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불완전함이 사랑스러운 순간
<로봇시대, 인간의 일>과 <한스푼의 시간>은 바람길 독서학교(교원 독서연수)에서 지정된 책이라 읽게 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를 학교 교육과정 중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한 고민으로 선택한 책이랄까.
결론은, 굉장히 성격이 다른 두 책이지만 함께 읽으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여러모로 생각할거리를 많이 남긴) 책들이라 강추!
로봇시대, 인간의 일은 10개의 챕터로 구성된, 10가지의 생각할거리를 담고 있다.(- 다음은 주제 정리)
1. 알고리즘 윤리학 - 무인자동차와 사람이 운전하는 차
2. 언어의 문화사 - 자동번역과 외국어 학습
3. 지식의 사회학 - 지식 공유와 대학교육
4. 일자리의 경제학 - 제2의 기계시대, 나의 직업의 미래
5. 여가의 인문학 - 노동은 로봇이, 진정한 여가는 늘어날까
6. 관계의 심리학 - 감정을 지닌 로봇 등장, 인간의 감정이란(영화 'her' 와 밀접한 주제)
7. 인공지능 과학 -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에의 위협
8. 호기심의 인류학 - 생각하는 기계, 그리고 인류에게 호기심이란
9. 망각의 철학 - 기계의 기억과 망각 없는 세상에서 잊혀질 권리
10. 디지털 문법 - 로봇의 언어, 그럼에도 인간적인 인간
10개의 챕터 모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라 무인자동차 이슈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혹시, 수업을 늦출수 있어서 더 열정적으로 의견을 낸걸까?ㅋ)
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주제는 바로 '여가'.
세탁기의 발명이 수많은 여성들을 가정노동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했듯이, 제2의 기계시대가 도래하면 그동안 인류가 해오던 단순노동들을 로봇이 대체하고, 일의 생산성 또한 획기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래서 정리해 본 질문,
여가
국어사전 : 일이 없어 남는 시간
콜린스 사전 : 일하지 않으면서 휴식하거나 즐기기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
고대 그리스어 '스콜레' : 한가함, 자유시간, 조용함, 즉 의무와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상태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재미삼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너에게 (중1) '여가'란 무엇이니?
쉬는시간, 취미생활, 힐링, 비는시간, 나만의 시간, 잠자기 전 시간
여가의 반대는?
학원, 공부, 스트레스 받는 시간, 꼭 해야하는 시간
여가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는가?
폰(웹툰, SNS, 유투브, 셀카, 게임), 영화, 책(극소수;;), 운동
이런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편하고, 좋고, 행복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여가시간이 2배로 늘어난다면 뭘 할래?
2배로 열심히 논다(10명)
잠을 늘린다(4명, 주로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
너무 시간이 많아져서 생각이 없어지고, 빈둥거릴 것이다(8명)
꿈을 위한 준비시간 증가(4명)
상당수의 아이들은 국어사전적인 여가의 의미 이상, 고대 그리스의 '여가'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아가 투머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피로감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순간을 바라게 하고, 역설적이게도 아무 생각도 안하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다. 그렇기에 더욱 여가의 의미, 그리고 학교에서 여가를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에 대한 책임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최근 한강에서 개최되는 멍 때리기 대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상자 중 굉장한 창의성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고 보니 뇌에게 휴식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이 겪고 있는 피로감(원치 않는 수많은 정보 속에 던져진 피로 그자체)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지점이다.
한편으로 여가는 감정적인 기쁨과 즐거움의 몰입도가 높아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일과 여가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세상에서 여가가 낳는 경제적 가치로 인해 완전한 여가의 의미가 훼손될 우려도 있다.(예를 들어, 유투브로 일상을 공개한 것이 소득을 벌게 한 경우, 이것은 여가인가 일인가?)
현대인에게 SNS는 세상과의 소통 창구이자, 염탐 장이자, 과시의 장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궁금증, 나의 행복에 대한 과시가 난무하는 SNS의 행태는 조만간 자기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방향으로 돌아올 것이라 예측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에서 학문의 장이 주로 철학의 장이 되었듯이 이제는 학교가 유일무이한 철학의 장으로서 기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또한 단순노동과 일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인간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결정, 가치판단,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게 되어 정신적 노동의 강도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에따라 학교에서는 명상, 감정 관리 시간을 통해 뇌가 쉬어갈 시간을 충분히 가지게 하여 보다 창조적이고 가치로운 일에 몰두할 역량을 길러줄 수 있을테다.
재미난 상상을 해본다면, 로봇시대에는 학교에서 단순노동이 어떤 것인지 노동을 체험해 볼 기회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예전엔 인간이 이런 일을 직접 했단다~ 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다. 아니, 작은 실수가 드러나는 것마저 부끄러울 때가 많다. 교사가 되기 전 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 가장 많이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일의 결과는 반짝하는 그 순간일 뿐인데 내가 들인 수많은 노력의 과정을 알아주는 건 부모와 학교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오직 내가 낸 최상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을 뿐.
당신의 실패가 괜찮은 곳,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 바로 학교다. 인공지능 로봇 교사는 입력된 값에 따라 결과물을 판단할테니, 괜찮아 토닥토닥 대신 "입력된 값이 틀립니다, 땡."을 외칠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요즘 아이들은 작은 실패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혼자 노는 (또는 가상의 세계에서 함께하는) 게임에서조차 작은 실패의 경험을 없애기 위해 현질을 해서 아이템을 총동원한다. 얼음 땡 게임을 하면서 누구나 술래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술래에게 잡혀 또다른 술래가 될 수도 있고 이건 경쟁이나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재미라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게 되기를. 이를 통해 끊임없는 실패가 밑거름이 되어 보다 도전적인 생각을 실행하고 심적인 여유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기를 바란다.
소개가 늦어졌다. <로봇시대, 인간의 일>이 로봇시대에 부딪힐 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인류가 맞닥뜨릴 과제에 대한 경고였다면, <한스푼의 시간>은 로봇시대가 기대되는 약간의 따뜻한 시선이 묻어있는 소설이다.
죽은 아들을 대신해 배송된 10대 후반 소년의 외관을 가진 로봇, 은결.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인을 도와 세탁물 배달을 하는가하면 아침상을 차리고 집안일을 돕는다. 작은 동네 세탁소에 자리잡은 은결은 초등학생이던 동네 꼬마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아가는데, 인공지능 회로의 오류인지 은결은 경험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배워나가게 된다. 물론 감정의 종류에 대해 스스로 분류하거나 정의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일탈을 한다거나 마치 인간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감정을 지닌 로봇이 등장하여 인간과 관계를 맺게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기계의 오작동으로 인해 로봇이 정말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 때-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던 '감정'- 감정을 가진 로봇을 우리는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야 할까?
더불어, 로봇과의 관계에 집착하게 된 인간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측불허한, 통제불가능한 관계의 묘미에 더욱 어려움을 느끼게 되어, 스스로 통제가 가능한 로봇과의 관계에만 탐닉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두 권의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니깐.
완벽한 암기력을 자랑하지 않아도, 때론 덜렁거리고 까먹기 일쑤이고,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고, 못난 자신의 모습때문에 속상하기도 한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하나 하나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인류가 쌓아올린 과거를 떠올리며 예측불허한 미래를 궁금해하고, 당연한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가지고, 엉뚱한 호기심으로 세상에 없는 창조를 할 지도 모르는, 위대한 존재들이다.
그래서일까. 로봇시대가 마냥 두렵다거나 걱정스럽지만은 않다. 우리의 불완전함이 누구도 예측못할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