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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각의 증발과 호스피스 병동의 최루탄 간호사

by 김경훈

서울 외곽에 자리 잡은 성모 호스피스 병동 사 층의 공기는 언제나 무겁고 탁했다. 강한 소독약 냄새와 피 냄새, 그리고 서서히 죽어가는 육체가 뿜어내는 특유의 들큼하고 비릿한 냄새가 끈적하게 뒤엉켜 있었다. 십이 년 차 간호사 임은 간호사 스테이션 의자에 앉아 인공눈물을 양쪽 눈에 뚝뚝 떨어뜨렸다. 그녀의 눈 주변은 언제나 시뻘겋게 짓물러 있었고, 다크서클은 턱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임의 초능력은 이 지독한 하향 평준화 시대에서도 유독 감정 노동을 강요하는 가혹한 능력이었다. 그녀의 눈물샘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눈물은, 피부에 닿기만 해도 말기 암 환자의 끔찍한 뼈 통증조차 이십사 시간 동안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작용 없는 마약성 진통제였다.


문제는 초능력의 발동 조건이었다. 인공눈물이나 하품으로 나오는 생리적인 눈물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오직 진짜 슬픔이나 처절한 고통을 느껴서 뇌가 반응해 흘려보내는 진짜 눈물만이 진통제로서의 효력을 가졌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매일같이 죽음을 마주하는 임의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바싹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환자가 사망 선고를 받아도 그녀의 심장은 더 이상 요동치지 않았다. 그래서 임은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매일 출근하자마자 탕비실 문을 잠그고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 내는 기괴한 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오후 두 시, 오십삼 호 병실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복도를 갈랐다.


"아아악. 제발, 제발 나 좀 죽여줘요. 뼈가 부서질 것 같아."


위암 말기로 온몸에 암세포가 전이된 칠십 대 박 할아버지였다. 후배 간호사 최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스테이션으로 달려왔다.


"선생님, 박 할아버지 또 시작하셨어요. 펜타닐 패치도 붙였고 진통제 주사도 최고 용량으로 들어갔는데 전혀 소용이 없나 봐요. 침대 난간에 머리를 찧으려고 하셔서 억지로 결박해 뒀어요."


임은 마른세수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은 사막처럼 건조했다.


"알았어. 결박 풀지 말고 십 분만 버텨. 내가 어떻게든 약 만들어 올 테니까."


임은 다급하게 탕비실로 뛰어 들어갔다. 철문을 굳게 잠그고 서랍에서 그녀의 비밀 무기들을 꺼냈다. 매운 양파 두 개, 족집게, 그리고 스마트폰이었다. 임은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켜고 동영상 플랫폼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다큐멘터리와 동물 농장의 슬픈 사연 모음집을 재생했다. 주인을 기다리다 죽어가는 늙은 개의 사연이 흘러나왔지만, 십이 년 차 베테랑 간호사의 메마른 감수성을 자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젠장, 개가 죽는데 왜 눈물이 안 나. 내 감정은 진짜 사이코패스 수준으로 말라버린 게 틀림없어."


임은 초조하게 중얼거리며 도마 위에 양파를 올리고 식칼로 미친 듯이 채를 썰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매운 양파 즙이 공기 중으로 퍼지며 점막을 찔렀다. 눈이 시큰거렸지만, 억지로 쥐어짜는 생리적 눈물로는 진통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슬퍼야 한다. 진짜 뼛속 깊이 슬프고 억울해야 한다.


임은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족집게를 집어 들고 자신의 코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가장 굵고 튼튼하게 박혀 있는 코털 하나를 꽉 움켜쥐었다.


"아, 진짜 먹고살기 힘들다. 내 연골, 내 감정, 이제는 코털까지 바쳐야 하냐."


임은 이를 악물고 족집게를 확 잡아당겼다.


"악."


짧고 강렬한 비명과 함께 뇌수를 관통하는 끔찍한 물리적 통증이 번졌다. 동시에, 통각 신경이 뇌를 자극하며 생존 본능에 가까운 진짜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코가 찡해지며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이 나이 먹고 남의 통증 줄여주겠다고 화장실에 숨어서 내 코털을 뽑고 양파를 썰어야 하나. 지난 십이 년 동안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병동에서 죽어간 환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육체적 고통에 억울함과 서러움이 복합적으로 터지며, 마침내 임의 양쪽 눈에서 뜨겁고 투명한 진짜 눈물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임은 재빨리 눈밑에 작은 유리 앰풀을 대고 눈물을 받아냈다. 똑, 똑. 겨우 세 방울. 하지만 이 세 방울이면 말기 암 환자 세 명에게 이십사 시간의 완벽한 평화를 줄 수 있었다. 임은 충혈된 눈을 비비며 탕비실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복도를 가로지르는 그녀의 흰색 간호사화가 타일 바닥과 마찰하며 삑, 삑 하는 다급한 소리를 냈다.


오십삼 호 병실은 생지옥이었다. 박 할아버지는 온몸을 활처럼 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최 간호사가 울먹이며 할아버지의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임 선생님 오셨어요."


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박 할아버지의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비릿한 땀 냄새와 썩어가는 내장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임은 주저 없이 유리 앰풀을 열고, 스포이트로 짠맛이 나는 자신의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뽑아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박 할아버지의 마른 손등 위에 그 눈물을 톡 하고 떨어뜨렸다.


눈물이 피부에 스며드는 순간,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박 할아버지의 핏대 선 목줄기가 서서히 부드럽게 풀렸다. 침대 난간을 부서져라 움켜쥐고 있던 앙상한 손가락의 힘이 스르르 빠지며 아래로 툭 떨어졌다.


"허억, 헉."


박 할아버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뼈를 갉아먹던 그 끔찍한 통증이, 마치 시원한 얼음물에 씻겨 내려가듯 완벽하게 증발해 버린 것이다. 할아버지의 거친 호흡이 점차 일정한 리듬을 되찾으며 편안한 수면 상태로 접어들었다. 새근새근. 갓난아기처럼 평화로운 숨소리가 병실의 적막을 채웠다.


최 간호사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다리에 힘을 잃고 주저앉았다.


"선생님, 진짜 다행이에요. 대체 그 앰풀 안에 든 약이 뭐길래 펜타닐보다 효과가 빠르고 좋아요? 병원 약국에서도 못 보던 건데요."


최 간호사의 순진한 물음에 임은 시뻘겋게 부어오른 자신의 코끝을 훌쩍거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알 거 없어. 제약회사에서 은밀하게 임상시험 중인 초고가 신약이야. 엄청나게 비싸고 구하기 힘든 거니까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 마. 나 혼자 맞기도 아까운 약이니까."


임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앰풀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눈물샘이 자극받은 탓에 눈앞이 계속 흐릿했다. 임은 잠든 박 할아버지의 이불을 목끝까지 다독여 덮어주었다. 할아버지의 평온한 얼굴을 보니, 방금 전 탕비실에서 코털을 뽑으며 느꼈던 억울함과 육체적 고통이 아주 조금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오후 교대 시간, 탈의실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임은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놈의 뻘건 눈깔은 사흘에 한 번꼴로 충혈되네. 남들이 보면 매일 밤 술 쳐먹고 우는 사연 많은 여자인 줄 알겠어."


임은 가방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꺼내 눈에 꼈다. 화장기 없는 푸석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까만 선글라스가 처량해 보였다. 병원 문을 나서자 해 질 녘의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차가운 저녁 바람이 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진통제였지만, 정작 그녀의 고단한 마음과 시린 코끝을 달래줄 진통제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오늘 저녁엔 매운 불닭볶음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먹고 매워서 울면 또 앰풀 하나 채울 수 있겠지. 내일은 사십칠 호 병실 할머니가 진통제가 필요할 타이밍이니까."


가장 이성적이고 차가워야 할 호스피스 병동에서, 세상에서 가장 찌질하고 궁상맞은 방식으로 슬픔을 쥐어짜 내는 눈물꽃 간호사. 그녀는 퉁명스러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시뻘건 눈동자 너머로, 내일 다시 마주해야 할 죽음과 고통을 지워내기 위한 씁쓸하고도 따뜻한 억지 슬픔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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