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한쪽, 묶인 강아지를 마지막으로 본 날. 그 눈빛은 맑았다. 숟가락을 들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어린 나는 시간을 셀 줄 몰랐다. 다만 그 무한히 긴 망설임만을 기억한다.
며칠 뒤 강아지가 사라졌다.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밥상 위 냄비가 모든 대답을 대신했다.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삶은 고기의 냄새와 땀 냄새가 뒤엉켜 나왔다. 나는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어른들은 '아까워서 그런다'며 웃어넘겼다. 그러나 아까운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 나는 며칠 전까지 살아 있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냄새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개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동네 골목에서 개를 만나면 눈을 피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숙집 근처에서 개장국 냄새가 나면 그 골목을 피해 돌아갔다. 어느 여름밤, 골목 모퉁이를 돌자 개장국 간판의 붉은 네온사인이 아스팔트 위로 번져 있었다. 나는 발을 멈췄다. 십 미터 앞, 식당 문틈 사이로 친구들이 손짓했다. "야, 빨리 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속이 좀 안 좋아서." 친구들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붉은 불빛 아래 한참을 서 있었다. 내 그림자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달라졌다. 입사 오 년 차 여름, 부장이 회식 장소를 정했다. "오늘은 보신탕이다." 나는 "네,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부장의 눈빛이 내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식당에 도착했다. 주방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부장이 건넨 뚝배기 속 국물은 이미 한 김 식어 있었다. 어린 시절 냄비의 뜨거움이 나를 물리쳤다면, 이 미지근함은 나를 끌어당겼다. 식은 국물일수록 삼키기 쉽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배웠다.
숟가락을 들었다. 입 속으로 넘겼다. 부장이 말했다. "역시 젊은 애들은 달라. 거리낌이 없어." 나는 웃었다. 동료들도 웃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을 온몸에 끼얹으며 냄새를 지우려 했다. 그러나 지워지지 않는 것은 냄새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삼켰는지 모른 척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십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개장국을 스무 번쯤 먹었을 것이다. 매번 국물을 떠올릴 때마다 강아지 눈빛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대신 내 명함 위의 직급은 선명해졌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과장에서 차장으로. 그렇게 나는 팀장이 되었다.
이천십 년 겨울,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비정규직 삼십 퍼센트 감축." 나는 엑셀 파일을 열었다. 이름, 나이, 근속연수, 평가 점수. 함께 일한 사람들이 숫자로 환원되었다. 마우스를 클릭했다. 한 번에 한 명씩. 성과 점수 육십팔 점. 근속 사 년. 평가 C등급. 셀을 드래그하자 노란색으로 변했다. 노란색은 '재계약 불가'를 의미했다. 한 사람당 걸린 시간은 영 점 삼 초였다. 강아지 눈빛을 떠올리는 데 걸린 시간. 영 초. 나는 다음 이름으로 커서를 옮겼다.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비정규직 직원들이 보였다. 점심시간이었다. 그들은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유리에 햇빛이 반사되어 그들의 얼굴이 흐릿했다. 나는 블라인드를 내렸다. 명단을 완성하고 본부에 보고했다. 일주일 후, 그들은 사라졌다. 복도에서 마주쳤던 얼굴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빈 책상 위로 형광등 불빛만 내려앉았다. 나는 그 빈자리를 지나치며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즈음 마트에 변화가 생겼다. '동물복지 인증', '풀 먹인 소'라는 문구가 붙은 고기들이 등장했다. 나는 그런 고기를 골라 장바구니에 넣었다. 가격표를 보았다. 일반 삼겹살보다 오백 원 비쌌다. 계산대를 지나며 생각했다. '이 소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겠지.' 그 오백 원이 무엇을 샀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이십오 년이 지났다. 은퇴 통보를 받던 날, 인사팀장이 악수를 청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그러나 그 온기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조직이 개인에게 건네는 마지막 형식이었다.
집에 돌아와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이십오 년간 내 가슴에 달렸던 이름표들이 빼곡했다. 플라스틱 케이스, 천으로 짠 목걸이형 이름표, 회사 로고가 박힌 금속제 배지. 하나하나 꺼내 쓰레기통에 던졌다. 가볍게 떨어지는 플라스틱 소리가 났다. 거울 앞에 섰다. 가슴에 네모난 자국이 남아 있다. 햇빛에 바래지 않은 옷감의 흔적. 나는 그 자국을 문질렀다. 이름표가 가리고 있던 이 가슴은 이십오 년 동안 무엇을 느꼈을까.
다음 날부터 혼자 장을 보러 다녔다. 마트 진열대 앞에 섰다. 냉장고에서 삼겹살 포장을 꺼냈다. 손에 닿는 플라스틱이 차갑다. 손끝이 저린다. 냉기가 주는 화상. 나는 포장을 들여다본다. 플라스틱 모서리에 핏물이 고여 있다. 비닐 위로 체액의 자국이 번졌다. 백 그램에 이천구백팔십 원이라는 숫자 너머로 누군가의 몸이 찢겨 나온 살점이 보인다. 형광등 불빛이 고기를 비춘다.
투명한 포장은 투명하지 않다. 투명한 것은 포장이 아니라 보지 않기로 한 나의 선택이었다. 이십오 년간 유리벽은 나를 지켜주었다. 아니, 갇혀 있게 했다.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본 세상도, 비닐 포장 너머로 본 고기도 모두 추상이었다. 이제 그 막이 벗겨졌다. 날것이 드러났다.
집에 돌아와 삼겹살을 구웠다. 김이 피어올랐다. 고소한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그 순간, 손이 정지했다.
삼 초.
젓가락이 입술에서 삼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고기에서 피어오르던 김이 식는다. 기름이 굳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 굳어가는 속도를 응시한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는 마당 강아지와 눈이 마주친다. 묶인 채 나를 바라보던 그 맑은 눈동자가 접시 위 기름진 고기 너머로 나를 본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눈빛 앞에서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회사원 시절 나는 영 점 삼 초 만에 열두 명을 지웠다. 지금 나는 삼 초를 멈춰 있다. 이것은 용서를 구하는 시간이 아니다. 강아지는 이미 죽었고 용서할 주체도 사라졌다. 공범임을 자인하는 시간도 아니다. 나는 이미 안다, 내가 이것을 먹을 것임을.
이 삼 초는 도망치지 않고 응시하는 시간이다. 외면하지 않고 먹기 위한, 비겁하지만 정직한 의례. 멈춤이 있어야 움직임의 무게를 안다. 응시가 있어야 섭취의 의미를 안다. 젓가락이 고기를 집는다. 입 속으로 들어간다. 씹는다. 그리고 천천히, 더 천천히. 강아지의 눈동자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삼 초 후, 나는 먹는다.
어제는 이 초였다. 오늘은 삼 초다. 내일은 사 초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 멈춤이 영원이 될지, 아니면 영원히 몇 초로 남을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내일 다시 고기 앞에 섰을 때, 나는 또 멈출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일요일, 나는 마트에 가지 않았다. 냉장고에 고기가 떨어졌지만 채우지 않았다. 대신 된장찌개를 끓였다. 버섯과 두부를 넣었다. 국물이 끓어오를 때 나는 뚜껑을 열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월요일 점심, 친구가 전화했다. "고기 먹으러 가자." 나는 대답하기 전에 삼 초를 주저했다. 친구는 기다렸다. "괜찮아?" "응, 괜찮아. 어디로 갈까?" "삼겹살집 어때?" 나는 다시 삼 초를 머뭇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냉면 먹자. 오늘은 냉면이 당긴다."
친구는 의아해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우리는 냉면집으로 갔다. 나는 완벽한 윤리를 말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설교하지도 않는다. 나 역시 삼겹살에 환호하고 치킨 배달을 기다리는, 이 모순 속을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성찰의 고통이다. 어린 시절 강아지의 눈빛을 외면했던 나를 끊임없이 소환하고, 찜찜한 감각을 지워내지 않고 부여잡는 행위. 이것이 포식자로서 내가 택한 최소한의 윤리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본다. 이름표 없는 얼굴이 편안하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허벅지에 전해지는 묵직한 저항감, 그 정직한 무게를 느낀다. 저녁이 되면 나는 부엌에 선다. 냉장고 문을 연다. 어떤 날은 고기가 있다. 어떤 날은 없다.
고기가 있는 날, 나는 그것을 꺼낸다. 투명한 포장 너머로 강아지가 나를 본다.
나는 멈춘다.
삼 초.
어제보다 조금 더 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