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책상 너머 – 공장 사무직이라는 경계선

by 고요한 낙하

공장 사무직.


이곳은 일반적인 사무직과는 다르다.
그리고 어쩌면, '직장'이라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모든 게 말 한마디로 이어진다.
“그건 그냥 그렇게 해요.”
엑셀 파일도, 매뉴얼도,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없다.
알아서 눈치껏 해야 한다. 그게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모르면 왜 모르냐고 하고, 물으면 그걸 왜 물어보냐고 한다.

카톡을 하는 것도,
물을 마시는 것도,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정각에 점심을 먹는 것도,
그리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도—이해받지 못하는 행동이 된다.
쉬는 시간에 앉아 숨을 돌리는 모습조차, 이곳에서는 게으름의 낙인이 찍힌다.


팀장님은 툭 던지듯 말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뽑은 거지, 이전 사람이 퇴사해서 뽑은 건 아냐.”

처음엔 무심한 말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한 문장 안에는 이곳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너를 뽑은 이유는 단 하나,
일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연결고리가 아니라,
그저 일이 넘치니 손 하나 더 얹겠다는 무표정한 구조.

그 말은 결국 이렇게 번역된다.
“내가 너를 뽑은 건 일을 시키기 위해서지, 옆에서 일일이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야.”
“경력자라며? 그럼 한 번 말하면 바로 알아들어야지.”


사회초년생도 아니고, 다른 직장에서 몇 년을 일한 경력도 있지만,
그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곳에서 처음이면, 무조건 신입이다.
따라서 경력자 대우는 없다.
그러나 업무는 경력자처럼 해내야 한다.


대우는 신입, 기대치는 베테랑.


책임은 온전히 부여되지만, 권한은 없이 시작된다.


그 모순의 틈에서 사람은 지쳐간다.
모르면 안 되고, 물어봐도 안 되는—그런 곳이다.

타 회사에서 5년, 10년 쌓아온 누군가의 경험도
이 공장 안에선 휴지조각처럼 취급된다.


동시에 이곳의 방식, 이곳의 호흡, 이곳의 말을
하루 만에 익히지 못하면 ‘일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무엇보다도,
‘적응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누구든지 새로운 회사에 들어오면
업무에, 분위기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들이 모여 시너지를 만들고,
누군가에겐 오래 버틸 힘이 되어주며,
또 누군가에겐 성장의 기회를 열어준다.

하지만 여긴 그런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건 체계상, 문화상 애초에 고려되어 있지 않다.
“알아서 해”라는 한 마디 속에 적응도, 성장도, 이해도 빠져 있다.

여기는 공장이다.


공장 사무직은 늘 회색 지대에 있다.
현장도 아니고, 본사도 아니다.
허리에 가까운 이 위치에서 모든 일을 조율하면서도,
정작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다.


책상은 있지만 자리는 없다.
이름표는 있지만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업무는 있지만 직무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은 있지만, 함께 한다는 감각은 사라진다.


이 글은 원망도, 고발도 아니다.
그저 ‘존재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말 없이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는 공장 사무직의 현실을,
그 회색 책상 너머에서 고요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이곳에서도 조금 더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줄 테니까.


ps. 오늘도 누군가 퇴사했다. 나에게도 새로운 직장이 구해지길 바란다.


25.6.12

작가의 이전글수습기간, 고민이 길어지는 그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