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부터 당신에게.
최근에 에세이, 산문집 등 작가 개인의 생각,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언어의 온도, 나의 친애하는 적들, 그리고 밤이 선생이다.
앞의 두 권은 작가와 나의 연령 차이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친구가 잘 써놓은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면, 이 책은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는 깊이있는 통찰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나의 삶,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 통찰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그래서 굳.이 이렇게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천년 전부터 당신에게.
...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어두운 밤마다 꾸고 있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가 안타깝게 꾸고 있다.
책을 펴내며 황현산 선생이 쓴 서문의 일부이다.
선생이 꾼 꿈을 나도 함께 꾸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과 함께, 두근거림을 안고 책장을 넘겨보게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단어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황현산 선생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이 단어들의 깊이를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데...
<과거도 착취당한다> 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이다. ...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기억과 장소>에서...
모든 시간이 같은 시간은 아니며 모든 땅이 같은 땅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같은 길이로 쪼개서 달력을 만들었지만 어떤 날은 다른 날과 다르고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과 다르다. ...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이나 같다.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에서...
마음 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
유행에 기민한 감각은 사물에 대한 진정한 감수성이 아니다. ...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깊은 곳에 그 기억을 간직할 때에만 사물도 그 깊은 내면을 열어 보인다. 그래서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란 자아의 내면에서 그 깊이를 끌어내는 능력이며, 그것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어 나와 세상을 함께 길들이려는 관대한 마음이다.
방학을 맞이하여 때로는 무료하게, 때로는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시간'이라는 개념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시간은 같은 시간이 아니라는 구절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다. 모든 시간은 같은 시간이 아니다.
비록 일정한 간격으로 쪼개어 놓은 달력이 내 앞에 주어져, 2018년 1월의 마지막 날이 지금 흘러가고 있는 중이지만, 이 달력을 채워나가는 것은 '어떤' 하루를 보낸, 그리고 그 하루 하루가 쌓인 나만의 달력인 것이다. 나는 오늘 하루를 다음 학기 교재 연구를 위해 쓸 수도 있었고, 친구를 만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지만, 오늘 하루 쯤은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구절들을 정리하며 누군가에게 전해줄 뜻깊은 소갯거리를 만드는 데 보내는 것이니 이 시간의 가치가 여느때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왜 인문학에 열광하는 것일까.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과 사물, 상황에 대해서 깊이있게 느끼고 들여다보고 싶기 때문에 인문학에 관심을 보인다. 느낌이란 것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실은 순간적이고 수박 겉핥기식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우리는 좀더 깊이있는 감각을 원하게 되는데, 이게 일종의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인 조르바> 속의 조르바처럼 온몸이 촉수인 삶, 현재에 충실한 삶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다시, 책은 도끼다' 참고)
이 책에서는 사람의 감수성뿐만 아니라 사물의 감수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는데, 사물과의 관계에서조차 서로 길들여지고 되돌아보는 시간 없이 유행에 따라 새로운 것만 찾는 현대의 습성을 꼬집는다.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물,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따사로운 관심을 가질 것,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 시간들을 살아온 경험들이 켜켜히 쌓여 이룩된 도타운 '나'의 현재가 기반이 될 때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온몸이 촉수가 되어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감수성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
이밖에도 한번쯤 곱씹어 볼 좋은 글들이 가득하다.
<맥락과 폭력>에서...
맥락을 따진다는 것은 그 사람과 그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맥락 뒤에는 또다른 맥락이 있다. 삶의 깊이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맥락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에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에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부딪히고 어떤 나쁜 조건에 처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깝게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는 뜻이 포함될 뿐만 아니라, 그 뜻이 거기 들어 있는 다른 모든 뜻보다 앞선다. 민주주의에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이유가 그와 같다. ...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사회과 교사로서 '한국적 민주주의'는 예외적인 케이스라고만 생각했지, 민주주의를 수식하는 그 어떤 말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폄훼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최근에 영화 '1987'과 '1급 기밀'을 관람해서 그런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데 물음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자유'도 '민주'도 실현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왔음에도, 정치적 이상은 언제나 거창한 수식들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점에서, 이제는 '민주주의' 하나 건실하게 지켜내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길 바래본다.
** 초등학생 지식백과에서 민주주의는 이렇게 정의된다 :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민을 위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제도.
이 글을 마무리하며,
인생의 선배로서 황현산 선생이 남긴 젊은 날에 대한 한 마디가 가슴에 확, 와닿는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버텨내고 있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나를 비롯해 혹독한 현실과 마주한 후배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삶의 순간임을 전달하고 싶다.
<봄날은 간다>에서...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찌보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