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차팅 - episode 2 -

[뇌경색 치료 기록 노트 2] 프로로그 |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 날

by ㅅㄷㄱ


그날은 혼란으로 시작된 하루였다.

통증은 없었지만,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기억이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2025년 4월 10일 (목)


증상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순행성 기억상실 (Anterograde Amnesia)


통증

가벼운 두통, 통증은 서서히 사라지고 현재는 통증 없음.


투약

증상이 일어난 후 약간의 두통은 좀 있었으나, 운전을 해야돼서 진통제는 복용 안함.

출근 후 먹을 예정이었지만, 까먹었음.


마음 상태

운전 중 불안감이 있었음. 출근 후 자꾸 깜빡해서 속상함.


출근 후 상태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근무 시간 내내 기억이 잘 안남.


향후 계획

집 근처 검단탑병원 신경과 내원 예약함 (12일 토요일 오전 9시50분)




이 날 아침에도 5시쯤에 잠에서 깼어요.

요즘 피곤하기도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잔 날이 계속되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피곤한 상태였어요.

다시 자려고 했으나, 잠이 안와서 일어나서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는데,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갑자기 두통과 함께 머리가 띵하면서 눈 앞이 하얘진 느낌이 들고..

그 후 기억이 전혀 안났어요.


일단.. 하얘진 상태에서 깨어난 느낌이었는데,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아무 생각이 안났어요.

여러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런 생각이 안났어요.


한 동안 멍하니 그냥 앉아 있었어요.

TV는 겨놓은 상태였지만, 너무 오래 두어서 스크린세이버로 바뀐지 좀 될 것 같아요.

보니까 날짜, 시간이 화면에 표시되어 있었는데, 날짜를 봐도 과연 오늘이 4월 10일인지,

아무런 기억도 안났어요.


바깥을 보면 벚꽃이 보이긴 한데, 지금 계절이 봄인지 조차 생각이 전혀 안났어요.

마치 머리 속에 새하얀 구름이 끼어 있는 것만 같았어요.


요즘 회사 이사 때문에 주말에도 출근을 하고, 쉬지 못한 날이 계속 되어서 많이 피곤하기도 해서

일시적인 증상인가 싶어서 일단 출근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출근시간도 잊어버리고 있었다는거. 매일 몇시 몇분에 나가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서 아내를 깨우고 몇시에 출발하고 있었는지 물어봤어요.

아내도 걱정하는 모습이었지만, 일단 증상이 이렇고 상태가 이렇다고 이야기하고, 너무 힘들면 쉬든지,

회사에서도 힘들면 조퇴를 하든지 하라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일단 가겠다고 하고, 집에서 나갔는데,

차도 어디에 주차했는지 기억이 안나서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고, 내비를 켜고 출발했어요.

평소에 내비없이 1년 넘게 다녔던 길도 너무 낯설고, 풍경도 모든 것이 어색했어요.


가는 내내 모든 시간들이 어색하고, 이상하고...

동두천까지는 겨우 갔는데, 자동차전용도로에서 나가는 출구도 진입 못하고 지나가버렸어요.

좀 돌아서 출근을 하게 돼서 좀 늦게 도착했지만, 근무 시작.

오전 중에도 기억이 까물까물했어요.


내가 했다고 생각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안했던 일이 하루에도 여러번 있었어요.

불 껐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안껐다거나...

카톡도.. 타이핑을 하는데, 생각한대로 타이핑이 안되기도 하고..

자꾸 생각한 키와 다른 키가 입력되어서 오타투성이었고... 이런 일도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점심 때 나가면서 동료에게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들 이름도 기억이 안났다고 했더니,

바로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어요. 집 근처 뇌 신경과 병원도 알아봐주고 감사하더라고요.


식사중이었지만, 바로 아내에게 연락을 했어요.

아무일 없으면 다행이지만, 혹시나 몰라서 뇌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집 근처 검단탑병원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12일 토요일 오전 9시 50분에 신경과 예약을 했어요.


점심은 납곱새를 먹은 것 같은데, 입맛도 없어서 많이 못 먹었어요.

평소 대식가로 유명했던 나였지만, 이런 모습을 본 동료들은 확실히 몸이 안좋은가보다 라고 했어요.


오후 근무 시간도 오전과 증상이 비슷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자꾸 깜빡거려요.

같은 행동을 여러번 하게 되니, 업무가 늦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실수 없이 하루를 마칠 수 있었어요.


퇴근할 때 마지막에 나가서 검수실 불을 껐다고 생각하고 나가는데,

실제로는 안꺼서 다시 돌아가 불을 끄고 퇴근했어요.

퇴근길도 내비를 켜고, 길도 기억이 잘 안났지만, 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퇴근하고 집에 가니 걱정한 모습으로 아내가 맞이해줬어요.

나는 집에 무사히 잘 도착한 것에 감사하며 오늘 있었던 일도 아내와 나누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내일은 상태가 좀 호전될까....




넉달이 지난 지금 생각


잠깐, 4월 10일로 돌아가보자.

만약에 증상이 일어난 즉시 내원했으면 어땠을까.

아침에 머리가 하얘진 상태에서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내를 깨우고, 내가 머리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회사에 연락을 해서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병원 가서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하고..

연차 내고, 병원 가고, 검사 입원..

뭐, 이런 스토리가 됐겠지.


검사 결과, "뇌경색"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고,

어쨌든 검사 때문에 입원을 했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현재 상황과 비슷하겠지만...

탑병원 원무과에서 입원수속을 하는 시점에서

비어 있는 병동으로 가게 될 것이고..

날마다 비어 있는 병상이 다르기 때문에

53병동 말고 다른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다른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도 잘 챙겨주셨을 것이지만,

과연 지금과 같은 마음이 생겼을까.


이렇게 과정하면 퇴원 후 현재까지

시간도 마음도 모두 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과연. 지금처럼 이렇게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느꼈던 따뜻한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을 느꼈을까.

퇴원할 때 사진도 같이 찍었을까.

퇴원할 때 썼던 글도 다르게 썼을 수도 있고.

퇴원 후에 이렇게 블로그도 시작했을까.


과거로 돌아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시간의 흐름에는 만약은 없다.


다시 현재로.

나는 10일 당일이 아니라 12일 토요일에 내원하고,

검사를 받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

원무과에서 입원수속을 하고 525호실로,

53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넝쿨 팀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53병동 간호사 선생님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랑의 53병동에서, 사랑이 넘치는 공간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의 따뜻함과 사랑을 온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면서

불안감 없이 마음 편하게 입원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인생은 우연한 행운의 연속이다.

Life is a series of serendipity.


tempImageCEmUD2.heic 황소자리(Taurus)와 플레이아데스 성단(M45), 페르세우스자리(Perse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