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너도? 나도!
휴대폰 알람 소리가 들린다. 비몽사몽 눈을 비벼 보아도 밖이 아직 컴컴하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을 끝까지 열어 환기한다. 저 멀리 자욱한 안개는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듯 다가온다. 이윽고 구름은 한바탕 몸을 털어 땅 위를 촉촉하게 적셨다. 장마철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습도다. 유독 습도에 약한 우리 집 아쿠아맨은 출근을 가장한 탈출을 시도한다. '이 정도 가지고 웬 호들갑'이라는 표정으로 출근 인사를 건넨다.
우리 둘이 이렇게 다른 걸 보면, 촉촉함과 축축함을 견디는 DNA는 분명히 있다. 학창 시절 중국 광둥성에서 맹훈련을 겪은 덕분이라 추정한다. 심천(선전시)는 홍콩 특별행정구와 맞닿아 있는 도시로, 5월부터 9월까지 평균 기온은 30도를 넘어서며 연 강수량의 76%가 집중된다. 파란 하늘에 속아 아침 창문을 열었다가 훅 들어오는 축축한 열기에 호되게 당하곤 했다. 비 오는 날 택시나 버스를 타러 가기까지 걸을 때면 따뜻한 물속에서 잠수하는 심정으로 길을 나서곤 했다.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건조한 것보다는 낫다고 위로했다.
오늘 아침 높은 습도와 비바람이 유독 반가웠던 이유는 야외 달리기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구에서 주관한 달리기 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신청했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회피하고 싶다. 자발적인 회피 대신, 외부 여건상 취소되길 바라며 단체 카톡방에 질문을 남겼다. 때마침 호우주의보 문자도 날아왔다. 하천변 출입 금지, 저지대 침수와 하천 범람 유의하라는 진동이 어찌나 반갑던지. 유의 사항을 성실히 지키는 시민이 되겠다는 굳은 의지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기다리던 카톡 소리가 울렸다. 4시 이후로는 비 소식이 없으니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답변에 좋아요 한 개가 달렸다. 서른 명 중 한 명이었다. 그 한 명이 나는 아니었다.
다들 비슷한 심경이었을까. 하고자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이중적인 마음으로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나아가, 그 모든 마음을 응원하고 싶다. 응원에 힘입어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꺾이지 않기를, 점점 더 커져가기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압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