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퇴사'보다 '영리한 퇴사'로 내 마음 지키기

저는 철저히 내 편이니까요.

by 스테르담
'조용한 퇴사'의 소란함


요즘,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소란합니다.

'조용한 퇴사'는 미국 20대 엔지니어 자이드 펠린의 틱톡 영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펠린은 "(조용한 퇴사는)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라며,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어느 분들은 그 생각에 흔쾌히 동의하실 테고, 또 어떤 분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후자 쪽입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 작가는 우리 편이 아닌 회사 편이야..."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겠죠. 단 한 가지.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저는 바로 '내 편'입니다. 고개를 갸우뚱 한 건 저를 위한 생각에서 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편이 되어야 합니다. '조용한 퇴사'를 선택하시는 분들도 스스로의 편에 서서 결정하신 걸 테니까요.


그러나, 무언가가 소란할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대세가 될지, 아니면 찻잔 속 태풍이 될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중점적으로 체크해야 합니다.


주중이 불행한데,
주말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흔히 전쟁터와 비유합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은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직장과 전쟁터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퇴근'과 '주말'입니다. 총알이 날아오고, 포탄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두 가지. 그러하기에 직장인은 한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펠린이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가 우리 일의 결과물로 정의되거나 좌우되면 안 되지만, '삶'과 '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우리네 삶은 더 고단해집니다. 더불어, 나를 위한 성장은 멈추게 됩니다.


월급 받는 것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직장인의 삶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는 지를 가늠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주어진 일' 이상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내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될 텐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불어, 주변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게 됩니다. 통제권을 갖고 싶다면, 사장이 되거나 일을 그만 두면 됩니다. 내 업무 영역이나 역량에 선을 긋는 순간, 힘들어지는 건 나 자신입니다. 선을 넘어오는 것들에 대한 불편함으로 노이로제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낸 한 주의 끝.

주말을 맞이하면 마음이 편할까요? 주중이 불행하면, 주말에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주중에 무언가 보람을 느꼈다면.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덜 불행했다면. 주말엔 좀 더 편하게 쉴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인데, 놀랍게도 '주말'은 '주중'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재충전하는 시간이니까요.

월급쟁이라면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으면서 월급은 받으려고 하니 괴리감은 커지고,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는 겁니다.


'조용한 퇴사' 보다,
'영리한 퇴사'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저는 회사 편이 아니라 '내' 편입니다.

고백하자면, '조용한 퇴사'를 해보지 않은 게 아닙니다. 20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굴곡을 만나게 되고 그 사이에서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인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슬럼프나 번아웃이 오면 자연스럽게 '조용한 퇴사'의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 당시, 몸은 편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여유 시간이 좀 더 생기긴 했지만, 그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지도 못했습니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시간을 어서 이겨내고 더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용한 퇴사'보다는 '영리한 퇴사'를 더 추천드립니다.

그렇다면, '영리한 퇴사'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걸까요?


저는, '영리한 퇴사'란 '언젠간 떠날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보다 더 많은 걸 얻어가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그 유형과 방법에 대해 함께 알아보도록 할까요?


첫째, '퇴근'을 매일의 '퇴사 연습'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 더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장 생활은 유한하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왜 놀라운 사실일까요? 우리는 마치 직장생활을 영원히 할 것처럼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굴러 올린 돌이 떨어져 다시 그것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저주처럼 말이죠. '반복'의 늪에 빠지면 우리는 그것이 마냥 지겹고, 또 영원히 지속될 것이란 착각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때가 옵니다.


평생 월급쟁이의 삶을 투덜거리다,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닌 삶을 살게 되면 어떨까요?

막막하지 않은가요? 수 십 년의 직장생활 후 남은 게 불평과 행복하지 않은 삶 쪼가리라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저는 어느새부턴가 매일의 '퇴근'을 '퇴사 연습'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퇴사하면 나는 뭐가 될까. 어떤 존재가 될까. 회사 명함이,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가 벗겨지면 내 본질은 무엇일까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글을 쓰게 된 것도 질문을 던진 그즈음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니, 또 다른 길과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은.

다른 길과 기회를 엿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함과 의미를 새로이 찾게 되었다는 겁니다. 더불어, 직장생활은 저에게 많은 글감과 영감은 물론 성장의 기회를 안겨다 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직장에서 얻은 인사이트 덕분입니다.


유한성을 깨닫고 나면, 모든 게 새로워 보입니다.

매일을 퇴사한다는 마음은 또 다른 많은 기회를 줌과 동시에, 지금 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둘째,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처를 입으면 즉시 마음속 퇴사를 할 것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는 거야? 초등학생도 그거 보단 잘하겠다!"

폭언이 많이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이러한 말을 하는 상사들이 꽤 많습니다. 순한 표현을 써서 그렇지, 이보다 심한 말과 자괴감을 들게 하는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도 여전합니다.


예전에 저는 이러한 말의 비수를 그대로 제 마음에 갖다 꽂았습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내 부족함이야...' 또는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지?'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무례한 말을 한 상사를 마음속으로 수없이 욕하기도 했지만, 자존감과 자존심이 바닥 치는 걸 막을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리한 퇴사'를 실천한 이후부터는 저는 덜 상처받고 덜 다치고 있습니다.

폭언이나 무례한 마음을 들으면, 저는 마음속으로 즉시 퇴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속 퇴사'가 무엇일까요? 제 자신을 '회사 밖 존재'로 생각하는 겁니다.


우리는 직장이라는 바운더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집니다. 남극에 파견된 연구원과 군인들, 잠수함을 타고 오랜 시간을 해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우주 공간에서 우주인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할 때 심리와 행동이 격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립 효과(Isolated Effect)'입니다. 직장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은 격해지고, 상처는 더 커지는 이유입니다.


상사에게 욕을 먹었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비수와 같은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를 직장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재빨리 옮겨놔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나를 회사 밖 존재로 규정하는 겁니다. 직장에서의 내 모자람이, 내 존재 자체의 모자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업무에서의 실수와 부족함이, 내 삶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내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는 일은 지양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하여, 마음속 퇴사를 재빨리 하는 것은.

직장인으로 나 자신을 국한하는 것이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한 '영리한 퇴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셋째, 월급 이상의 것을 볼 것 (나갈 때 더 챙겨 나갈 수 있도록)


월급은 언제나 빠듯합니다.

얼마를 벌든 간에, 항상 얼마만큼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이것은 월급의 미덕인지, 미스터리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래서 직장인은 월급에 절대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불평과 불만도 그것에 기인합니다. 일확천금과 같은 액수를 월급으로 받는다면 직장인에게 '불평'이나 '조용한 퇴사'와 같은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월급 이상의 것을 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남는 장사를 위함입니다. 내 심리적 만족을 위함입니다. 마음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월급 이상의 것을 얻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의미 찾기'와 '의미 만들기'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십 수년 차에 저는 번아웃을 겪었습니다. '조용한 퇴사'를 누구보다 더 조용하게 실천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든 게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긴 시간을 열심히 내달려 왔는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니 마음이 너무 허했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의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찾지 못하면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을 글로 남겼습니다. '나'는 물론, 나와 같이 힘들어할 후배들에게 남길 요량으로 말이죠.


글과 의미가 모였고,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아 <직장 내공>이라는 저서가 되었습니다.

저는 월급 이상의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수 받은 선물이었습니다. 그 선물의 기반은 묵묵히, 또 열심히 일해 온 저의 시간과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루하루 하고 계신 '반복'은 무의미한 게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직장생활은 유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반복'은 무의미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그 어떤 '과정'이며 '근육'을 단련하는 행위라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란 시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적용하여 말하면, '내가 그 어떤 것들에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것들은 나에게로 와 꽃(선물, 가치)'가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언젠가, 어차피 나가야 한다면.

뭐라도 하나 더 챙겨 나가야 하는 게, '영리한 퇴사'가 아닐까요?




솔직해져 봅시다.

나는 '조용한 퇴사'를 외치면서. 상대방이 '조용한 퇴사'를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할까요?


열정이 없다,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니냐,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학생의 본업은 '공부'고.

직장인의 본업은 '일'입니다.


언젠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상위 성적을 늘 차지하는 학생에게 왜 이토록 열심히 공부하냐는 인터뷰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대답을 보며, 저는 전율을 느꼈는데요. 그 대답은 바로,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공부가 내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본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존재에게 '행복'이란 확률은 얼마만큼일까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선을 그어 놓는 직장인에게 과연 '의미'란 있을 수 있을까요? 지금 주어진 일도 제대로 해내지 않는데,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영리한 퇴사'는 얼마든지 각자의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위의 예시는 철저히 제 개인적인 방법입니다. 분명한 건, 저는 이 것을 통해 본업에 충실하고 또 새로운 페르소나와 기회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더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이전보다는 좀 더 주체적으로 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조용한 퇴사'를 할지. '영리한 퇴사'를 할지.


우리는 언젠간, 퇴사를 해야 하는 존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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