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와 ‘관계’는 한 끗 차이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무조건 자기를 대접하고
맞추라고 요구하는 행동,
흔히 ‘갑질’이라고 불린다.
SNS에 오르내릴 정도로
도를 넘는 경우도 있지만,
“손님이 왕이다”,
“돈 내는 사람이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합리화된 갑질의 한 형태다.
고객이 기분 상하지 않게, 실망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알아서 움직이는 것.
그게 정말 예의이고 센스이며 ‘좋은 서비스’일까?
그래서,
서비스 제공자는 늘 ‘눈치’를 보며 일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 익숙한 고객일수록,
자신의 기대치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기라도 하면
곧바로 불만을 터뜨리거나
공격적으로 반응하기 쉽다.
얼마 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반년 만에 20년 지기 단골 미용실을 찾았는데,
머리 손질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사장님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왔다.
수십 년 가위를 잡아왔으니,
이제 몸에 무리가 갈 만도 했다.
나는 한의사로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다음 예약 손님이 도착했다.
사장님은 그 손님에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양해를 구했고,
우리는 대화를 서둘러 마무리하면서
내 머리 손질도 함께 마쳤다.
그 손님은 자리에 안내되자마자
털썩 앉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쏟아냈다.
“오자마자 기다리게 하면 기분이 좋겠어요?”
“여의도에서 대치동까지 힘들게 왔는데, 이게 대접이에요?”
“내가 1시까지 출발해야 하는데 맞춰줄 수 있겠어요?”
사장님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쩔쩔맸다.
그 손님은 사과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날 선 목소리로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가운을 둘러주는 사장님의 얼굴은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나는 오랜만에 이런 낯선 광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의도? 난 미국에서 왔는데.”
만약 미국이었다면,
과한 불만을 늘어놓는 그런 손님에게 아마도 이렇게 응대했을 것이다.
“손님, 너무 죄송합니다.
지금 잠시 기다리시게 된 점, 진심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혹시 일정이 급하시다면
다른 날로 예약을 변경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런 정중한 설명과 대안 제시의 절차는
오히려 관계를 조용하게 정리해 준다.
대부분은 “괜찮아요, 그냥 받을게요”라고 답하고,
정말 불편한 일부는 조용히 자리를 뜨거나
예약을 다시 잡겠다고 말할 것이다.
미국에서 10분, 20분 정도 기다리는 건 흔한 일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도 서비스 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은 이렇게 답한다.
“괜찮아요. 충분히 시간을 가지세요.”
자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나 긴장을 주지 않으려는
현명한 태도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조금 기다리게 했다고
관계를 흔들지는 않는다.
만약, 잠시 기다리는 것이 자신의 일정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면
“제가 약속 때문에 몇 시까지는 떠나야 하는데
늦지 않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정중히 요청을 전달해
피로감을 줄이고 책임도 서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갑질은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이곳 사람들은
워낙 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아서인지
고객이기도 하고 서비스 제공자이기도 한
서로의 입장을 잘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를 필요 이상으로 피곤하지 않게 하려 조심한다.
미국에서의 ‘눈치’란
허용된 한도에서 서로에게 맞추고 배려하는 것이다.
각자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상대가 부자든 권력자든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려는 태도가 보통이다.
예전에 한 호텔 만찬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한 변호사가
평소 습관이었는지 손가락을 "딱" 튕기며 서빙직원을 불렀다.
그 직원은 재빠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의 강아지가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당신을 위한 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정중하게 요청해 주세요.”
무시당했다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판단할 기회와 절차를 주는 태도였다.
변호사는 얼굴이 확 붉어지며
곧장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물을 더 갖다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그 종업원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는 큰 물병을 가져와 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지배인 나오라”고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건,
그 직원의 당당한 태도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서비스,
그리고 즉각적으로 실수를 인정하는 성숙한 고객이었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감정에 맞춰야 유지되는 서비스는 피로하다.
하지만 절차로 다듬어진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편하게 만들고
신뢰를 쌓게 한다.
그것이 미국 사회가 줄서기부터 배우게 하는 이유다.
눈치는 감정을 맞추려 하고,
관계는 신뢰를 맞추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