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 조용히, 줄을 서는 경계의 나라)
언제나 ‘줄서기’였다.
줄은 늘 길었고,
그 줄보다 더 길었던 건
‘뭔가 잘못되면 어쩌지?’하는
내 안의 불안과 긴장이었다.
“줄을 서시오~”
그저 드라마 사극에서나 듣던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 말이 매일같이 현실이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 마주하는 줄은, 공항 이민국 심사대 앞의 줄서기다.
한국에 살면서 손에 땀을 쥐며 줄을 서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나는 꽤 오랜 시간, 이 입국심사 줄 앞에서
극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하염없는 긴 줄은 둘째 치고,
심사대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몰라
마음은 늘 초긴장 상태였다.
대학원에서 원서도 읽으며 학위를 받았고,
영어도 오래 공부했지만
정작 들리는 건,
"삐리릭~!@#$.."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난 도대체 어느 나라 영어를 배웠던 걸까.
그때마다 지독하게 깨달았다.
'잘 들려야 말할 수 있는 거네.'
언어.
이건 타국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두 번째 줄서기는 DMV(차량관리국) 앞이다.
미국 생활에서 자동차 없이 살아가는 건
거의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대중교통이 있지만,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서 일어나는
묻지마 폭행 뉴스가 익숙한 나라에서
운전면허는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요즘은 온라인 예약으로
그나마 그 줄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내가 처음 겪었을 때는
몇 시간을 서서 기다리는 게 기본이었다.
첨단 인터넷 강국에서 온 한국 사람에게
그런 풍경은 참 낯설고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간혹 환자들이 갑자기 예약을 변경하면서
"DMV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라고 말할 때가 있는 걸 보면
아직도 그 줄은 여전한 모양이다.
세 번째 줄서기는 소셜시큐리티 오피스.
사회보장번호 하나 받기 위해
또 몇 시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받느라
몇 시간을 서서 기다린다고 상상해 보자.
한국이라면 신문이며 방송이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아마도 항의 전화로 해당 주민센터가 마비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미(美)’자를,
‘아름다울 미(美)’가 아니라
‘아직 미(未)’로 받아들여야
속이 편해진다.
그래서 미국 초보 이민자들의 첫 수업은
바로 '줄을 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 줄을 버티지 못하면,
결국 이곳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된다.
줄을 선다는 건 기다림을 견디는 훈련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최고봉에는
영주권 취득 과정이 있다.
승인과 반려를 반복하는 복잡한 행정 절차.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과정은
이민자들에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인내를 요구한다.
각종 청원, 허가, 조정, 보완, 인터뷰, 추가 심사…
또 다른 기다림과 검토의 단계들.
그리고 마침내,
삶의 자리를 증명하는
한 장의 초록색 카드를 손에 쥐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다림의 의미를
조용히, 깊게 새기게 만든다.
올해 트럼프 정권 2기가 출범하면서,
5백만 달러, 약 70억 원을 내면
그린카드가 아니라 '골드카드'를 준다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지름길이 있다는 것.
돈만 많다면, 그건 물론 매력적인 유혹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줄을 서고, 기다림을 견디며,
하나씩 절차를 밟아
영주권이라는 합법적 자격을 손에 넣는다.
'줄서기'라는 통과의례는
이 나라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경계를 인정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에게
신뢰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줄을 설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순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에게
비로소 이곳은 기회를 허락한다.
이 과정을 기다리지 못하면, 낙오된다.
왜냐하면,
경계를 인정하고 지킬 수 있어야
다른 과정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신뢰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오히려 그 안에 놓인 경계가,
나를 지켜주는 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줄을 서는 시간은, ‘아직’ 내 자리를 기다리는 시간.
그 경계를 지키면 문은 조용히, 결국 아름답게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