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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걸어서 건너다.

혼자 걷는 다리 골든게이트브릿지

혼자 걷는 다리, 둘이 꿈꿨던 곳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서 그와 나를 떠올리다


남편이 가장 가고 싶어했던 곳이었다.

미국 서부, 그리고 붉은 곡선이 인상적인 금문교.

여행 책자를 넘기다 말없이 멈춰 섰던 순간이 있었다.

TV 속 풍경을 바라보다가 불쑥 내뱉던 말.


“여기…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그는 늘 이 다리를 이야기했고,

나는 그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먼저 와버렸다.

그의 빈자리는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햇살은 눈이 시리도록 찬란했지만

내 마음 한켠은 계속 그를 불렀다.


붉은 선, 바다 위의 심장


이 다리의 이름은 ‘골든게이트’다.

하지만 황금빛은 아니다.

‘인터내셔널 오렌지’라는 이름의 붉은 색.

해무 속에서도 선명히 보이도록 고안된 이 색은

때로는 뜨거운 심장 같았고,

때로는 아득히 멀어진 노을처럼 느껴졌다.

붉은 철골 위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자동차들은 쉼 없이 내 곁을 스쳐 갔지만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혹시라도,

그가 내 뒤를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안개 속의 속삭임


샌프란시스코의 아침은 늘 안개로 시작되었다.

그날도,

다리는 구름처럼 깔린 해무 속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붉은 선 하나가 안개 사이로 슬며시 드러나던 찰나—

“나 여기 있어.”

그 다리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 음성은

보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처럼

조용히 내 마음을 울렸다.


붉은 다리, 영화가 사랑한 풍경

이 다리는 수많은 영화 속에 등장했다.

사랑과 이별, 탈출과 자유의 상징으로.


『패밀리맨』

“It’s not what you do, it’s who you do it for.”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누구를 위해 사느냐가 중요하지.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Caesar is home.”

시저는 집에 왔다.

금문교를 건너며, 유인원들은 인간 세계와 이별한다.


『X-맨: 최후의 전쟁』

“Charles always wanted to build bridges.”

찰스는 늘 다리를 놓고 싶어했지.

붉은 다리는 연결과 단절의 경계가 된다.


그리고 오늘,

나 역시 이 다리 위를 걷는다.

그의 시선으로,

그의 감정으로,

그와 함께 걷는 것처럼.


그가 사랑한 다리, 내가 건너온 다리

그는 그 다리를 ‘건너고 싶다’기보다

‘서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그리던 풍경 속에

진짜 발을 딛고 서고 싶다고.


그리고 나는 오늘,

그가 꿈꾸던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마음의 프레임을 가득 채우며.


다음 풍경을 향해


다리를 건넌 뒤,

나는 다리 끝 기둥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누군가는 그저 지나치지만,

나는 이곳에 마음을 놓고 간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번엔 소살리토까지.


지중해 마을처럼 오밀조밀한 길,

햇살 아래 반짝이는 지붕들이

그의 목소리를 대신해 나를 부른다.


“저기 분위기 봐. 꼭 유럽 같지 않냐?

소살리토… 이름도 참 예쁘네.”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나는 붉은 그림자를 등지고

다음 풍경을 향해 나아간다.


조금 전의 눈물이

이제는 살짝 웃음으로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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