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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by 마르치아

#나는무엇으로살고있는가.

모든 것은 서로 맞물려 있다. 어느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면 다른 조각도 덜컹거리고, 한쪽에서 나는 미세한 소음이 삶 전체로 번져 나가듯이 나는 늘 그렇게 세계를 느끼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외로움이란 감정은 새로운 옷을 살 때 따라오는 작은 택과도 같았다. 필요해서 산 것도 아니고 특별히 원한 것도 아닌데 옷깃 한편에 얌전히 매달려 있다가 문득 손에 걸리고 눈에 밟히는 조각. 떼어낼까 말까 하다가 그냥 둔 채로 걸어 나가면 바람이 그 종잇조각을 살짝 건드리고, 그 바스락거림이 괜히 마음 한쪽까지 울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외로움이라는 것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살아온 시간이 워낙 고단했고, 사람을 잃는 경험이 너무 이르고 잦았기에 나는 많은 감정들을 별도의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버티는 쪽을 택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이게 슬픔인지 분노인지 불안인지 외로움인지 경계가 흐릿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외로움’이라는 말 자체가 내게는 좀 낯선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외롭다고 말할 줄은 알았지만, 이 감정이 정말 외로움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확인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고독과 외로움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서 나는 오십 년이 넘는 시간을 내 나름의 실험실처럼 써버렸다. 사람이 많을수록 더 공허한 자리도 끝까지 앉아 있어 보았고, 혼자 있는 방 안에서 일부러 불을 끄고 침묵을 길게 늘려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관계 속으로 미친 듯이 뛰어들어 나라는 존재가 어디까지 흩어질 수 있는지 지켜보았고, 또 어떤 날은 약속과 만남을 모두 끊어버리고 사람을 일부러 밀어내며 내 안쪽으로만 내려가 보기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두 단어에 수없이 이름표를 바꿔 달아 보았지만, 둘의 차이는 좀처럼 선명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사소한 깨달음이 마치 얇은 실처럼 마음에 감겨왔다. 고독은 충만함에서 출발하고 외로움은 결핍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이었다. 고독은 내가 나를 온전히 안고 들어가는 느낌이고, 외로움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빠져나가 버린 뒤에 남겨진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고독 속의 나는 나를 잃지 않았고 조금 더 넓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고, 외로움 속의 나는 나조차 잃어버린 채 허공만 더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깨달음이 전부를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출발점이 다르다 해서 두 감정이 전혀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둘은 곧잘 서로에게로 스며들어 그 경계를 흐리고, 결국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고독인지 외로움인지 내게조차 알 수 없는 순간들이 계속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십이 넘어선 지금 나는 아주 가느다란 실낱 같은 희열이 어디선가 고독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것은 큰 행복이나 환희와는 다른 종류의 조용한 기쁨이다. 마치 겨울 끝자락 창틀에 비스듬히 떨어지는 약한 햇빛을 바라볼 때의 느낌. 크게 따뜻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그러나 분명 존재하며 내 몸 어딘가를 살짝 데우고 지나가는 미세한 온기. 이 조용한 온기를 알아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내 나이를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열정을 쥐어짜야 할 때가 온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지점에서 한 번 더 힘을 짜내야 할 때가 있다. 이미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에서 마지막 한 방울을 더 짜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틸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영혼까지 갈아 넣는다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늦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혹은 아무도 없는 성당 안에서 한참을 무릎 꿇고 있으면, 나는 문득 그런 나 자신이 가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 이렇게까지 애써야 하나. 왜 이렇게까지 버텨야 하나. 그런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 그때 나는 비로소 ‘아,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외로움이구나’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상한 역전이 일어난다. 나 혼자만 이 외로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애초에 그런 외로움을 품고 태어난 것은 아닐까. 누구도 대신 짊어져 줄 수 없는 어떤 무게를 각자의 어깨에 하나씩 얹고 이 세상을 건너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처음에는 나를 짓누르던 외로움이 조금씩 다른 얼굴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 외로움을 껴안고 서 있는 내가 아주 조금,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충만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나는 내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독 속에 나를 집어넣고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면, 거기에는 생각보다 나약하지만은 않은 내가 서 있다. 상처투성이이고 흠집은 많지만, 그래도 끝내 무너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작은 심지가 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아주 작은 촛불 하나가 깜빡이며 타고 있는 것처럼, 금세 꺼져버릴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불꽃 같은 것. 나는 그 촛불을 보듯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자 내 안에서 아주 작은 존중이 자라기 시작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이 삶을 그래도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에 대한 존중이자,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마음먹은 나 자신에 대한 조용한 존경이었다.


고독한 상태에서 고요히 사색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는 그 기쁨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그 기쁨은 소란스럽지 않았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괜찮은 종류의 기쁨이었다.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었고, 성과나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기쁨이었다. 그냥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온 나를 쓰다듬어 주는 마음, 상처투성이의 이야기를 가진 나를 그래도 사랑해 보려는 마음, 그런 마음이 조금씩 고독 속에서 자랐다. 나는 이 점 또한 감사하며 산다. 감사한다는 말은 너무 많이 쓰이면 힘을 잃어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 말고는 내 마음을 설명할 단어를 찾기 어렵다.


어떤 날에는 고독의 시간이 너무 깊어져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발, 신도 나를 잠시 내버려 두셨으면 좋겠다고.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무 목소리도 내 안에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기도하라는 초대조차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만 내려가고 싶고 그만 파헤치고 싶고, 이제는 그냥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누운 돌멩이 하나가 되고 싶다는 마음. 나는 그럴 때에도 입술로는 신을 부르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도망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신은 오히려 그 시간에만 나를 만나 주셨다. 벼랑 끝이라고 느껴지는 자리,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바닥이 하나 더 열려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자리, 그 심연 속에서 문득 너무도 선명한 어떤 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가장 고독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자리에 신이 먼저 와 계셨다는 것을. 내가 혼자라고 믿었던 바로 그 순간에 그분이 내 손을 잡아 주고 계셨다는 것을.


나는 지성과 영성이 분리된 지성소 같은 공간에서 신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내 일상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내 안쪽 가장 깊은 곳과는 직접 연결된 조용한 방. 그곳에서는 내 욕망도, 내 감정도, 내 나약함도 모두 숨기지 않고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다듬어 놓은 언어 대신,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그대로 쏟아 놓을 수 있었다. 울음인지 기도인지 모를 숨소리를 그대로 내어도 되는 자리. 그런 공간에서 나는 자꾸만 나라는 존재의 맨 바닥과 마주하게 되었고, 그 바닥에서조차 나를 버리지 않는 어떤 시선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고독의 시간은 더 이상 두려움만을 품은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여전히 그 깊이는 무서울 만큼 아득하지만, 그 아득함 속에서만 들리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독의 시간은 신이 나를 초대하는 시간이었다. 나를 내버려 두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오시는 시간이었다. 내가 나를 가장 싫어할 때조차, 그분은 이상하리만큼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그 괴리 속에서 오래 울었고, 그 울음이 마른 자리마다 작은 위안이 자라났다.


삶의 어려움이 다가오면 나는 이제 그 고독을 조금은 기쁨에 가까운 마음으로 맞아들인다. 여전히 두렵고 버겁지만, 예전처럼 도망치기만 하지는 않는다. 내 힘으로, 내 의지로, 그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려고 한다. 그것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더 깊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사람을 향한 기대와 집착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 안에서 나를 찾으려 했던 습관을 멈추고, 나와 신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외로움에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욕망과 욕심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와 고요한 방 안에 자신을 고립시켜 보는 일이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고립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고립의 안쪽에서는 사실 더 깊은 연결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과의 연결 방식이 잠시 끊어진 자리에서 비로소 나와 나 자신이 연결되고, 나와 신이 다시 연결되고, 나와 타인의 영혼이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된다. 그 연결은 말이 많지 않고, 약속이 많지 않고, 이벤트가 많지 않다. 대신 아주 작은 정성과 기도와 눈 맞춤 같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그 방식을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나의 작은 지혜와 영성은 늘 이 고독에서부터 출발했다. 책에서 배운 문장도, 누군가의 강의에서 들은 문장도 결국 내 안에서 고독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 힘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눈으로만 이해했던 말을 몸으로 다시 이해하는 과정, 머리로 알던 신을 가슴으로 다시 만나는 과정, 그 모든 과정은 차갑고도 고요한 고독을 지나갔다. 그러니 내가 조금이라도 어른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시간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남기고 간 흔적 덕분일 것이다.


외로움은 여전히 싫다. 누군가에게서 버려진 것 같고, 세계로부터 밀려난 것 같고, 나만 뒤에 남겨진 것 같은 감정은 지금도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고독은 기쁘다. 고독은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내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작은 소리, 지금을 살아내는 용기, 다시 사랑해 보려는 마음, 에너지와 파동, 빛과 어두움, 이 모든 것은 고독에서부터 출발한다. 고독 속에서만 나는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정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둘을 동시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외롭지 않다고. 외로움의 그림자가 내 곁에 어른거릴 때도 있지만, 나는 결국 고독이라는 방으로 들어가 그 그림자와 함께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자주 흔들리고 때때로 무너져 내리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감사와 지혜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영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그것이 내 인생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 끝에야 알게 되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고독 속에서 끌어올린 생각과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게 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 내 눈물을 흘릴 자리와 내 웃음을 올려놓을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이들, 때로는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이들.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 나의 고독을 다시 견딘다. 내가 버텨낸 시간들이 결국은 누군가의 삶에 작은 불빛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겨울이 깊어가는 지금, 나는 이 겨울이 참 황홀하다고 느낀다. 바람은 차갑고 손끝은 얼어붙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나의 영혼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 고독을 이해하는 동지들이 곁에 있어 고맙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안아주는 신의 손길을 느끼며 하루를 건너간다는 것이 기적처럼 여겨진다. 이 겨울은 나에게 또 하나의 고독의 계절이고, 동시에 감사의 계절이다.


고독할 동지들이 같이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울 일인가. 서로의 상처를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각자가 지고 있는 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하게 된다. 나는 그 조심스러움 속에 깃든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나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의 끝에는 늘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고독으로 살고, 사랑으로 견디고, 감사로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인다.

그 길 위에 나 혼자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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