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되면 둘리 인줄 알아요"
살다 보면 있다.
내가 한 번 기꺼이 해준 배려가
두 번째에는 “당연”이 되어버리고
세 번째에는 “왜 안 해?”로 바뀌는 순간들.
나는 그걸 여러 번 겪고 나서
‘배려’라는 단어를 한 번 뜯어보게 됐다.
배려가 당연해지는 이유는
인간이 편한 것을
너무 빨리 배우는 존재이다.
처음엔 고마워한다.
두 번째엔 익숙해진다.
세 번째엔 기준이 된다.
그러면 고마움은 사라지고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바라게 된다.
배려는 물처럼 건네는데
그들은 수도꼭지처럼 받아들인다.
배려를 몇 번 반복하면
그걸 받은 사람은 “기대”를 품는다.
기대가 쌓이면 기준이 되고
기준이 되면 권리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
그 권리를 지켜주지 않으면
서운함, 불만, 불평이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배려가 멈춘 순간
권리라는 채찍이
더 강하게 후려친다.
권리라는 채찍은
조용히 챙겨주고 배려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쫓아버린다.
왜냐면,
이 사람들의 배려는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은 배려는
눈먼 휘두름에 찢어지기 마련이다.
공기는 고마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있어야 하는 것처럼 취급된다.
배려도 그렇다.
투명해지고,
보이지 않게 되고,
공기처럼 당연해진다.
그 순간 배려의 가치는 사라지고
남는 건 ‘당연함’뿐이다.
나는 이제
배려를 남발하지 않는다.
내가 지쳐 쓰러질 만큼 해주지도 않고,
누군가의 권리가 되도록 반복하지도 않는다.
필요할 때,
의미 있을 때,
결정적으로 한 번씩.
배려는 습관이 아니라
선택이 되어야 한다.
선택이 있어야만
배려는 소모되지 않고,
상대는 그것이 “호의였음”을 잊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배려의 무게를 관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