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진료가 끝나갈 무렵, 아이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큰아이는 18개월, 둘째는 이제 석 달. 둘째는 아기띠로 품에 안고, 한 손으로는
큰아이의 손을 꼭 잡은 모습이었다. 감기 증상이 있는 큰아이를 진료받으러 왔다고 했다.
기침, 콧물, 그리고 열. 아이의 입과 코를 살피고 귀를 들여다보니
양쪽 모두 급성 중이염이 있었다. 감기가 오래가며 이어진 전형적인 중이염이었다.
아이의 열의 원인이었다.
항생제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약 먹이고 3일 후 다시 오라고 설명하자,
아이 엄마는 일주일 동안은 일이 늦게 끝나 병원 마감 전에는 도저히 올 수 없다고 했다.
대신해서 아이를 데리고 올 만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결국 치료 경과를 확인하지 못하겠지만 일주일 치 약을 처방했다.
진찰 중 아이 엄마도 간간히 기침을 하기에 불편한 정도인지 묻자,
약이 필요하겠다고 했다. 초진 환자 등록을 위해 대기실에서 접수를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띵동. 접수 완료 알람이 울렸다.
호출을 누르며 차트를 열어 보니, 등록된 나이 ‘만 17세’.
단순히 앳돼 보이는게 아니라 정말 어린 나이였다.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였다.
감기 진료를 마치고 약을 처방하는 동안
그녀는 줄곧 조용했고 그게 나이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는 듯했다.
일주일 후, 진료 마감이 가까워질 때쯤 그녀는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다행히 큰아이의 중이염은 사라져 있었고, 열도 없었다. 그녀 본인의 감기 증상도
조금 가라앉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둘째가 감기에 걸려 콧물이 흐르고 코막힘으로 힘들어한다고 했다.
약을 처방하며 물었다.
"요즘 일이 많이 늦게 끝나시나 봐요?"
그녀는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는데,
일을 마치면 바로 어린이집으로 아이 둘을 데리러 가야 해서 시간이 늘 빠듯하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으로, 어린 두 아이와 짐을 함께 옮기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닐 터였다.
도와줄 사람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직접 묻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간호사가 조용히 알려준 말로는
아이들 아빠는 있는 듯했고, 아마 생계 때문에 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 같았다.
아마도 부부 모두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듯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묵묵히 버티고 살아가는 모습은 안쓰러움과 동시에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진료비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러한 행위는 환자 유인행위로 의료법 위반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녀와 아이들이 올 때마다 최대한 세심하게 진찰하는 것뿐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병원에 찾아왔고, 그 나이 또래에 해야할 예방접종을 위해
한동안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가게 되어 앞으로는 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예방접종을 마친 뒤 그녀는 조용히 인사하고 돌아갔다.
다음 날 점심시간, 간호사가 조심스레 말을 했다
전날 예방접종 수첩에 접종 도장을 찍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다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는데
그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메모지에는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몇 줄 적혀 있었다고 했다.
모두 합쳐도 몇 만원 남짓한, 조금만 마음먹으면 누구나 사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고.
이후로는 그녀는 병원에 오지 없었다.
착하고 순해 보이던 그 아이 엄마가, 사실은 열일곱 살 여학생 또래 이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그 나이에 어떤 사연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잠시 어떤 색안경을 끼고 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그저, 갖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을 조용히 적어두고
그것들을 포기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단단한 17세의 엄마를 보았을 뿐이다.
그녀가 원했던 그 작은 것들을 미리 알았다면 사주는 게 맞았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 마음이 동정으로 왜곡되는 순간, 선을 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아이들이 왔을 때 더 성심껏 진료하는 것이었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벌써 십 년이 훌쩍 지난 일이다.
그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예쁘게 잘 자랐을거라 생각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열일곱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나이에 그들의 엄마에게도 '조금 갖고 싶은 것', '조금 먹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런것들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며 보낸 어린 엄마로서의 시간들이
자신들을 예쁘게 자라게 한 힘이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