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속에 담긴 엄마의 사랑
어린 시절 엄마는 늘 일과 육아 사이를 종종걸음으로 허덕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아이들 사이에서는 생일 파티가 유행이었는데, 친구들은 생일이면 반 아이들에게 초대장을 돌렸고 햄버거나 돈가스를 파는 가게에서 생일 파티를 열었다. 1년에 네댓 번 넘게 파티에 초대받았지만, 내 생일 파티에는 아무도 초대할 수 없었다. 내 생일 즈음 엄마의 일이 가장 바빠, 생일 파티를 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받으면, 고심해서 고른 생일 선물을 손에 들고 파티에 가 돌려받지 못할 마음을 건넸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고 성대한 생일 파티에 대한 욕심도 없지만, 어렸던 나는 내심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엄마가 워낙 바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한 번도 생일 파티를 열어달라고 조르진 않았다.
어떻게 아셨는지, 엄마는 “매번 친구들한테 편지랑 선물을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해서 속상하지? 우리 딸 생일 쯤이 엄마가 가장 바쁠 때라, 생일 파티 못 열어 줘서 미안해.” 하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 두 마디로도 엄마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졌기에 나는 그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학교 1학년, 수련회에 갔을 때였다. 혈기 왕성했던 중학생 아이들은 온종일 체력 훈련을 받고도 지치는 게 뭐냐는 듯, 수련회의 밤을 레크리에이션으로 뜨겁게 물들였다. 장기 자랑의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사회자의 마이크에서 예상치 못한 내 이름이 섞여 나왔다.
“1학년 1반의 OOO 학생 어머니께서 빵과 음료수를 돌리셨습니다! 박수!”
“와아아아!” 친구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엄마가 1학년 전체에 간식을 돌리신 거였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대문자 I였던 나는 갑작스레 쏠리는 시선과 우렁찬 박수소리에 쑥스러워하면서도,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좋았다. 친구들이 지나며 고맙다고 한 마디씩 건네는 게, 반에서 ‘성실하고 조용한 친구’였던 내가 간만에 받는 주목이, 무엇보다 빵과 사과 맛 피크닉 속에 스며있는 엄마의 사랑이.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릴 적 한 번도 생일 파티를 열어주지 못한 미안함이 담긴 선물이 아니었을까? 많은 축하를 건네고도 돌려받지 못하는 일방향의 마음의 서글픔을, 그저 씩 웃고 마는 딸내미의 미소 속에 서린 부러움과 서운함을. 엄마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때로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읽어내는 엄마니까.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날 밤 맛본 엄마의 사랑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