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간, 3개월.
이 말이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회사는 나를 평가하고, 나는 회사를 평가하는 시간. 처음에는 서로의 기대와 의도가 맞닿을 것이라 믿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속에서 갈등과 불편함이 더 많이 쌓여갔다.
면접 때 그는 내 근무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당장 "탈락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이어진 팀장의 질문은 의외였다.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는 물음이었고, 그때는 그냥 흘려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문이 점점 커졌다.
내 자리에는 4월을 기점으로 멈춰있는 파일들이 있다. 이 자리를 맡기 전,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은 얼마나 버텼을까? 옆자리 컴퓨터는 1월을 기점으로 멈춰 있었다. 그 사람은 어쩌면 짧은 시간 동안 잠깐 있었던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오래 있었지만 결국 떠났을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사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의문은 커졌다. 이곳은 정말 사람이 존재 가능한 곳일까?
이전 직장에서 인력 관리를 해본 나로서는, 이 회사의 분위기와 방식이 직원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일을 이어가기 위한 환경인지 의심스러웠다. 이곳은 침묵 속에서 흘러가는 분위기였고, 이 속에서 과연 사람들이 정을 붙이고 일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은 채, 나는 점점 회사의 분위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마친 뒤 면담을 요청받았다. 나는 긴장한 마음으로 선임의 재촉에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팀장님은 조용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꺼낸 말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OO씨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이었다. 입사 2일 차에 배운 업무를 마친 후, 선임에게 더 할 일이 없는지 물었지만, 그는 바쁘다며 더 이상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버쁘다고 하는데 재촉할 수도 없는 법. 그래서 기다렸다. 이 상황은 여러번 반복되었다.
그런데 내가 시킨 일만 따라하고 있다는 이유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걸까?
실수에 대한 질책도 이어졌다. "왜 기억 못하냐?"는 말은 내가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나는 사실 기억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기본적인 업무의 흐름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실수를 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고 해도, 무엇을 반복해야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익힐 수 있을까? 그때마다 "너가 성실히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는 정말 성실히 해보려고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 모습조차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비쳤을까?
그리고 이어진 말은 나를 더욱 충격에 빠뜨렸다. "회사는 일만 하는 곳이지,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나도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회사는 그저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대화도 하고,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작은 여유조차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 그 말 한 마디는 나에게 정말 충격적이었다.
결국, 나는 이곳에 대해 더 이상 계속 있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방식과 내가 그들에게서 받는 압박은 나에게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입사 첫 주는 나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지만, 이제는 그 고민이 무색해졌다. 내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습기간, 3개월. 이 시간이 누구를 위한 시간일까? 내가 이곳에서 겪은 일들은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목표는 단순해졌다. 3개월 이전에 이곳을 떠나는 것. 내가 떠나면 이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을 구해야겠지만,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 이제는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회사를 평가할 차례였다.
ps. 출근하자마자 누군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