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에세이>
연애의 끝은 이별 또는 결혼이라 했던가.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다른 생각에 대한 답은 잠시 뒤로 미뤄 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혼이란 남녀 역할의 변화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갈린다는 것이다.
이성(異性)은 만나 불꽃이 튀며 서로를 탐색하고 탐욕한다.
그러다 결혼하면 남편과 아내란 역할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에, 부모라는 무게까지 얹어진다. 분홍빛으로 시작되었던 연애의 순간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역할의 변화는 일생에 있어 큰 변화다.
큰 변화는 큰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경험도 하나도 없는 고난도의 라운드가 주어지며 그렇게 삶은 고단해진다.
그래서일까.
아내를 부르는 호칭은 하나가 아니다. 연애 때 달콤한 애칭은 따로 없었다. 이름 부르는 것이 좋았다. 아내의 이름이 예쁘기 때문이다. 입에 짝 붙는 발음도 발음이거니와,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름 자체가 애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년이 한참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내의 이름을 부른다.
또 하나의 호칭은 바로 '엄마'다.
누구누구 엄마... 가 아니라, 그냥 '엄마'로 부른다. 두 아들의 엄마라, 연약함에서 강인함을 쌓아가고 있는 아내에게 나는 세 번째 아들로 스스로를 귀속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나는 재밌다. 일종의 응석이랄까. 연애 때는 몰랐던, 아이들을 너무나 잘 챙기고 양육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한 부분도 아내를 '엄마'로 부르는 이유 중 하나다. 고맙고, 감사하고, 아름답고, 든든하다.
남자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물건을 잘 찾지 못한다.
'엄마, 그거 어디 있더라?'라고 물으면, 아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로 앞에 놓인 내가 찾는 물건을 눈빛으로 가리킨다. 나는 무안하여 한 마디 한다.
"나 손 많이 가는 거 모르고 결혼했어?^^"
그 한 마디에 서로 웃는다.
한심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아내는 나와 아이들을 살뜰히 챙긴다. 눈앞에 있는 것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남정네들이 셋이나 있으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도 때론 응석을 부리고 싶다.
살뜰히 챙기는 아내의 모습에, 결혼은 연애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연애의 시작이라는 걸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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