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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거짓말쟁이의 탄생

주사위는 이미 속았다

by 김경훈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거짓말을 죄악으로 여겨왔다.

모세의 십계명부터 카인과 아벨의 일화까지 거짓말은 인류 최초의 범죄이자 파문의 상징이다.

하지만 현대 심리학의 돋보기를 들이대면 기묘한 결론에 도달한다.

어쩌면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이 가장 정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역설이다.

암스테르담대학교 브루노 교수 연구팀의 실험을 통해 이 뻔뻔하고도 흥미로운 진실을 파헤쳐본다.



"저는 하루에 딱 두 번만 속입니다"


연구팀은 대학생 527명에게 지난 24시간 동안 몇 번이나 거짓말을 했는지 물었다.

결과는 평균 2회였다.

재미있는 점은 참여자의 41퍼센트가 자신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6회 이상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한 솔직한(?) 불량배들은 고작 8퍼센트에 불과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과연 0회라고 답한 41퍼센트의 학생들은 정말 성인 군자였을까? 아니면 설문조사 그 자체에서 첫 번째 거짓말을 시작한 것일까?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부끄러운 면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을 정직하다고 포장하는 사람일수록 실제로는 더 정숙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입은 열렸다


진짜 본게임은 2차 실험인 '주사위 게임'에서 시작됐다.

규칙은 간단하다.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돈을 준다.

주사위 값은 본인만 확인한다.

즉 숫자를 속이면 공돈을 더 챙길 수 있는 완벽한 유혹의 장이다.


실험 결과는 실로 파격적이었다.

1차 실험에서 "나는 평소 거짓말을 자주 한다"라고 대답했던 8퍼센트의 학생이 실제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갔다.

이들은 주사위 숫자를 거침없이 속여서 보고했다.

반면 "나는 정직하다"라고 주장했던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벌었다.


이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고백한 이들은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정직했다.

자신이 기회만 되면 남을 속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반면 정직을 표방한 이들은 자신이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조차 거짓말로 덮고 있었다.



고도의 인지 기술이자 사회적 윤활유


사실 거짓말은 멍청한 사람은 할 수 없는 고도의 인지적 행동이다.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하려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가짜 정보를 설계해야 하며, 상대가 그것을 믿게 만드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3~4세 아이들의 서툰 거짓말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이유도 아이의 지능이 발달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거짓말이 나쁜 것은 아니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인사치레나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는 선의의 거짓말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보라.

아마 그곳은 삭막하고 거친 진실만 가득한 사막과 같을 것이다.

거짓말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가 삐걱거리지 않게 돕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수행한다.



마무리하며: 지식은 살 안 쪄요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수시로 거짓말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시인한다.

이 패러독스는 우리에게 진정한 정직함이 무엇인지 묻는다.

남에게 보이는 도덕적 가면을 챙기는 것보다 자신의 비도덕성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적 성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지식은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지만 당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은 당신의 영혼을 비대하게 만든다.

오늘만큼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솔직한 거짓말'을 한 번쯤 복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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