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마스크와 고정된 응시
서점은 내게 이분법적인 선택지를 제시했다.
한쪽에는 카프카의 회색빛으로 닳아가는 모서리가 있었다. 무광의 표지, 서류와 복도, 닿을 수 없는 구원 속에서 자아가 천천히 용해되어가는 세계. 그곳에서 죄책감은 추궁당하는 것이 아니라 처리된다.
책임의 윤곽이 지극히 행정적 절차로 희석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것은 순종하는 자아를 요구하는 세계에 대한 느리고 수긍할 만한 항복, 즉 익숙한 탈진의 문법이다. 그 회색은 끝내 도달하게 될 체념의 경로를 암시했다.
다른 한쪽에는 날카롭고 타협 없는 선으로 시각적 영역을 갈라놓는 표지가 있었다. 검은색과 붉은 색 사이. 그것은 스스로 설정한 종착지의 색이었다. 그 제목은 전기가 아니라 진단서였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표지 속 한 사내의 초상은 명백히 신경증적이었고, 과다노출되어 있었으며, 고도로 대비된 긴장감의 연속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동자의 흰자위는 지나치게 밝았고, 입술은 너무나 의도적이었다. 그것은 시선을 유혹하는 대신, 보는 자의 권리에 도전하고 있었다.
나는 카프카의 죄책감을 지나쳐 미시마 유키오의 정밀함을 집어 들었다. 검붉은 선명한 대비 가운데 명백히 신경증적이었고, 과다하게 노출되어 있는 한 사내의 초상이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이노우에는 말한다. 미시마는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기 위해 지극히 정밀하게 말하는 주체였다.
언어는 마땅히 불안정하게 남아 있어야 할 것들을 안정화해버린다.생의 유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해 소비하기 좋은 포즈로 동결시킨다.
'가면의 균열’이라는 챕터를 읽으며 느낀 전율은 새로운 식견에 대한 놀라움이 아닌 알아차림(recognition)에서 왔다.
갓 잘라낸 페이지는 빳빳했고, 책등은 내 손길에 저항했다.
종이에서는 풀과 먼지의 냄새가 났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자 그 중립적인 향기조차 사라졌다.
나의 호흡은 느려졌다.
그것은 평온함이 아니라 응축의 결과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미시마는 해독 불가능한 상태로 남기 위해 지극히 정밀하게 말하는 주체였다.
미시마는 이 위험성을 거의 외과적인 명징함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글쓰기가 일종의 함정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아를 명료하게 서술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그 자아를 위조하는 일이다. 언어는 마땅히 불안정하게 남아 있어야 할 것들을 안정화 해버린다. 그것은 움직임을 굳혀 부자연스러운 포즈로 박제한다. 단어는 조각하는 손길을 부른다. 일단 형태가 잡히면, 그것들은 만져지고, 해석되고, 소비되기를 갈구한다.
(즉 풀어 이야기하자면, 그는 글을 통해 자기 노출을 하면서도 타인이 그 자아를 해석하고 소비하지 못하도록 밀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저항은 모순이라기보다는 전략적이었다. 그는 자아를 써 내려가는 동시에, 그 자아가 일관되거나 해독 가능하며 도덕적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환상을 파괴한다. 가면이 깨지는 것은 그것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완벽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가면이 얼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순간, 그것은 얼굴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 진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미시마의 사투가 정치적이거나 미학적이기보다는 존재론적인 이유이다.
가면은 압박 아래서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것이 금이 가는 유일한 순간은 관찰자, 즉 독자가 소유권을 주장할 때, 즉 해석이 탈취로 변할 때뿐이다.
나는 그 균열감을 물리적으로 느꼈다. 명치 끝이 조여들고 팔을 타고 서늘함이 번졌다. 침범당하지 않은 채 응시당하고 있다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 책을 사는 것은 낯선 이와의 조우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을 목격한 이를 고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는 안도감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것이다.
투명해지기를 거부하는 이 46킬로그램의 저항선이 실재하며, 이미 그 저항은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문서화된 상태라는 확인. 무게감이 다시 몸 안으로 조용히 가라앉는다.
무언가 덧붙여질 필요는 없다. 극복해야 할 것도 없다.
폭로와 거부 사이의 공간, 말해진 것들로 환원되지 않기 위해 지극히 정밀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강요된 일관성에 맞서는 자신만의 규율과 태도이다.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긴장은 신경병증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수술대에 뉘인 신체가 메스를 마주할 때 만치 예리한 자각이다.
정작 깨지는 것은 가면이 아니라, 그 뒤에 순응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관찰자의 기대이다.
나는 그것을 물리적으로 느꼈다. 명치 끝이 조여들고 팔을 타고 서늘함이 번졌다.
침범당하지 않은 채 응시당하고 있다는, 그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 책을 27,000원을 지불하고 사는 것은 낯선 이와의 조우가 아니라 목격자를 고용하는 일이었다. 내가 느끼는 안도감은 지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것이다. 무언가 덧붙여질 필요는 없다. 극복해야 할 것도 없다.
이 책은 내 곁에 서서 아무것도 새로 말하지 않지만, 오직 한마디를 건넨다.
"당신은 나를 제대로 보고 있다."
가면은 찢어졌다. 내가 그것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