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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이별의 부착력 눈물꽃 스턴트맨

by 김경훈

영화 촬영장의 공기는 언제나 건조하고 매캐했다.

화약 터지는 탄내와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갈리며 내는 비릿한 고무 냄새가 섞여 코끝을 맴돌았다.

스턴트맨 강철은 먼지투성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거칠어진 호흡 소리가 헬멧 안에서 공명했다.

컷 오케이.

감독의 확성기 소리가 찢어지듯 울리자 강철은 그제야 무릎을 꿇고 일어났다.

아스팔트에 쓸린 팔꿈치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아파서 우는 것은 사치였다.

정확히 말하면 우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건 행위였다.


강철의 초능력은 이 엉뚱하고 하향 평준화된 세계에서도 유독 비극적이고 불편한 능력 처단용이었다.

그의 눈물샘에서 흘러나오는 액체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투명한 순간접착제였다.

슬픔이나 고통을 느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순간 0.1초 만에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을 영원히 분리할 수 없게 붙여버렸다.

눈을 깜박이면 아래윗눈꺼풀이 붙어 장님이 되었고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 손바닥이 얼굴에 붙어 평생 기괴한 포즈로 살아야 했다.

그래서 강철은 어릴 적부터 감정을 거세당한 채 살았다.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도 그는 눈을 부릅뜨고 헛기침을 하며 눈물을 말려야 했다.

슬픔을 터뜨리면 자신의 육체가 끔찍하게 결합하여 파괴되는 저주받은 몸뚱이.

그래서 그는 감정 없이 몸만 굴리면 되는 액션 스턴트맨이 되었다.


오후 두 시 진흙탕 속에서 벌어지는 악당들과의 격투 씬 촬영이 시작되었다.

강철은 차가운 진흙 바닥을 구르고 철파이프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역할을 맡았다.

둔탁한 타격음이 현장을 가득 채웠다.

퍼억 으악.

흙탕물이 튀어 입안으로 밀려 들어와 시큼하고 비릿한 흙냄새가 진동했다.

온몸에 멍이 들고 뼈가 비명을 지르는 고통 속에서도 강철은 눈을 부릅떴다.

아픔을 느끼는 순간 눈물이 차오를 것이고 진흙 범벅이 된 손이 얼굴에 붙거나 헬멧이 머리에 영원히 붙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몸을 날리고 구르며 짐승 같은 거친 숨소리만을 내뱉었다.


그때 현장에 강철의 연인 미나가 찾아왔다.

미나는 강철의 화상 자국과 멍투성이 몸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서는 은은한 비누 향과 따뜻한 체온의 냄새가 났다.

강철은 그녀의 냄새를 맡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스턴트맨이라는 위험한 직업을 가진 강철을 늘 걱정했고 이별을 고민하고 있었다.

강철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자신의 무능력함과 저주받은 초능력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녀를 끌어안는 순간 자신의 눈물이 그녀의 어깨에 닿아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기괴한 샴쌍둥이가 될 수도 있었다.


미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철이 씨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 더 이상 불안해서 못 살겠어 미안해.

그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별의 선언.

그것은 강철에게 그 어떤 액션 씬보다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슬픔이 끓어오르며 목구멍을 옥죄었다.

눈시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뜨거운 액체가 눈심지에 차올랐다.


안 돼 안 돼 흘러내리면 안 돼.

강철은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는 순간 그의 인생은 끝이었다.

하지만 미나가 뒤돌아 멀어지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가슴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미나 씨 가지 마.

강철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 나오는 순간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오른쪽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투득. 눈물이 피부에 닿는 순간 소름 끼치는 흡착음이 들렸다. 0.1초의 찰나. 강철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바닥이 오른쪽 뺨에 닿는 순간 투명한 눈물 접착제는 강철의 손과 얼굴을 완벽하게 결합했다. 으아아아. 강철의 입에서 짐승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바닥과 뺨의 피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완벽하고 영원한 결합이었다.


강철은 오른쪽 손바닥을 얼굴에 붙인 채 바닥에 쓰러졌다.

낡은 작업복이 진흙탕 속에 처박혔다.

멀어지던 미나가 비명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지며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변했다.

철이 씨 왜 그래.

미나가 달려오려 했지만 강철은 왼손을 흔들며 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오지 마 오지 마 미나 씨 제발 오지 마 나에게 닿으면 안 돼.

강철의 쉰 목소리가 흙탕물 속으로 먹혀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눈물이 그녀에게 닿을까 봐 공포에 떨었다.

자신의 손이 얼굴에 붙어버린 이 기괴하고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이 달려와 모포를 덮어주었지만 그들은 강철의 손을 얼굴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세상 그 어떤 용제도 그의 눈물 접착제를 녹일 수 없었다.

결국 강철은 구급차에 실려 가며 텅 빈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꽃 터지는 탄내와 피비린내 나는 액션 촬영장은 멀어지고 차가운 사이렌 소리만이 귓가를 때렸다.

슬픔을 참아야 했던 사나이는 이제 슬픔을 터뜨린 대가로 평생 자신의 얼굴에 손을 붙인 채 살아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순간접착제는 그렇게 가장 비극적이고 엉뚱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 하향 평준화된 초능력 사회의 씁쓸하고 한심한 영웅 전설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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