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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베이스볼 Oct 17. 2017

비혼 문화는 결혼에 대한 항쟁일까







'결혼' 이라는 것




결혼이란, 어릴 땐 물 흐르듯이 때가 되면 해야 하는 것으로 배웠다. 스스로 벌어 쓰는 싱글라이프의 즐거움이 넘치는 요즘엔 갸우뚱하는 말이지만. 그 시절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고작 20대 중반. 고교 졸업 후에 적당히 취업하거나 대학 다니다가 나이 까먹기 전에 서둘러 결혼해야 하였다. 남성 역시 군복무 후 취업하면 대부분 20대 후반에 결혼하였다.




지금은 취업이나 내 집 마련으로 먹고 사는 일을 고민하지만, 그 시절에는 혼사가 중대사였다. 우리 사회가 쉽게 타인의 결혼에 대하여 묻는 건 프라이버시 간섭보단 이러한 풍토와 가치관이 배경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젊은이에게 결혼을 재촉하였다. 서른을 넘긴 싱글에게는 노총각, 노처녀라는 태그가 붙었는데 이 말에는 어딘가 패배자의 냄새가 풍겨 당사자에게는 썩 달가운 표현만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 나는 '골드 미스'라는 생소한 용어를 들었다. Gold(화려한) + Miss(싱글여성)의 합성어로 스스로 돈을 벌어 쓰며 일상을 즐기는 싱글 여성을 뜻한다. 이들은 사회 생활을 영위하며 자발적으로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30대 중반의 그녀들은 결혼 적령기에 민감하지 않다. 결혼에 목을 메지 않는다.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종종 신문이나 잡지에서 골드미스에 관한 칼럼이나 인터뷰를 읽고는 하였는데 그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였다. 강요받고 희생하는 결혼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고.






흔히 말하는 골드미스의 대표격 (미국드리마 Sex and the City)





전통적인 여성상을 깨트린 골드미스





쇼윈도에서 고른 가방을 본인 명의 크레짓 카드로 결제하는 여자들. 남편감 만나는 맞선보다 휴가철 해외 여행에 열중하는 여자들. 사치스러워 보이는가? 틀렸다. 골드미스의 등장은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권(女權) 신장의 포문을 여는 신호를 쏘았다는 점으로 시사하는 바가 가장 크다.




사회에서 여성은 빈번히 2인자이고 후순위에 머무르기 일쑤였다. 대기업에서 첫 여성 임원을 위임하였다는 소식은 신문 사회면 헤드라인에 실릴 만큼 파격적인 뉴스였다. 불과 십 여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권위적인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젊은 30대의 골드미스가 깨트렸다. 여성의 사회적 입지를 고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할 속 성역할에 대한 개선의 길로 이어갔다. 골드미스의 등장은 여성들이 외치는 새로운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들이 먼저 결혼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바꾸어 가자, 곧 남성들도 결혼에 관해 구체적으로 고찰하였다. 최근에 대두되는 '비혼(非婚)' 문화는 어느 한 편에 국한되지 않는 성 평등한 이슈이다. 과거에 결혼적령기로 꼽히던 20-30대 청년층.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개성과 자아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스스로 느끼고 만족하는 것에 대한 선택에 집중하는 세대다. 이들에게 결혼은 후 순위다. 흔히들 불황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과 주거의 어려움에 '결혼 포기' 현상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비혼 문화의 등장 배경에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비혼 문화의 연장선에 있는 1인 세대 (화면 mbc나혼자산다 캡처)





과거 우리는 '결혼'에만 집중할 뿐, 이후로 주어지는 '역할'에 관한 고민이 별로 없었다. 대다수는 선조의 가르침대로 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치고 말았던 것. 며느리의 도리, 가장 노릇, 엄마로서의 희생 등 결혼으로 새로이 주어지는 포지션에서 감당하는 일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래서 육체적/정신적 피로감에 대한 이야기를 내뱉지 못 한 채 응어리로 담아두다보니 '결혼은 피곤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직시한들 주어지는 입장과 역할에 대해 말을 아끼는 건,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역할 수행을 전통과 미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역할이 올바르다는 전재로 생활한 부모님 세대나 선대에게 반문을 제시하는 것은 전통 파괴자 혹은 태만한 후손으로 보이기 일쑤였다. 동 세대에서도 결혼 후의 이러한 역할을 잘 이행하는 기혼자가 있다. 무엇이 틀렸고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기에 추후 포지션 변화를 가져오는 결혼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몫에 불과할 뿐이고, 이것이 점차 비혼 문화로 번져나간 까닭이라고 본다.






결혼 여부는 본인 스스로 선택하는 일





시대적 상황, 미혼 세대의 성장에 따라 가치관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 변하지 않는 건 결혼이라는 제도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류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결혼에 관한 고찰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는 또 다시 어떤 모습으로 언급될까. 궁금하다.









오늘의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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