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바야흐로 '소비'의 시대다.
수요보다 많은 공급이 만들어낸 세상의 흐름이다.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놓고 필요를 찾는 시대. 필요하지도 않은 걸, 우리는 광고와 함께 이 정도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당위로 하나 둘 사간다.
채워지는 건 집안이지만, 어쩐지 마음은 더 공허하다.
비싸고 좋은 것들이 주는 위안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며칠 후면, 또 다른 소비를 하며 그 마음을 달래고, 이러한 패턴은 계속 반복된다. 절대로 채워지지 않을 무엇.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사며 숨기려고 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 우리는 더 큰 절망과 우울, 그리고 존재의 옅어짐을 목도하고 경험한다.
이미 수많은 시간을 우리는 휴대폰과 소비에 빼앗기고 있다. 일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데, 대개의 시간을 짧은 동영상과 쇼핑에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존재는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어떻게 실존을 유지할 수 있을까. 숨 쉰다고 다 사는 것일까. 생각하지 않는데 존재할 수 있으며, 존재하는데 생각을 빼앗겨야 할까. 더더군다나, AI가 생각을 대신해 주는 이 무서운 시대에, 사람들은 '편리'와 '존재'를 맞바꾸려 한다. 이러다, AI가 우리 삶을 대신 살 판이다. 대개의 미래 AI 시대를 다루는 영화와 소설이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이유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시간문제일 뿐, 생각하지 않고 존재를 잊는 우리에게 일어날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고로, 우리는 마음을 채워가야 한다.
집과 물건이 아니라, 내 존재의 무게를 묵직하게 만들어 줄 마음의 어느 공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 그 무언가가 무얼까. 그것은 나의 생각과 사색, 결심과 다짐, 그리고 존재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나 생각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그것의 휘발성은 너무 커서, 생각함과 동시에 날아간다. 우리는 차분히 앉아서, 이 생각들을 박제해야 한다. 실체로 만들어 저장해야 한다. 늘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 내가 생각한 것들이 사실로 남으려면, 나 자신을 증명하려면 우리는 그것을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
그 최고의 방법이 글쓰기다.
채워가는 글쓰기. 내어 놓는 건 내 생각과 감점이지만, 그로 인하여 채워지는 건 그 이상의 것들이다. 전기 자동차에 회생 제동 장치가 있다면, 글쓰기엔 내어 놓는 것의 몇 배를 더 회생시킬 에너지가 가득하다.
채워야 한다.
내어 놓음으로써.
물리적 역학을 뛰어넘는 힘이 글쓰기엔 있다.
또한 사물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글쓰기엔 있다.
채우려면 내어 놓아야 하고.
내어 놓으려면 채워야 한다.
계속하여 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