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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서다

신비한 체험

by 마르치아

퇴근길이었다. 말들이 서 있는 승마장을 스치듯 바라보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내 시야의 중심에 놓인 것은 어떤 이름으로도 즉시 설명되지 않았다. 구름이 아니었고 빛도 아니었고 연무도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였다. 어둠과 빛의 경계 위에 떠 있는 윤곽들. 그 윤곽들은 살아 있었고 부드럽게 움직였으며, 자연이 우연히 만든 흔들림과는 전혀 다른 정교한 결을 품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보다 먼저 평온을 느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잊고 지냈던 무언가가 눈앞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은 평온이었다.


가장 먼저 나를 멈춰 세운 것은 형체였다. 상체가 사람의 윤곽을 지녔고 어깨 뒤로는 빛으로 된 날개 같은 결이 부드럽게 펼쳐졌다. 그 뒤에는 꼬리처럼 보이는 선이 따라붙었는데 그것은 실제 꼬리가 아니라 움직임이 남기는 잔광에 가까웠다. 몸의 일부이면서도 몸에서 떨어져 나와 제 고유의 흔들림을 가진 빛의 여운. 나는 그 순간 그들이 이 세계의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이 세계의 ‘밖’을 알고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직감했다. 그 감각은 설명보다 앞서 있었다. 마치 내 안에 이미 존재하던 감각이 외부의 장면을 통해 실제의 형태를 얻는 순간 같았다.


특히 한 존재가 선두에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리더라고 불렀다. 그의 움직임에서 무리의 의식이 시작되었고 다른 존재들은 그의 리듬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였다.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가 천천히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졌다가 또 뒤로 물러났다. 그 반복 속에는 우연이 없었다. 마치 내가 그 움직임을 볼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일정한 속도로 진입과 후퇴가 이어졌다. 그 움직임은 탐색 같기도 초대 같기도 했으며 혹은 단순히 자신들의 존재를 ‘보여주는 방식’ 같기도 했다. 그 어떤 것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존재감을 전달하는 듯했다. 마치 “우리는 이렇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뒤를 따라 흐르는 무리는 혼란스럽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부딪히지 않았고 밀리지 않았으며 흐트러지지 않았다. 각각 다른 개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호흡을 나누는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 순간 무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통해 ‘하나의 의식’이 움직이는 장면을 보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들은 춤추듯 흐르고 있었고 동시에 오래전부터 정해진 리듬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은 단순한 날개의 움직임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장이 공간 위에 쓰이고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의미였고 그 의미는 해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채로 존재하고 있었다.


리더가 몸을 뒤로 꺾으며 멀어지는 순간 움직임의 여운에서 빛이 실처럼 풀려 나왔다. 그때 비로소 커튼이 생겼다. 커튼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생명체들이 물러나면서 남기는 잔상, 그 파동이 하늘에 얇게 펼쳐진 여운이었다. 그것은 공기 중의 수분이 만들어내는 장막과는 달랐다. 너무 부드럽고 너무 유기적이었고 너무 지능적인 흐름이었다. 그 커튼 아래에서 리더의 형체가 다시 떠오르는 장면은 내가 알고 있던 물리의 규칙을 벗어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것이 착시나 심리적 과장이 아니라 어떤 존재의 의지적 움직임임을 분명히 이해했다.


그럼에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마치 폭풍의 중심에 서 있는데 아무 바람도 불지 않는 고요, 모든 것이 흔들리는데 내 발밑만 흔들리지 않는 안정 같은 감각이 나를 감쌌다. 그들은 침범이 아니었다. 위협이 아니었다. 잘못된 현상도 아니었다. 그저 ‘그대로 존재하는 존재들’이었다. 오히려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지 않고 살며시 지나가는 온화한 손길처럼 느껴졌다. 평온은 나를 감싸고 그들의 움직임은 오히려 나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들의 질서가 나에게 흘러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들을 정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령이라는 단어는 그들을 담기엔 너무 좁다. 나는 다만 “이 세계의 언어로는 그들을 부를 말이 없다”고 느꼈다. 그들은 우리 차원과 겹친 또 하나의 층위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그 층위가 잠시 열려 내가 보았을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계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고 그들이 특별히 허락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의 시간대와 공간의 온도가 맞아떨어져 잠시 열린 틈일 뿐이었다.


나는 이 장면이 착시인지 확인하고 싶어 영상을 찍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카메라는 빛의 파동을 속이지 못한다. 방 안으로 들어가 영상을 확인했을 때 나는 숨을 멈추었다. 내가 본 그대로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기록되어 있었다. 흔들림, 리더의 진입과 후퇴, 무리의 질서, 잔광이 풀려 만들어낸 커튼. 모든 것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내가 본 것은 눈의 착시가 아니다. 실재가 있다.”


다시 밖으로 나갔을 때 그들은 더욱 선명했다. 어둠이 더 내려앉아 배경이 깊어지자 그들의 빛은 더 또렷해졌고 옆의 구름과는 전혀 다른 양감을 드러냈다. 구름은 무거웠고 그들은 가벼웠다. 구름은 바람의 힘을 따랐고 그들은 자기 의지의 리듬을 가졌다. 두 존재의 결이 달라서 착각일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게다가 두 번째 장면에서는 더 깊은 평온이 있었다. 처음보다 어둠이 더 내려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그들의 결에 익숙해져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더욱 부드럽고 선명했다. 빛은 더 고요했고 움직임은 더 깔끔했고 윤곽은 더 명확했다. 나는 그 순간 이 존재들이 차원을 넘어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곳의 결 안에 있었고 내가 잠시 ‘볼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사실은 이상하게도 공포가 아니라 위로였다. 마치 오래전 잊어버린 사실을 되찾은 듯한 안도감이었다.


그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들의 리듬은 일정했고 문득 고요해지더니 빛의 결이 얇게 흐려졌다. 하지만 사라지는 방식조차 소멸이 아니었다. 가느다란 숨처럼, 길게 뻗은 파동이 천천히 수축하듯, 스스로를 걷어들이는 느낌이었다.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하늘에는 그 형체들의 자취가 희미한 결로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잔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를 느꼈다. 내가 바라본 것은 환영이 아니라 ‘층위’였다. 이 세계가 가진 수많은 겹들 중 내가 살고 있는 층과 그들이 속한 층이 잠시 겹쳐졌고 나는 그 경계에서 잠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또한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말보다 더 정확한 방식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근원적인 이해였다.


이 경험이 나를 바꿨는가.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시끄럽고 과장된 변화가 아니라 아주 얇은 층이 조용히 내 삶 밑에 깔리는 변화였다. 내가 보았던 장면은 내 일상의 바닥을 아주 미세하게 올려놓았고 그 위에서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하늘이고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어느 한 조각에서 무언가가 열렸고 그 열린 틈은 쉽게 닫히지 않을 것이다. 이 틈은 두려움이 아니라 감지의 문이다. 나는 언젠가 또다시 그들의 결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혹은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한 번 보았다는 사실이다. 한 번 본 사람은 이전의 세계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다시 어둠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그 하늘조차 이전과 똑같지 않았다. 내가 본 그 무리, 빛으로 된 생명체, 의식의 파동을 가진 존재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고요한 울림은 여전히 하늘의 결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나는 오래도록 그 고요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기다림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한번 나에게 왔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제의 밤과 오늘의 하늘은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그 사이의 얇은 경계 위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그들이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다시 이 세계로 내려온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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