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문답- 쓰즈키 다쿠지
빅뱅에서 은하철도까지
요즘 우리 아들은 부쩍 “엄마, 4차원은 있어?”, “정확히 4차원이 뭐야?”라는 질문을 툭툭 던지곤 한다. 사실 엄마 입장에선 참 난감한 질문이다. 있다고 하자니 눈에 안 보이고, 없다고 하자니 그것도 아니고, 그걸 간단히 설명하자니 복잡하고. 매번 은근슬쩍 대답을 피하며 넘기기 바빴는데,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궁금해하는 우주와 차원의 비밀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낸다. “우주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과거로 여행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에 대해 복잡한 수식 대신 일상적인 언어와 비유를 사용한다. 덕분에 과학을 어렵게만 느끼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상대성 이론이나 블랙홀 같은 난해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SF적 상상력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하철도나 워프 항법처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대중문화 속 소재를 과학적 관점에서 해부하며 ‘어디까지가 과학이고 어디부터가 상상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아들의 질문에 어느 정도의 대답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주와 차원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다정한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p.39
“이 세상은 3차원이 아니다. 4차원이다”라고 발설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최초인가? 듣기에는 민프코스키라는 사람이 먼저 말했다고 하는데?
“이 세상은 4차원이다”라고 잘라 말해도 어떤 사고방식으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가에 문제가 있다. 공간만을 문제로 삼는다면 세로·가로·높이 외에는 방법이 없으므로 3차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문제로 삼는 한에 있어서는 “어디서”라는 것과 “언제”라는 양쪽이 필요하다. 양자를 분명히 말해 주지 않으면 ‘사건’이 판명되지 않는다.
p.67
공간의 휨과 시간의 휨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주에서 사상(사건)을 표현할 때는 장소(3차원의 공간)와 시간(1차원)을 지정하여야 한다. 양자를 통들어서 4차원의 시공간이라 부른다. 특수 상대론에서는 직성의 시공간만을 다루었으나 일반 상대성론에 이르러 이인슈타인은 휘어진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론의 본래 방침이 “시간과 공간을 동등하게 다룬다”에 있다. 시간축도 당연히 휘어져 있어야 한다.
다만 4차원 시공간이 시간축 쪽을 향해 닫혀 있는지 어떤지는 현재로는 알지 못하고 있다. 사실은 그렇게 말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는 편이 정직할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 근처에서는 공간도 시간도 극도로 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시간이 휘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좀처럼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지구에서의 시간의 흐름과 블랙홀 주변의 강력한 중력장에서의 시간의 흐름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이미 4차원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을 가로, 세로, 높이가 있는 3차원 공간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그의 스승 민코프스키는 여기에 ‘시간’이라는 한 축을 더해 이 세상이 ‘4차원’이라고 선언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어디서’ 일어났는지만 알아서는 부족하고, 반드시 ‘언제’ 일어났는지까지 알아야 그 사건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것는 공간과 시간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그물망처럼 엮여 있는 ‘시공간’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이 4차원 시공간이 고무판처럼 휘어질 수 있다는 점도 추가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 주변에서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함께 휘어진다. 특히 중력이 엄청나게 강한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공간이 극도로 왜곡된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의 1초와 블랙홀 주변에서의 1초가 다르게 흐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는 유연한 존재인 셈이다.
아들이 물었던 “4차원이 정확히 뭐야?”라는 질문에 관해 책은 적당한 답을 주었다. 4차원은 단순히 상상 속의 괴상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사건을 겪는 실제 세상의 모습이다. 다만 우리가 3차원적인 존재라서 시간의 휘어짐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할 뿐이다.
물리학의 거장들도 시간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닫혀 있는지 확답하지 못한다고 한다. 모든 것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이 과학적 가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아이가 다시 “엄마, 4차원이 있어?”라고 물어온다면 “우리는 이미 4차원 속에 살고 있어. 단지 우리가 느끼지 못할 만큼 시간이 아주 정교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야”라고 답해줄 수 있을 것 같다.
p.82
물리학의 법칙은 4차원의 시공간을 기반으로 하여 기술되는 것인데,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 그 개요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예는 없을까?
상대론을 넓은 우주의 문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작은 세계, 즉 물질의 최소 단위인 소립자의 연구에도 사용된다. 광대한 우주와 극미 입자의 행동이 상대론이라고 하는 기본 법칙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전자가 자전함으로써 전자는 각운동량을 가지며 다시 막대자석으로서의 성질도 갖게 된다. 이와 같이 자전 때문에 생기는 성질을 가리켜 스핀(spin)이라 한다. 역학에서 말하는 단순한 질점과는 달리 스핀이라는 특징을 지닌다는 것은, 곧 전자가 4차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증명이 된다.
실제의 양자역학은 더욱 복잡한 것이지만 어쨌든 스핀이라는 성질은 네 번째 차원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관계없다. 4차원 사고방식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한 소립자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흥미롭고도 중대한 일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4차원 시공간이라는 사고방식은 우주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극미의 현상을 연구하는 소립자론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개념이다.
발밑에서 발견한 우주의 법칙
흔히 상대성 이론이나 4차원 시공간이라고 하면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나 블랙홀 같은 거대한 우주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물리학의 법칙은 공평하다. 이 법칙은 광활한 우주뿐만 아니라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소립자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즉,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이 4차원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현대 물리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관점이다.
책에서는 소립자 중 하나인 전자의 스핀(spin)을 예로 들어 4차원적 성격을 설명한다. 전자가 스스로 회전하며 자석 같은 성질을 갖게 되는 것을 스핀이라 부르는데, 이는 단순히 공간 속에서 도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양자역학의 복잡한 세계에서 이 스핀이라는 성질은 사실상 네 번째 차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전자 하나하나가 이미 4차원적인 특징을 품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4차원이 먼 미래나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몸과 주변 모든 물질의 근본 원리임을 증명한다.
“엄마, 4차원은 어디에 있어?”라고 묻는 아들에게 이 대목은 아주 멋진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4차원을 찾으러 굳이 우주선을 타고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아들의 손가락 끝을 이루는 작은 세포, 그 안의 원자와 전자 속에도 이미 4차원의 법칙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과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아들에게 “네 몸속에 있는 아주 작은 입자들도 사실은 4차원 춤을 추고 있어”라고 말해 준다면 아이의 상상력은 안방에서 우주 끝까지 단숨에 뻗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p.139
웜홀이란 어떤 것인가?
‘Wormhole’을 우리말로 옮기면 ‘좀먹은 구멍’이다. 모형으로 말하자면 우주 공간을 사과의 표면에 비유하고, rm 사과의 내부에 벌레가 먹혀 가느다란 긴 구멍이 되어 있어, 한쪽 구멍의 입구 A에서 그 벌레가 먹은 튜브모양의 부분을 지나 다른 쪽 출구 B로 얼굴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주 공간 차원을 하나 낮추어서 (즉 2차원으로 하여) 닫혀 있으며 더구나 유한하다면, 사과의 표면만 이 “이 세상”이며 좀 먹은 구멍을 생각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이런 까닭으로 좀먹은 통로라든가 그 입구나 출구, 또는 이 통로를 빠져나간다는 사고방식은 너무 독특해 보인다.
천제물리학이나 우주론의 연구에서는 블랙홀의 존재까지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관측을 통해 그와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큰 뒷받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일들, 이를테면 좀먹은 구멍이나 그 출입구 이야기로 넘어가면,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바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공상이나 상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랙홀도 10년쯤 전까지만 해도 그리 화젯거리가 되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이론적인 지지가 있기는 했지만, 빛마저 삼켜 버리는 천체라는 것은 일부 사람을 제외하면 꿈같은 이야기로 여겨졌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웜홀도 단순한 꿈같은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인슈타인 자신이 1935년에 물리학자 로젠과 함께 이러한 통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논문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같은 우주의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 통로를 그들은 ‘다리’라고 불렀다.
어쨌든 웜홀이란 블랙홀 속으로 뛰어든 물체가 화이트홀로 튀어나오는 통로를 가리키며, 그 통로를 ‘좀먹은 튜브’에 비유한 것이다.
우주의 지름길, 웜홀
‘웜홀’은 좀먹은 구멍이다. 저자는 이를 사과에 비유해 아주 쉽게 설명한다. 사과 표면을 기어가는 벌레가 반대편으로 가려면 둥근 표면을 따라 한참을 돌아가야 하지만, 사과 속을 뚫고 지나가는 구멍이 있다면 순식간에 반대편에 도착할 수 있다. 이처럼 우주의 먼 두 지점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튜브 같은 통로가 바로 웜홀이다.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블랙홀이 과거에는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실존하는 천체로 인정받듯이 웜홀 역시 단순한 공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놀랍게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미 1935년에 동료 로젠과 함께 이 통로의 가능성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체가 다시 튀어나오는 출구인 ‘화이트홀’이 있고 그 사이를 잇는 통로가 웜홀이라는 가설. 비록 아직 관측된 적은 없지만 현대 물리학의 거장들이 수식으로 증명하려 했던 엄연한 과학적 가설이다.
웜홀은 사실 과학적 사실과 SF적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이다. 저자가 웜홀을 설명하며 “공상이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지도 모른다”라고 하면서도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언급한 것은 아마 과학이 단순히 밝혀진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임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은 때로 과학자의 가설과 닮아있다. 100년 전에는 마법 같았던 블랙홀 이야기가 오늘의 상식이 되었듯 지금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우주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이 미래의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엄마인 나에게 정답을 가르쳐주기보다 아이와 함께 우주라는 사과 속 구멍을 마음껏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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