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대하여

by 이 경화


바람이 불거나 기압이 낮아지면 으레히 목에 난 팔센티의 수술 자국이 아려 온다.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실오라기의 통증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지직 스치고 지나간다. 수술한 지 이제 20년이 되어가지만, 이 느낌은 때때로 여전히 생경하다. 내년쯤이면 좀 괜찮아질까, 매번 희망해보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다. 육체의 상처도 이렇듯 통증의 궤적을 남기는데, 마음의 상처와 영혼의 상처는 또 어떠하랴. 인생이 오십을 넘으면 많은 희노애락을 뛰어넘어 건너게 된다. 그러나 살다 보면 비슷한 상처를 다시 만나게 되고,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기억의 깊은 가운데에서 여전히 아파하고 있는 나 자신과 마주하고야 만다.


실로 인간처럼 나약한 신의 피조물도 없다. 부활을 기다리는 성주간을 지내며, 나는 그분의 상처에 깊은 묵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못 자국 난 손과 발, 옆구리에 남은 창 자국, 가시면류관이 남긴 찢어진 상흔들. 나는 그 상처 위에 내 상처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믿고 아꼈던 제자들의 배반, 가장 신뢰했던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고, 모든 것을 맡겼던 제자는 예수를 은전 몇 닢에 팔아 넘겼다.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렸던 군중들은 하루아침에 예수를 조롱하고 돌을 던지며,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다. 가장 버림받은 이들과 함께 먹고 자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고, 세상의 진리를 속삭이며 살아온 예수는 결국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가장 치욕적인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 군중 속에 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무거운 슬픔이 문득 밀려와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가톨릭의 성지주일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성만찬을 나누고, 어떻게 팔려가며, 어떻게 조롱당하고, 어떻게 사형선고를 받고 결국 십자가 위에서 생을 마치는지를 사제 혼자 낭독하지 않는다. 그 고통과 배신의 시간들을 모든 신자들이 나눠서 읽는다. 예수를 팔아넘기는 유다의 말도, 베드로의 부인도, 빌라도의 망설임도, 그리고 군중의 외침도, 모두 우리 입으로 말해낸다.


그리고, 그 대목이 온다.


“못박으시오.”


한 번이 아니다. 두 번, 세 번… 성당 안 가득, 수많은 입에서 “못박으시오”라는 외침이 터져 나온다. 그때, 나는 입을 뗄 수 없었다. 입술이 굳어버렸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도 그 군중 속에 있었는가. 예수를 따르던 내가, 그토록 순한 사랑을 믿던 내가, 그분을 향해 돌을 들었는가. 문득 거대한 슬픔이 물결처럼 밀려와 가슴을 짓눌렀다. 말할 수 없었고,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부끄러움처럼, 죄스러움처럼, 슬픔의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모든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길이었다는 것을. 가장 깊은 어둠을 지나야 가장 눈부신 빛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나는 그 부활을 지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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