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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에 담긴 아픔

by 짧아진 텔로미어

맑은 눈에 담긴 아픔



눈이 참 맑고 예쁜 아기가 처음 우리 병원에 온 것은 생후 4개월 차 접종을 하러 왔을 때였다.

60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의 등에 혀 말똥 말똥 눈을 뜨고 있는 애기었다.

통통하게 른 볼살과 우유처럼 뽀얀 피부. 4개월 애기라면 누구나 예쁠 수밖에 없지만

그 아기는 특히 더 그랬다.


보호자로 온 할머니 또래 할머니들에 비해 아이 접종 스케줄도 꼼꼼하게 겼고

다음에 해야 할 접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진찰을 하고 접종을 했다. 아기는 양쪽 허벅지에 주사 바늘이 들어갈 때 잠시 울다가

금방 그쳤는데 눈물이 조금 고인 눈은 더 쁘고 맑아 보였다.


접종 부작용과 다음 접종 스케줄을 설명하면서 물었다.

"다른 할머니와는 다르게 애기 접종을 참 잘 챙기시네요"

그러자 할머니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챙겨서 그렇다고 했다.

"아이 엄마는 바쁘신가 보네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시작한 얘기는 이랬다.


4살 터울의 누나 출산 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둘째인 이 아기를 낳고 아이 엄마가 심한 산후우울증으로 일상생활이 안되었고

그러던 중 급기야는 큰아이만 데리고 집을 나갔다고 했다.

이후로 아이 엄마는 친정에서 지내왔으며 최근에 이혼을 원해 그렇게 했다는 얘기였다.

둘째 아기에게는 애착을 주지 않아 출산 이후로 아이를 자기가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산후 우울증은 정도의 차이이지 누구나 어느 정도 겪는 일이긴 하지만

그 아이 엄마는 많이 심했던 것 같았다.

이후로도 할머니가 그리고 가끔은 아빠가 애기를 데리고 병원에 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 지나 12개월에 해야 할 접종을 하러 왔을 때

할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아 물어보니 둘째 아기도 엄마가 원해 곧 엄마에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권 소송도 했다는데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엄마품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고 했다.

이제는 우리 병원에는 못올것 같다 했고

그래도 1년에 며칠 아이와 지낼 수 있다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이후로도 1년 동안은 한두 번은 애기가 왔을 때 병원에 들러 접종을 챙기기도 했다.


그렇게 4년 정도가 지났고 한동안 안 왔던 아이가 할머니와 같이 왔다.

여전히 맑은 눈에 귀여운 얼굴이다. 예쁘게 자라서 감사고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다.

할머니가 이제 자주 오게 됐다 하면서 또 그간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둘째 아이까지 원해 아이를 데려갔으나 아이 엄마는 여전히 둘째에 대해서는 애착을 가지지 못했.

그로 인해 아이는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를 다시 데려오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간 보내온 시간을 말해주는 듯이

병원에 올때마다 누나는 보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갈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 치료해 줘서 감사합니다"

매번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난 왜 그 예의 바른말이 그렇게 안타까웠을까

여전히 예쁘고 맑은 그 눈에 담긴 슬픔 같은 게 보여서였을까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말투를 배워야 했던 고작 여섯 살 아이 보내야 했던 시간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또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에게

두 번 버려진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아팠기 때문이었다.


이 아이도 이제 초등학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가지지 않아야 할 아픔을 이미 가져버린 아이가 상처를 딛고 여전히 은 눈을

가진 고운 청년으로 성장하길 바래본다.

그리고 10개월을 자신의 몸 안에 애지중지하며 아이를 품었으나

꿈꾸던 아이와의 미래를 볼 수 없었던 아이 엄마의 행복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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