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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함께

산타 마을과 액자 속의 아이

The Puzzle Shelf

나는 산타 마을에서 두 친구와 어머니에게 엽서를 써서 붉은 북극의 우체통에 넣었다.

한 친구에게는 오로라를,

다른 친구에게는 로바니에미의 호수와 황금빛 단풍을.

어머니에게는 눈 덮인 마을에서 산타 복장을 한 두 아이의 사진을 골랐다.

어머니가 이 사진을 천박하고 유치한 취향이라고 생각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함께 이곳에 머무른지 30년이 지난 후, 나는 혼자 핀란드에 왔다.

엽서에 나는 어머니의 헌신에 감사하며, 그저 그녀의 건강과 회복을 기원한다고 썼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어머니는 상처 입지 않은 그 아이를 기억하지만, 지금 편지를 쓰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는 것.



기념품 가게는 투명한 유리의 반사와 피부에 부딪치며 웅웅거리는 상업적인 조명으로 밝혀져 있었다.

선반에는 직소 퍼즐이 줄지어 있었다.

수백 개의 상자가 마치 다른 세계의 조각처럼 쌓여 있었다. 오로라, 오두막, 얼어붙은 호수.


나는 상자의 모서리를 문득 건드렸고, 이유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무거운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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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퍼즐들은 기억의 물리적 흔적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기념품 가게에서 사주셨던 바로 그 퍼즐.

우리는 그것들을 결코 완성하지 못했다. 하늘은 미완성인 채로 남았고, 바다의 잃어버린 조각은 카펫 어딘가에 접힌 채 영원히 사라졌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기념품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희미해진 상자들이 창고의 선반에 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 상자와 그녀는, 세월의 흐름에 널판지가 삭아버린 채,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던 그 소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미묘한 감정은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미완의 그림이 끊임없이 잔존하는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그 온전함을 믿고 있다. 그녀는 상처 입지 않은 딸을, 빛바램을 거부하는 사진처럼 액자 속에 보관한다. 오래 전 멈춘 플라스틱 보석 벽시계 옆에.

하지만 지금 어머니에게 엽서를 쓰는 그 여자는 피부 아래의 내밀한 단층, 사진에는 결코 잡히지 않는 골을 품고 있다.

엽서.jpg


창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느리고 망설이는 눈송이들은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나는 다시 퍼즐을 생각했다. 한때 잃어버린 조각을 찾던 손과, 지금 멀리서 편지를 쓰는 손에 대해.

어쩌면 애정이란 퍼즐을 완성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미완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 잃어버린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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