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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AI 생태계, 어떻게 세계를 흔들고 있나?

전략적 진화와 글로벌 영향력 확대 이야기

글로벌 인공지능 지수 2024가 발표되었다. 예상대로 미국이 1위, 그리고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단순한 순위가 아니다. 중국이 미국과의 격차를 꾸준히 줄여가고 있으며, 싱가포르 등 다른 후발 국가들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성과는 우연이 아니다. 국가 주도 전략 + 데이터 자산 + 빠른 상용화 속도 + 오픈소스 표준화라는 네 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기술 독점이 아닌 '오픈소스(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된 기술)를 통한 글로벌 영향력 확대'라는 새로운 전략으로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거대한 청사진, 어떻게 현실이 되었나?


2017년, 중국은 '신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 계획이 아니었다. 국가 전체의 디지털 전환을 위한 마스터플랜이었다. 14차, 15차 5개년 계획에서 AI를 '전략 핵심 기술'로 명시하며, 중앙정부의 거대한 비전과 지방정부의 구체적 실행 전략을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만든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국가 단위의 인공지능 인프라였다. 국가 데이터 거래소를 설립하고,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를 통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전국에 배치했다. 그리고 이 인프라 위에서 제조업, 의료, 금융, 교통 등 모든 산업에 인공지능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결과는 놀라웠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인공지능 관련 국가 표준 79건을 제정했고, 최근 10년간 인공지능 특허 출원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중국은 단순히 '기술 보유국'을 넘어 '기술 활용국'으로 자리 잡았다.


혁신의 심장, '모속공간'에서 벌어지는 일


상하이에 위치한 모속공간(模塑空间, 스마트 모델링 센터)을 아는가? 이곳은 대형 인공지능 모델 전용 혁신 허브로, 인공지능 개발부터 상용화까지의 전 과정을 한 곳에서 지원한다. 쉽게 말해,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만 가져와도 개발부터 시장 진출까지 풀 패키지로 지원해주는 '인공지능 생태계 공장'이다.


이곳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픽 처리 장치(GPU) 5만 장, 컴퓨팅 파워 30 엑사플롭스(EFLOPS, 초당 30경 번의 연산 처리 능력)를 보유하고 있어, 작은 스타트업도 대규모 인공지능 모델을 실험할 수 있다. 5대 공공 서비스 플랫폼(컴퓨팅 파워, 개방형 데이터, 모델 평가, 금융, 종합지원)을 통해 기업들의 혁신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여준다.


성과도 놀랍다. 설립 1년 만에 100여 개 인공지능 기업을 유치했고, 투자유치율은 88%에 달한다. 이는 기술-자본-시장 연결의 효과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빅테크 5대장, 각자의 전략으로 생태계 완성


중국 인공지능 생태계의 핵심은 빅테크 기업들의 역할 분담이다. 각자 다른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며,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바이두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표준 제시자다. 어니 봇(ERNIE Bot)으로 중국어 특화 대형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을 선도하고, '만카 클러스터'를 통해 국산 인공지능 인프라 자립을 이뤘다.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Apollo)'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며 글로벌 표준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알리바바는 오픈소스의 선봉에 서 있다. 대형 언어 모델 '통의천문(通义千问)'을 공개한 결과, 14만 개의 파생 모델이 만들어졌다. 세계 최대 규모인 15 엑사플롭스의 인공지능 인프라를 운영하며, 전자상거래와 물류 영역에서 인공지능 최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텐센트는 인공지능 대중화의 주역이다. 위챗과 QQ라는 거대한 소셜 플랫폼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서비스를 일반 사용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했다. 산업별 맞춤형 마스(MaaS, Model as a Service, 모델 서비스형) 방식으로 기업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화웨이는 자립의 상징이다. 아센드(Ascend) 칩과 마인드스포어(MindSpore) 프레임워크로 인공지능 반도체 자립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120개국에 스마트시티와 제조, 의료 솔루션을 수출하고 있다. '디지털 실크로드'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딥시크는 게임 체인저다. MIT 라이선스(상업적 이용도 자유롭게 허용하는 오픈소스 라이선스)로 인공지능 모델을 전면 공개하며, 초저가 고성능 모델로 글로벌 인공지능 판도를 흔들고 있다. 70개 지자체에 '인공지능 공무원'을 도입하는 등 공공 부문 혁신도 주도하고 있다.


떠오르는 '인공지능 호랑이들'의 약진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푸 인공지능(Zhipu AI), 문샷 인공지능(Moonshot AI), 미니맥스(MiniMax), 바이추안 인공지능(Baichuan AI), 01.AI 등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호랑이들(AI Tigers)'이 특정 기술 영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장문 처리, 멀티모달(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을 동시에 처리하는 기술), 경량화 등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빠르게 상용화에 성공하고 있다.


특히 엑스탈파이(XtalPi) 같은 인공지능+바이오 융합 기업은 신약개발 전 과정을 자동화하며 '인공지능 산업 다각화'의 대표 사례가 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중국 인공지능 생태계가 단순히 IT 분야를 넘어 전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픈소스로 세계를 바꾸려는 중국의 야심


중국의 새로운 전략은 '오픈소스를 통한 글로벌 영향력 확대'다. 기술을 독점하는 대신 공개하여 사실상의 글로벌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딥시크의 MIT 라이선스 전면 공개와 알리바바의 14만 개 파생 모델은 이런 전략의 결과물이다.


이는 미국 중심의 폐쇄형 인공지능 생태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기술 패권에서 표준 패권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그래픽 처리 장치 대체 칩(쿤룬, 아센드)으로 기술 자립을 이루고, 외부적으로는 120개국 스마트시티 수출과 '디지털 실크로드' 확장을 통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중국의 성공 공식은 명확하다. 의도적 생태계 설계 + 기업 역할 분담 + 오픈소스 기반 표준화다. 하지만 한국이 이를 그대로 모방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 설계 역량과 인공지능 칩 융합 기술, K-컬처 기반 크리에이티브 인공지능, 정밀 제조업 인공지능 등에서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동남아와 중동 같은 신흥국 시장을 겨냥한 '휴먼 중심 인공지능 도시(Human-Centric AI City)' 모델로 중국과 차별화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단순한 기술이 아닌 '국가 전략 자산'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중국이 보여준 것처럼, 인공지능은 이제 개별 기업이나 기술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전체의 혁신시스템을 바꾸는 핵심 인프라다.


다음은 무엇인가?


중국 AI 생태계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다음에는 이들의 오픈소스 전략이 어떻게 글로벌 AI 표준 경쟁을 재편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변화의 물결에서 한국이 어떤 기회를 찾을 수 있는지 더 깊이 들여다보겠다.


기술의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가 그 미래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결정할 차례다.


출처: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AI·ICT Brief』 2025-28호, 「중국 AI 생태계의 전략적 진화와 글로벌 영향력 확대」,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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