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세간의 오해를 정정하기 위한 글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미호의 ‘아홉 개 꼬리’와 천호의 ‘아홉 갈래 꼬리’를 명확히 구분해 언급한 중국 문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그렇다. 구미호와 천호 사이의 외형적 차이를 분명히 서술한 문자 기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즉, 옛날 기록 속 천호의 외형은 구미호 완전한 동일한 아홉 개의 꼬리며 아홉 갈래 꼬리가 아니다.
다만 ‘아홉 갈래 꼬리’가 직접 언급된 문헌은 없지만, 그러한 형태를 묘사한 벽화 자료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천호가 아닌 구미호를 묘사한 도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도상적인 측면에서 오늘날 널리 알려진 구미호와 고대중국벽화 속의 구미호의 유의미한 차이를 포착할 수 있다. 연대가 동한시대(東漢, 기원전 25년~기원후 220년)로 추정되는 일부 벽화들에서는, 마치 나뭇가지처럼 하나의 꼬리에서 여러 갈래로 퍼져나간 아홉 갈래 꼬리를 지닌 여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꼬리뼈에서 각각 독립된 아홉 개의 꼬리가 나와 개별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작금의 구미호 아트윅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벽화 속의 여우들이 '천호'가 아니고 '구미호'인 이유는 간단하다. 저 서왕모 옆에 그려진 구미호 벽화들이 그려진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1세기에서 3세기까지로 추정되는 동한 시대인데, 천호 개념은 그보다 훨씬 후인 당나라 시대, 즉 7세기에서 10세기 무렵에 등장했다. 당대 사람들은 기존의 구미호 전설과 새로운 신화, 민간전승들을 결합하면서 천호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즉, 저 벽화 속의 아홉 갈래 꼬리를 가진 여우들은 분명히 구미호다, 저 벽화가 약 4세기 이후에나 나타난 천호를 그렸을 리 없으니 말이다.
벽화 속 구미호는 대게 서왕모 옆에 그려진다. 이런 도상체계는 구미호가 모신인 서왕모의 사자였으며, 신령스러운 동물이었다는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실제로 구미호를 상서로운 동물이나 길조의 상징으로 여겼던 고대의 기록 또한 많다.
하지만 매우 기묘하게도, 구미호는 서왕모의 사자로서 벽화에 등장했을 때조차도 신성과 마성이 혼재된 양면적인 존재였다는 흔적이 발견된다. 전한시대의 『초씨역림(焦氏易林)』은 한나라 도상 연구에서 핵심적인 문헌으로 여겨지는데, 이 문헌에서는 서왕모 곁의 구미호 도상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해석이 등장한다.
“老狐多态,行为蛊怪. 惊我主母,终无咎悔。”
"그 늙은 여우는 여러 모습으로 변모하며 간교하고 요사스러운 술법을 부린다. 우리의 주모(主母, 서왕모)를 혼란스럽게 하고도, 끝내 아무런 뉘우침이 없다."
“老狐屈尾,东西为鬼. 病我长女,坐涕诎指。”
그 늙은 여우는 꼬리를 구부리고 동서로 악귀처럼 떠돌며 나타난다. 우리의 귀한여자를(长女,장녀)를 홀려도 손쓸 방법이 없다.
이는 구미호가 서왕모를 부정직하게 홀려 그녀의 곁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으며 구미호 같은 흉수가 신성한 서왕모 옆에 그려져 있는 것을 거슬려하는 통념도 있었다는 흔적이다. 결국 구미호는 아득한 고대부터 신성시되면서도 동시에 악마 혹은 반신(反神)처럼 여겨지는 양면적인 존재였던 셈이다.
중국 역사 속에서 구미호와 여우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기원전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구미호는 주로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성군의 출현을 알리는 길한 징조로 인식되었다. 반면, 일반적인 여우는 흉흉한 요괴로 기록된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인식은 훗날 구미호까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기반이 되었다.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여우는 요수이며, 귀신이 깃드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남북조 시대의 『수신기(搜神記)』에는 “여우는 고대의 음란한 여인이었으며, 그 이름은 아자(阿紫)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고대의 음란한 여인’이라는 표현은 구미호가 악마적 존재로 변모하는 데 영향을 끼친 인물인 은나라의 달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나라 시대가 되면서 구미호/여우신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용, 기린, 봉황 같은 여느 영수가 그렇듯,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상징물이었던 구미호는 민간신앙과 가까워지게 되고, 기존의 영수로서의 이미지는 점차 퇴색되기 시작한다. 국가적인 상징이었던 구미호가 국가 제단에서 내려와 민중과 세속에 더 가까운 신이 된 것이다. 민중은 구미호를 주류종교의 신 보다 친근한 신으로 인식했다.
구미호가 민중의 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교이자 주류 종교였던 불교나 도교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도덕관에서 일탈을 허용해 주는 구심점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보살이나 도교의 선인에 대한 신앙은 선함과 도덕을 전제로 하지만, 요신(妖神)인 구미호는 인간의 욕망, 이익, 심지어 부도덕한 목적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었다. 민중은 선하고 전통적 도덕에 부합하는 일은 보살이나 선인에게 기도했지만, 도덕에는 맞지 않지만 달성하고 싶은 욕망은 구미호에게 기도했다.
그렇게 구미호나 여우신은 주류 종교의 신앙체계와는 다른 영역을 점유하며 독특한 신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지나치게 세속적인 욕망이나 부도덕한 목적까지 수용하는 그 신앙의 특성은, 훗날 구미호가 악마화되는 원인이 돼버리기도 한다.
아무튼 당나라 시대, 여우신앙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여우신이 없으면 마을이 생기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여우신은 민중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당대 여우신앙의 폭발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황금빛 털을 가진 아홉꼬리여우 '천호(天狐)'다. 기존의 구미호 전설에 민간신앙 요소가 덧입혀져 탄생한 개념으로, 천호는 황금빛 털과 아홉 개의 꼬리를 지닌, 여우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태평광기』에 기록된 당나라 전기문학 속 천호들의 행태는 신성하기보다는 지나치게 경박하고 세속적이다. 이는 천호가 문학 속에서 신격이라기보다는, 민중=남성문인들의 페르소나로 기능하거나 중국 내 이민족을 상징적으로 타자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천호는 민중에게 가까운 신령이자 요수로 인식되었고, 그만큼 시대의 욕망과 불안, 경계를 고스란히 투영한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대에 실존했던 남성들의 투영체이자 타자화라는 전승외적인 특징 때문인지 당나라 전기소설의 천호는 전원 남성이다.
천호가 어떻게 민중=남성문인의 페르소나로, 혹은 중국 내 이민족의 타자화 상징으로 기능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서술하도록 하겠다.
『태평광기』 속 여우 설화의 비중은 꽤 크다. 여우 설화의 비중은 다른 동물 설화들 가운데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고, 심지어 『태평광기』내에선 상상의 동물의 대표 격인 용보다도 간소하게 그 비중이 높다. 황금빛 털에 아홉 개의 꼬리를 지닌 이 천호의 이야기 역시 많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자주 등장했던 천호임에도 근대 이전의 천호의 그림, 시각적인 재현물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천호는 오랫동안 도상화되지 못했거나, 혹은 도상화가 되었더라도 그 자료들이 유실된 게 아닐까 싶다. 그나마 구미호의 그림은 청나라 때 재판 된 산해경에 나오는 구미호의 삽화로서 재현된 걸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절묘하게도, 황금빛 털을 지닌 아홉 꼬리 여우의 도상은 에도시대 일본의 우키요에에서 나타난다. 이 그림들은 언뜻 보면 당나라 전기소설에 등장하는 천호를 도상화한 듯하지만,실제로는 천호가 아닌 은나라를 멸망시킨 요부 구미호 달기의 전승을 도상화한 것이다.
일본 설화는 구미호 달기의 이야기에 여러 요소를 덧붙여 재구성했고, 그 결과 황금빛 털과 하얀 얼굴을 지닌 구미호라는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이 구미호 그림의 특징은, 고대 중국 벽화에서 볼 수 있는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아홉 갈래 꼬리와는 다르게, 각각 독립된 아홉 개의 꼬리를 지닌 형태에 천호처럼 금색이란 점이다.
이는 물론『무왕벌주평화(武王伐紂平話)』 에서 달기의 영혼을 빼앗은 구미호의 털색이 금색으로 묘사된 것에서 착안해 이런 이미지를 구성했을 가능 성도 있지만 백면금모구미호의 전승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선 달기는 그저 색상불명의 구미호로만 묘사된다.
일본의 화가들은 구미호 달기를 당나라 문학 속의 천호의 모습으로 그려냈지만, 사실 천호와 구미호 달기의 전승은 판이한 차이가 있다. 첫째, 당나라 전기소설 속 천호들은 전부 남성인 반면 달기는 요사스러운 여성의 화신으로 기능한다. 둘째, 천호는 아무리 요사스러운 행위를 해도 ‘하늘과 연결된 존재’로 여겨져 최종적으로 퇴치당하지 않지만, 구미호 달기는 대부분의 전승에서 요사스러운 짓을 한 대가로 결국 퇴치당한다.
이렇듯 천호는 당나라 남성 문인들의 자아 투영체로서, 달기는 여성을 요괴화한 타자화의 산물로서 기능하며 전승 내외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달기의 형상이 천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천호의 도상이 달기를 통해 부활하는 독특한 문화전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 우키요에 작가들은 기존 전승의 맥락보다는 황금빛이 줄 법한 시각적인 매력에 더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금빛 털을 지닌 천호의 인상적인 외형 묘사에 영향을 받아, 그 외형을 구미호 달기의 본모습에 차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문화 요소가 문화권을 넘나들면서 기존의 전승과 다르게 재해석되고 융합된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로 볼 수 있다.
서진 및 동진 시대 사람인 곽박의 『산해경도찬(山海經圖贊)』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九尾之狐 有道祥見 出則銜書 =
구미호는 세상에 도(道)가 행해질 때 길조로 나타나며, 그때는 책을 문 모습으로 출현한다.
구미호를 영물로 여긴 중국 고대 문헌답게, 구미호를 길조로 여기며 책을 물고 있는 묘사까지 있는데 이는 구미호가 지혜로운 영물이란 것을 부각하기 위한 묘사로 보인다.
후대 문인들에게도 이 ‘책을 문 구미호’의 이미지는 강한 인상을 남긴 듯하다. 당나라의 전기문학에 등장하는 천호(天狐)들 역시 정체불명의 신비한 문서를 소지하고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 문서는 일부만 이해할 수 있을 뿐, 대부분의 글자가 인간으로서는 해독이 불가능하며, 어떤 인간은 이를 탐하거나 빼앗으려다 오히려 큰 화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먼 훗날, 이 천서(天書)를 빼앗는 데 성공하고 내용을 해독해 술법을 터득한 인물이 나타나는데, 바로 조선 후기 문학 『전우치전』의 주인공 전우치다. 전우치는 구미호를 협박해 천서를 빼앗고, 그 구미호를 시켜 천서의 내용을 해독하게 하여 결국 그 천서에 담긴 술법을 익힌다. 단, 구미호는 나중에 전우치를 속이고 천서 세 권 중에 두 권을 다시 회수해 갔다고 전해진다.
『전우치전』에 나오는 구미호 역시 금빛 털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며, 인간이 자력으로 해독할 수 없는 천서를 소지하고 있고, 하늘로 올라가는 척하며 전우치를 속이기까지 한다.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전우치전』 속 구미호 역시 당나라 전기문학의 천호 전승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