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속도로 올라가나 했더니, 사랑에 빠지는 속도는 초고속급이며 꼬이고 뒤집히는 스릴을 맞본 뒤 어느새 종착지에 다다라 기쁨의 비명을 질렀던 때를 반추할 새도 없이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사람의 감정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데,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보다 한 수 위여서 변화의 정도가 막심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명대사는 단연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다. (물론, 라면 먹고 갈래요... 를 더 명대사라 칭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대사는 사랑이 얼마나 잘 변할 수 있는지를 방증하는 대사다.
사랑의 변화로 인해 상처받지 않아 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애초에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그것 자체가 허무맹랑한 비극 아닌가. '사랑'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보려는, 절대적인 무언가로 갈음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괘씸한가. 괘씸죄에 걸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사랑에 울고 웃고 있는지 모른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란 대사를 곱씹다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완성한 대사는, '어떻게 사랑이 나보다 빨리 변하니'였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묻는 남자 주인공(상우)의 질문은 세상의 공공성을 나타내는 절대적인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너의 사랑'이었을까. 그가 뱉은 질문 속 '사랑'은 모두가 아는 공통의 의미에 가까웠겠지만, 내가 받아들인 그의 '사랑'이란 단어는 '너의 사랑'이었다. 만약, 상우의 사랑이 먼저 변했다면 이러한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사랑의 변화에 관계없이 이별을 고했으면 되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사랑에 대한 온갖 증오와 변명, 그리고 아쉬움은 '나보다 빨리 변한 (너의)사랑'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