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에세이>
아마도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퇴사나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사무치도록 유행하던 때, 나는 그것에 의문을 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퇴사를 한 사람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냈지만, 퇴사한 '순간'만을 조명하는 글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 이것은 잘잘못의 여부가 아니었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나에겐 현실로 다가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고, 혹여라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 이들에게 잘못된(?) 결심을 하게 하진 않을까... 란 오지랖과 같은 걱정도 앞섰다. 대개는 대책 없는 퇴사가 주를 이루었다. 또는, 책임질 사람 없이 퇴사를 해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는 이들의 이야기였기도 했다.
'힐링'은 어떨까.
어느새부턴가 '휴식'이란 말이 '힐링'으로 대체되었다. '힐링'은 '치유/ 치료'란 뜻이다. 환자에게 쓰이는 말이다. 안다. 우리네 사회에서, 직장인으로 학생으로 육아자로 사업자로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다만, '힐링'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환자'로 만드는 그 모양새가 안타까웠다. '힐링'이란 말로 검색을 해보자. 휘황찬란한 여행과, 안마의자가 나올 것이고 이는 대부분 '소비'와 관련한 것들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즉, '힐링'은 마케팅 용어에 더 가깝다. 마케팅 용어는 지갑을 열게 하는 주문이다. 나는 환자이니 치유가 필요하다...라는 가스라이팅의 주문. 소비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프면 치료받아야 하고, 힘들면 휴식해야 한다. 그러나,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듯, 쉬지 않아도 되거나 아프지도 않은데 치유부터 해야겠다는 본말전도의 소비는 스스로를 환자로 치부하는 것이며, '힐링'이라고 일컫는 소비를 하고 난 뒤 오는 더 큰 공허함은 정말로 우리를 아프게 할 가능성이 높다.
고백하건대, 퇴사든 힐링이든.
나 또한 그것에 휘둘리지 않은 건 아니다. 경제적 자유라는 달콤한 말에 혹하여 미래폰지를 하는 사람들의 강의를 본 적도 있고, 힐링이라는 명목하에 조금은 더 비싼 여행 상품을 뒤적인 적도 있다. 이후에 깨달은 건, 경제적 자유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럭셔리한 여행이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련의 사회적 물결에 동조하다, 글을 씀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봤다.
키워드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자고 결심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나는 늘 괜찮아야 한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압박한 것은 아닐까.
안 괜찮아도 괜찮은 것 아닐까. 항상 괜찮은 것만이, 그것만이 삶일가.
안 괜찮아도 괜찮다는 말을 되뇌면, 오히려 더 큰 안도와 용기가 생겼다.
늘 괜찮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스스로에게, '안 괜찮아도 괜찮다...'라고 한 마디 해주길 바란다.
안 괜찮아도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괜찮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