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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하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스테르담 심리 에세이>

by 스테르담

삶은 왜 이리 불편한지 모르겠다.

불편하다 못해 불쾌한것 투성이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 내 맘과 같지 않은 사람들, 내 맘은 모르는 세상. 게다가 서로를 후벼 파기까지 하는 운명의 잔혹함은, 결국 사람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배고파도 불편하고, 배불러도 불편하다.

숨 쉬어야 하는 것도 불편하고, 조금이라도 산소가 부족하면 그 또한 불편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 행복하지만 불편한 건 분명 존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그 자리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 또한 불편하다.


삶은 왜 이 모양일까.


질문을 더듬어보니, 그러게. 삶엔 그 어떤 모양이 있는 모양이다.

모양엔 실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 두 가지가 공존한다. 만질 수 있는 모양과 그러하지 않은 모양. 삶은 후자다. 만질 수 없다. 그러나 기괴하고 불편한 그 모양을 우리는 직접 맞닥뜨리며 가늠한다. 분명, 삶의 모양은 그리 둥글둥글하거나 매끄럽진 않을 것 같다.


즉, 삶의 모양은 편하지 않은 무엇이다.


직장인이란 페르소나는 불편함에 불편함을 더한다.

정치와 눈치. 신입사원의 포부는 한낱 잠시 피어오른 연기처럼 사라지고, 남은 건 영혼 없는 껍데기뿐이다. 때려치울까...라는 다짐은 책임져야 할 것들을 떠올리며 어린아이 투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긴 직장생활을 해오며, 지금처럼 힘든 적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인격모독. 자아상실. 실적압박. 나와 상관없는 것들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과중한 마음의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내 마음을 편하지 않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살 길을 찾는다.

버팀이 삶의 가장 큰 무기라는 걸 아는 나는, 어떻게 버텨야 할까를 고민한다. 고민하다 얻은 해답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나를 고려하지 않은 받아들임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나와 대화하고, 나와 합의를 한 후에 그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한다. 프레임을 바꾼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건,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 나를 욕한다면, 내가 잘 나가서이다. 부족한 건 채우되, 스스로를 체념하지 말자.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는 건, 나를 돌아봐야 한다는 기회다. 나를 돌아봐야 한다는 건, 그동안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다는 방증이 되기도 하다. 누군가의 욕을 고맙게 생각하자.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진 않는다.

앞서 말했지 않은가. 원래 삶의 모양은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불편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불편하면 어떠랴. 이것이 내 삶인 것을.


애초에, 편하게 살려는 마음이 잘못된 것 아닐까.

타인의 삶이 편해 보이는 건, 어쩌면 착각일는지 모른다.


그들의 감정에 나는 개입할 수 없으므로.

저마다의 불편함이 분명 있을 것이므로.


그저, 나의 불편함에 더 집중해야지.

오히려 불편한 선택을 늘려, 삶을 개척해 나아가야지.


불편함은 에너지라는 걸.

불편하다면 잘 살고 있다는 걸.


새삼, 다시 한번 더 깨닫고 마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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