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자주 '생각'해야 하는 이유

남의 감정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by 스테르담
거, 순간만 좀 참지...???


제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난폭 운전을 하던 승합차량에게 항의를 표한 운전자가 가족이 보는 앞에서 승합차 운전자에 의해 폭행을 당했습니다. 삽시간에 해당 뉴스는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급기야 국민청원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낸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잠깐의 화를 누르지 못했냐며 가해자에게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가해자의 행동과 잘못은 그 어떠한 말로도 변명하거나 해명될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운전할 때 내 앞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차라던가, 나에게 경적을 울리는 차에게 분노를 표출했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차에서 내려 그대로 다툼을 하려 했던 상상도 여러 번 했음을 고백합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순간은 한 번, 또는 여러 번 있었을 겁니다. 가해자의 잘못은 잘못이고, 그러한 행동을 촉발한 '감정'에 대해선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순간 올라오는 '화'라는 감정을 의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남의 감정은 '생각'하고,
나의 감정은 '느낀'다.


"거, 순간만 좀 참지..."란 말을 우리는 아주 쉽게 합니다.

직장에서도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좀 참지 그랬어. 그 순간만 참았어도 일이 그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거 아니야."란 말. 직장은 물론 일상에서도 아주 친숙하게 오가는 말입니다.


이 말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대리 시절, 팀원들 모두가 모은 곳에서 팀장님에게 큰 소리로 대들었던 저는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이 친숙한 말을 스스로에게 천 번은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남 일 말하듯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조언은 감정을 느낀 당사자에게 내뱉는 제삼자의 오만과 거만입니다.

그 말을 건네는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그저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이성'을 뜻하고, 느끼는 감정보다는 일어난 '상황'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그러한 상황이라면 너는 이랬어야 하는 게 맞아'란 말을 기계적으로, 계산적으로, 합리적으로 간단명료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조차도, 정작 자신의 감정이 요동하는 상황이 오면 의연함을 잃기 마련입니다.

왜일까요? 그 순간, 감정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날 것 그대로 '느끼기'때문입니다. 오롯이 전해지는 감정으로 맥박은 빨라지고, 식은땀은 줄줄, 호흡이 거칠어지는 상황에서 고상하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단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하므로, 우리는 누군가의 감정 반응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됩니다.


즉, 우리는 누군가의 감정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감정에 있어선 어느 순간이라도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겸허해야 합니다.


이젠, 내 감정을 좀 '생각' 해볼까?


어릴 적, 아주 재밌게 봤던 코믹 영화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제목이 잘 기억나진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는 건, 주인공이었던 한 형사가 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단 겁니다. 그저 느끼는 대로 욕을 퍼부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수많은 항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형사는 뜻밖의 처방을 받게 되는데요. 그것은 바로, 욕을 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욕 대신 '과일 이름'을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영화 중반부 이후부터는 형사 대사의 대부분이 과일 이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밌는 장면이었지만, 이게 얼마나 '심리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를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매투 리버먼 (Lieberman) 교수팀은,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편도체와 전두엽이 서로 상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편도체는 '감정'을 관장하고 전두엽은 '이성'을 담당하는데, 슬픔이나 분노를 말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슬프구나'라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감정이 상쇄되어 슬픈 그 감정이 누그러진다는 것. 슬플 때 '슬프다', 화날 때 '화났다'라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감정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심리학에선 이를 '인지적 전환'이라고 합니다.

느껴진 감정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떤 느낌을 가졌는지 '생각'하는 것. 다른 것으로 표현해 보는 것. 그럼으로써 전두엽은 활성화되고 마치 내가 남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듯 '이성적'으로 판단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형사의 경우, '아 내가 화가 났구나. 그러니 욕이 나오겠네. 이걸 과일 이름으로 바꾸어야겠다'라는 인지적 전환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생각'하려 노력하되
감정 그 자체를 '존중'할 것


하지만 감정은 그대로 느끼는 것이 맞습니다.

감정을 자주 생각하라고 해서, 분노가 가득 찬 시점에 "난 화난 게 아니야, 난 괜찮아"라고 부정해선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억압/ 억제하는 것으로 오히려 정신에 무리가 가는 일이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처사가 됩니다. 희로애락은 사람의 본능이고, 그것을 느낌으로써 우리는 온전히 살아갑니다. 그것을 반대로 느끼거나, 못 느끼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기쁠 땐 기쁘고 슬플 땐 슬퍼야 하는 게 맞습니다.

이렇게 보면, 누군가의 감정에 개입을 하지 못한다는 공식은, 자신의 감정에도 적용되는 것이 됩니다. 내 감정이 그렇다는데, 거기에 반기를 들거나 대항을 하기보단, 생각(인지적으로 알아차리기)하고 찬찬히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직장인은 분야를 불문하고, 모두가 감정 노동자입니다.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분업이 되어 있고, 분야별로 정형화가 되어 있으며 Process와 R&R(Role & Responsibility)로 굴러가는 곳이 직장입니다. 만약, 우리가 출근을 해서 이러한 '일'만 하고 간다면 기계 또는 로봇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일어나는 기쁨, 보람, 슬픔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많은 변수를 야기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감정들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발판 삼아 성장합니다. 또 누군가는 그 감정들에 의해 깊은 상처가 생겨 피를 철철 흘리고, 다른 누군가는 용기 또는 오기를 얻어 분투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감정 노동자로서.

직장인은 자신의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살아 남기 위함이고,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려 성장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상대 운전자를 폭행한 승합차 가해자에게, 그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그러한 일을 벌였냐는 비난을 퍼부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남의 감정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내 감정에 오롯이 충실하되, 그 감정을 인지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생각'의 틈을 살펴야 합니다.


자주 그러할수록, 우리는 좀 더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직장에서 일어나는 '욱'하는 수많은 상황의 고비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나를, 내 마음을, 내 월급을, 내 성장을, 내 기회를 지켜낼 수 있게 됩니다.


당장 그러는 게 쉽지 않다면, 기분이 나빠 욕을 하고 싶을 때 좋아하는 과일을 말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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