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온실 속 화초입니다]

by 운옥

그리 긴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살다 보니 동일한 것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일명 ‘온실 속 화초’와 ‘여우’이다.


예전에 난 자기 스스로 뭘 잘하지 못하고 해맑은 친구가 있으면 ‘재는 온실 속 화초 같아’라는 말을 했다.

이 표현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그 안에 숨겨진 대표적인 의미들은 ‘갑갑하다’, ‘세상 물정 모른다’, ‘같이 뭘 하기 싫다’였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친구들과 뭔가를 할 때마다 난 어느새 억센 잡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시 그들은 나에게 있어 피해야 하는 귀찮은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도 그러냐고?

아니, 전혀 아니다.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부러운 존재이다.

온실 속 화초로 살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이상적인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당한 온도와 시의적절하게 공급되는 영양분과 물

그리고 환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빛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세상 물정? 모를 수 있으면 모르는 것이 복이다.

독립성과 자유?

꼭 야생이 독립성과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야생의 강자들이 오히려 힘의 논리로 우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기도 한다.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삶은 지금의 나에겐 Dream Life로 보인다.


나에게 있어서 여우 같은 친구들도 그랬다.

나하고 분명 어떤 사람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는데 그 사람이 나타나면 방긋방긋 웃으며 이야기를 너무나 친근하게 잘 나누는 것이다.

당시 내가 보기에 이 친구는 이중인격에 위선자이며 상종 못할 인간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아니, 전혀 아니다.


그들은 처세에 능하고, 높은 사교성을 보이며, 예의 바르고,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일 뿐이다.

지금의 나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표정과 태도에 드러내는 것이 미성숙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동시에 소위 자신에게 솔직하다는 인물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상대와 상황보다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를 모르고 적대적인 태도와 말을 듣는 당사자는 얼마나 당황스러울 것인가.


가끔은 나도 이 ‘여우’가 되고 싶다.

너무나 솔직해서 나 자신조차 당황하게 만드는 나를 볼 때면 ‘이 나이 먹고도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과 ‘난 도대체 언제쯤이면 교양 있고 우아해질 수 있을까’ 생각한다.


자, 그러면 지금의 나는 이 두 부류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만큼 이전과 달리 이들과 같이 있고 싶은가?


사실 이건 또 다른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나의 인격이 어느 수준까지 성장했는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나의 거친 면이 얼마나 다듬어졌는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인격은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 않다. 오늘도 수련을 통해서 1mm 정도 자라고 있다면 다행이다. 다만, 이런 나에게도 그들이 이전과 같이 버거운 존재는 아니다.

이제는 그들의 그런 모습이 짜증이 나기보다는 그렇구나 정도로 처리되기도 하며, 부럽기도 하며,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한 수 배우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떤 것에 대한 나의 지금 생각이 맞다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

다른 면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난 오늘도 꿈꾼다

‘온실 속 화초같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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