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일하는 시간
수업 시간, 창밖의 구름을 보며 멍하니 딴생각에 잠겨 있다가 날아오는 분필에 이마를 맞아본 적이 있는가.
과거의 교실에서 '멍하니 있기'란 곧 나태함과 불성실의 상징이었다.
선생님의 시뻘건 얼굴과 함께 날아오던 호통은 덤이다.
하지만 이제 그 억울했던 시절의 자신에게 사과해도 좋다.
사실 당신의 뇌는 그때 게으름을 피운 것이 아니라, 방금 배운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장을 가동하던 중이었다.
오늘 지식은 살 안 쪄요 매거진은 당신의 성적을 올려줄 '우아한 딴청', 멍 때리기의 과학적 효능을 파헤친다.
분필과 목검의 시대, 그 억울한 기억들
과거의 교육 현장은 참으로 역동적이었다.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으면 분필이 유도탄처럼 날아오고,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목검이나 부채가 교실을 지배했다.
딴생각에 빠지는 것이 고질병이었던 학생들에게 교실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과학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멍한 시간'의 진실을 밝혀내며 과거의 딴청꾼들에게 면죄부를 발행했다.
헤리엇와트 대학교의 기묘한 기억력 테스트
영국 헤리엇와트 대학교의 듀어 교수 연구팀은 기억의 정착에 휴식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연구팀은 70명의 참여자에게 '햇빛', '역', '전문가'와 같은 일상 단어 15개를 모니터를 통해 보여주었다.
단어 하나당 노출 시간은 단 1초였다.
아주 짧은 찰나에 지식을 입력시킨 뒤, 연구팀은 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15분간의 휴식 시간을 주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완벽한 '멍 때리기' 환경을 제공했다.
방안의 불을 끄고 휴대전화나 신문 등 어떤 자극도 주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했다.
반면 두 번째 그룹에게는 '틀린 그림 찾기'라는 과제를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두 번째 그룹이 15분 동안 뇌를 더 활발하게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결과의 대반전: 멍 때리기가 압승했다
15분이 지난 뒤 단어 기억력을 측정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던 그룹은 평균 70퍼센트의 단어를 기억해냈다.
하지만 틀린 그림 찾기에 몰두했던 그룹은 정답률이 55퍼센트 이하에 머물렀다.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졌다.
일주일 뒤 다시 같은 테스트를 진행했을 때, 멍 때리기 그룹은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단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활동을 했던 그룹의 정답률은 30퍼센트 밑으로 뚝 떨어졌다.
이는 멍하니 있는 시간이 단순히 흘려보내는 죽은 시간이 아니라, 직전에 습득한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정착시키는 매우 적극적인 두뇌 활동 시간임을 증명한다.
뇌는 멈춰 있을 때 더 치열하게 정리한다
우리 뇌는 새로운 정보를 입력받는 '입력 모드'와 정보를 분류해 저장하는 '정리 모드'를 가지고 있다.
만약 정보를 입력받은 직후에 틀린 그림 찾기나 스마트폰 확인처럼 또 다른 자극을 주면, 뇌는 정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새로운 데이터를 처리하느라 기존 정보를 덮어버리거나 유실시킨다.
반면 아무런 외부 자극 없이 멍하니 있는 상태가 되면 뇌는 비로소 여유를 갖고 방금 들어온 정보들을 파일철에 꽂아 보관하는 '기억의 공고화' 과정을 시작한다.
결국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맹목적으로 책을 파고드는 시간만큼이나, 공부한 내용을 뇌가 소화할 수 있도록 멍하니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제 당당하게 창밖을 바라보라
어린 시절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웠다고 자책했던 이들이여, 이제는 스스로를 위로해도 좋다.
비록 정착시킬 공부를 먼저 충분히 한 뒤에 멍을 때려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긴 하지만, 멍하니 있는 시간 그 자체가 지적인 게으름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식은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지만, 소화할 시간을 주지 않으면 금방 배설되어 사라진다.
지식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가끔은 전자기기를 내려놓고 불을 끈 채 뇌에게 '정리할 시간'을 선물해야 한다.
멍 때리기는 뇌가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점검 시간이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