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구멍

미완성을 껴안을 지혜를 얻을 수 있길

by 달보드레

책은 숨구멍이다. 책에게는 미안하지만, 행복이 담뿍할 때보다는 힘들 때 찾게 된다. 일상이 벅찰 때,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싶을 때, 마음이 헛헛할 때, 외로움이 사무칠 때 책을 펼친다. 어지러이 조각난 마음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마음으로. 숨이 탁 트인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실의 속박도, 스스로에게 씌우는 억압도, 버거운 걱정도 잠시 던져버리고, 책장 사이사이를 탐험하는 여행길에 오른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본격적으로 책을 애정하게 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어릴 땐 참 책 읽는 걸 좋아하던 나였는데, 클수록 책과 데면데면해졌다. 세상에는 책 말고 재미난 게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내가 읽고 싶은 책보다는 교과서와 문제집을 끼고 살았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학교 숙제로 독후감을 내기 위한 최소한의 독서만 했다. 내 손으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어본 게 언제였던지. 책 속 세상을 탐방하는 걸 그리도 좋아했던 아이는 마음 깊숙이 묻혀, 점점 가라앉았다.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딱 과제를 쳐낼 만큼의 책만 읽었다. 그마저도 귀찮았던 나는 완독보다 지식인 줄거리를 더 애용했다. 1년에 한두 권 읽을까 말까. 그러다 20대의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 아주 조금씩, 책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동경하는 사람의 모습에 한 발짝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나를 읽기로 이끌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을 동경해 왔다. 스스로에게 건강한 한 끼를 대접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몸의 활력을 키우는 사람. 하루에 10분이라도 꾸준히 독서하고 일기를 쓰며 내면을 단단하게 바로잡는 사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누가 시켜서가 아닌,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행하는 사람. 이처럼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한테선 빛이 났다. 멀리서도 맑은 활력이 느껴지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서글서글하고 밝은 웃음이 매력적인 한편, 함부로 할 수 없는 단단함과 굳건함이 느껴졌다. 아마 이맘때쯤 만나게 된 한 언니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다. 그 언니는 내가 동경해 마지않던, 딱 그런 사람의 원형이었으니까. 책을 읽을 때만큼은 내가 되고 싶던 그 모습에 반 발자국이라도 다가선 기분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아직 서투름도, 빈틈도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읽고, 사유하고, 그렇게 자신만의 가치를 바로 세워가고픈 마음에 오늘도 글을 읽는다. 읽기를 놓지 않는 한, 어제의 나보다 책 한 줄의 지혜는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떠올려보면 그 외롭고 고독했던 어린 시절의 내게 책이라는 친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이라는 바다를 원 없이 유영했다면, 그렇게 다채로운 시선들을 접했다면, 하염없이 스스로를 찌르던 그 아픈 생각들 대신 ‘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 하며 스스로를 꼭 안아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내가 나의 생채기를 마구 헤집어 마음 곪게 하는 일은 없었을까.


되돌릴 수 없는 게 시간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미숙하고 아팠던 지난 시간 또한 나라며 안아 주어야겠지. 지금이라도 성찰할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하며. 이제는 엄격한 기준을 세워 놓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는 건 그만하고 싶다. 평생의 습관인지라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둬지는 건 아니겠지만. 미완성을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오늘이, 내일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