게는 견고한 가정을 꾸리거나 사회적 기틀을 다지는 안착의 시기겠지만, 내게 그 숫자는 오직 파산의 종착역을 알리는 이정표일 뿐이었다. 인생의 성적표를 받아 들기에 이토록 애매하고도 잔인한 나이가 또 있을까. 떨리는 손으로 마주한 내 삶의 기록부에는 낙제점을 넘어선 선명한 핏빛 낙인만이 가득했다.
도박.
그 짧고도 강렬한 두 글자가 내 평범했던 일상과 저당 잡힌 미래, 끝내는 영혼까지 통째로 집어삼켰다. 시작은 가벼운 유희였다. 하지만 쾌락의 늪은 생각보다 아득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목 끝까지 차오른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현금화할 수 있는 수단은 이미 바닥까지 긁어 써버린 지 오래였다. 휴대폰 소액 결제로 연명하며 카드 돌려 막기는 일상이 되었고,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최후의 보루인 사채에까지 손을 뻗었다. 돈을 빌릴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매달렸던 대가는 혹독했다. 휴대폰 주소록을 가득 채웠던 친구들은 이제 나라는 존재를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번호를 누를 때마다, 수화기 너머로는 싸늘한 거절과 숨길 수 없는 비아냥이 날아와 박혔다.
“야, 너 아직도 그러고 사냐? 제발 사람답게 좀 살자.”
그들의 목소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나의 신뢰도는 이미 영(0)이라는 숫자를 지나 마이너스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제 와서 예전처럼 평범한 삶의 궤도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빚더미는 매일같이 숨통을 조여왔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독촉 전화의 진동은 일상을 파괴했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발끝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숨을 쉬는 모든 순간이 지독한 형벌이었다. 차라리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도망쳐 생을 놓아버리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수없이 자문했다. 높은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몇 번이고 난간 끝에 발을 적시기도 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마다 시골에서 흙먼지 마시며 자식 하나 믿고 살아오신 부모님의 거친 손마디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부모님의 얼굴이 잔상처럼 스칠 때마다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최소한 인간의 도리로 빚은 다 갚고 가야지.’
어떻게든 살아서 이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겨내야만 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아니, 사실상 내게 선택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떠나야만 했다. 비겁한 도망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시선을 지워버린 채 오직 노동에만 미칠 듯이 몰두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당장의 비바람을 피할 숙소와 허기를 채울 끼니를 해결해 줄 곳이 절실했다.
호텔 관리직, 조선소 잡부, 고된 2교대 생산직 공장…….
수많은 구인 공고가 눈앞을 스쳤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더 독하고, 더 처절한 결심이 필요했다. 새 옷 한 벌 사 입는 돈조차 아까워 스스로를 학대할 수 있는 곳. 나라는 존재를 지상에서 깨끗이 지워버리고, 오직 ‘노동의 가치’로만 환산될 수 있는 곳.
그때, 흐릿한 시야 사이로 선명하게 박히는 문구 하나가 있었다.
'부산해양고용센터.'
흔히 말하는 배 타는 일, 그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이라 불리는 근해어선의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