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관 클리셰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by 지전

'혐관'이란 혐오 관계의 준말로 2인 캐릭터 관계 서술 작법 중 가장 널리 사용되는 클리셰 중 하나이다. 기본적으로 서로를 증오하며 치고받고 싸우거나 비난을 하는 것은 물론 상대를 죽이려고 드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러나 혐관의 관계성은 그보다 훨씬 입체적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인간

혐관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대등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적 수준이나 가치관,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상대가 던지는 말이 나의 논리를 건드리지 못하면 긁힐 이유가 없다. 저 사람이 얄미운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나와 너무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같은 주파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좌표에서 부딪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서로의 논리 전개 방식이나 우선순위가 비슷하기 때문에 상대의 허점이 너무 잘 보이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긁힌다는 것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도 같은 논리 회로가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실은 인정한다

표면적으로는 짜증과 반목이 가득하지만 레이어를 한 겹 벗겨보면 반드시 상대에 대한 인정이 깔려있다. '오호라. 그래 너는 나와 견줄만한 재목이구나'하는 감각이 전제되어있지 않고서는 라이벌이 성립될 수 없다. 나에게 한참 못 미치는 상대라면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없기 때문에 싸울 이유도 없다. 혐관이 오가는 공방이 팽팽하게 유지되는 것 자체가 이미 서로에 대한 인정의 증거다. 따라서 혐관은 단순 적대감과는 차이가 있다. 언제나 겨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만 파고들기 마련이다.



각성이론: 서로를 끌어당기는 이유

가장 주목하고 싶은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분명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둘 사이 흐르는 살벌한 기류나 긴장감이 묘하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적절한 자극을 추구한다. 각성이론(Arousal Theory)에서 각성이란 유기체가 깨어 있는 정도, 즉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활성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각성이론의 핵심은 '적절한 수준의 각성이 최상의 수행 능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를 무조건 지지해 주고 다정하기만 한 관계에서는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에너지 0 상태. 혐관이 주는 서로를 향한 적당한 불쾌감과 마찰이 오히려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상대에게 지고 싶지 않아서, 혹은 상대의 날카로운 비판을 방어하기 위해 최적의 각성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나와 다르거나 내가 인정하지 않는 수준의 누군가(nobody)의 말은 한 귀로 흘릴 수 있지만 혐관의 지적은 뼈에 사무친다. 아이러니하게도 혐관은 가장 공격적인 형태의 팀워크라고도 볼 수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트라트와 그레이스

앤디 위어의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스트라트와 그레이스 박사는 이 '고에너지 혐관'의 표본이다. 인류 멸망을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스트라트는 냉혹한 결단력을 가졌고 그레이스는 정교한 과학적 해법을 가졌다. 작중 그레이스는 "우리 관계는 '서로 짜증을 느낀다'에서 '서로에게 심한 짜증을 느낀다'로 무르익어 왔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둘은 서로가 아니면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레이스는 프로젝트의 리더가 다름 아닌 스트라트라는 사실에 깊게 의지하며, 스트라트 역시 그레이스가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고 믿는다. 실은 누구보다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인 셈이다.

밥 리어델이 내 뒤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레이스 박사님, 박사님은 우리랑 달라요.”
나는 그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를 리가 없죠. 왜 다르다는 거예요?”
“요점은,” 두보이스가 말했다. “박사님이 어떤 식으로든 스트라트 씨에게 특별한 분이라는 겁니다.”



혐관의 역설

이것은 단순히 싫은 사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꾸만 부딪힐 만큼 서로를 인식하는 사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대에게 긁힐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던지는 공격이 나의 약점을 가장 정확하게 찌르는 정답임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혐관은 어쩌면 거울 치료의 변형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나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상대가 실은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일 수 있음을 다시금 환기해 본다. 혹시 우리도 지독하게 얽힌 주파수 위에서 인류를 구하는 중은 아닐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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