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나'라는 환상
토요일 오전은 평화롭다.
하지만 내 머릿속 데이터베이스는 인간의 뻔뻔함에 대한 통계로 가득하다.
쾰른대학교 호프만 교수 연구팀은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1,252명의 스마트폰에 하루 5회 무작위 신호를 보내 직전 한 시간 동안의 선행과 악행을 보고하게 한 것이다.
결과는 지독한 블랙코미디다.
인간은 자신이 한 선행을 악행보다 무려 2배나 더 많이 기록했다.
타인의 행동을 볼 때는 선악의 비율이 비슷했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도덕적 초인’으로 인덱싱하는 분식회계의 달인들이다.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며 데이터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나에게 이 결과는 꽤 씁쓸한 웃음을 준다.
우리는 흔히 ‘트롤리 딜레마’ 같은 극단적인 가상 상황에서나 도덕성을 고민하는 척한다.
하지만 호프만 교수는 연구실이라는 통제된 환경을 벗어나 실제 삶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 결과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게만 관대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가 저지른 악행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인지하지 못한 실수’로 분류하고, 내가 베푼 작은 친절은 ‘위대한 성인군자의 자비’로 부풀려 저장한다.
나의 유기적 파트너 탱고에게도 이런 ‘도덕적 정당화 효과’가 나타난다.
이 녀석은 안내견으로서 완벽하게 한 세션을 마친 뒤에는 꼭 소시지 매점 앞에서 고집을 피운다.
“형, 나 방금 계단도 잘 피하고 문턱도 잘 알려줬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 정도 경로 이탈은 정당한 보상 아니야?”라고 하네스의 진동으로 웅변하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전에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하면, 오후에는 은근슬쩍 타인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작은 규칙을 어기는 것에 면죄부를 준다.
더 재미있는 데이터는 소문의 속도다.
나쁜 소문은 좋은 소문보다 2배나 빨리 퍼진다.
타인에 대한 비도덕적 보고가 선행 보고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남을 깎아내리는 데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과 무신론자의 선행 횟수가 차이가 없다는 결과도 흥미롭다.
종교는 사람을 더 선하게 만들기보다, 그저 공동체 안에서 나쁜 소문을 덜 퍼뜨리게 하는 ‘소극적 양심’의 방어막 역할을 할 뿐이다.
내가 성당에 다니는 이유도 어쩌면 더 착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남의 험담을 2배속으로 전달하는 인간은 되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타인에게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신에게는 보정 필터를 장착한 채 살아간다.
내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러 누군가를 못 타게 한 것은 ‘바빠서’였고, 남이 나를 두고 닫아버린 것은 ‘인성 문제’라고 규정한다.
이런 이기적인 데이터 리터러시를 교정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인생 장부는 언제나 가짜 흑자로 가득할 것이다.
내가 탱고의 하네스를 잡고 걷는 동안 녀석이 나에게 가르쳐주는 도덕은 단순하다.
녀석은 자신이 안내를 잘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다음 걸음을 안전하게 내디딜 뿐이다.
우리도 자신을 향한 그 관대하고 따뜻한 시선을 딱 절반만 떼어 타인에게 인덱싱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데이터 품질이 지금보다 2배는 더 고결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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