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감옥

제한이 자유를 줄 때

by 지전

나흘 뒤 출국을 앞두고 있다. 뉴욕까지 장장 열네 시간의 장거리 비행이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포상이다. 통신이 끊기고 탈출이 불가능한 장거리 비행의 시간을 아주 좋아한다. 그동안—누가 가둬주지 않아서—못 봤던 콘텐츠들을 몰입해서 잔뜩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떤 경우에는 제한이 더 넓은 자유를 선사하기도 한다.



풍요 속 빈곤

Open World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언뜻 더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오히려 자유도가 너무 높은 일상은 결정 자체를 더 어렵게 한다—실행불가. 젤다의 전설, 레드 데드 리뎀션을 비롯한 오픈 월드 게임은 유저들을 드넓은 벌판에 던져두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한다. 너무나 완벽한 자유로움에 압도되어 어떤 유저들은 입구를 서성거리다가 그만 게임을 종료하기도 한다. 명확한 메인 퀘스트가 주어질 때 방황하지 않고 더 확실하게 몰입하여 플레이 할 수 있다.


White Canvas Syndrome 백지 공포증

창작 활동이 어려운 이유도 비슷하다. 어떤 방향을 선택하는 순간 그 이외의 모든 가능성은 접어둘 수밖에 없다. 대개 창작에 관해 말할 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부분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스케치가 되어있는 그림을 이어서 그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캔버스는 창작자를 마비시킨다. 무한한 가능성은 되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自由의 본질

고립된 환경 속에서 역설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건조한 공기, 비좁은 좌석, 끊겨버린 통신 신호—비행기라는 제약이 다른 선택지를 강제로 소거해 줌으로써 내가 원하는 것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그리고 덕분에 하나에만 집중하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못한—무수한 기회비용들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땅 위에서는 이걸 하는 동안 저걸 하지 못한다는 일종의 죄책감과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 맞았느냐 하는 의심에 몰입을 방해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옵션이 불가피하게 지워진 환경에서는 내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기에 그런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된다.


제한의 역설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는 자유가 아니라 최대 엔트로피의 상태이다. 극에 달한 무질서도로 인해 정보의 불확실성이 최대가 되어,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정보 공백의 상태다. 에너지는 사방으로 발산될 뿐 실상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자유의 본질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이 아니라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음(自由)’에 있다. 무한한 선택지 앞에 서 있을 때 우리는—심지어 최선의—결정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때 특정 컨디션이 결정을 가로막는 노이즈를 제거하여 우리를 해방한다. 조건이 주어질수록 진정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역설을 말하고 싶었다. 나흘 뒤 있을 합법적 수감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다음 주에는 우리 뉴욕에서 만나요!

지난 파리행 수감생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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