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한 마리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수만 마리의 개미가 발을 맞춰 행진한다면, 그 진동은 코끼리도 쓰러뜨릴 수 있다.
'집단 광기'란 그런 것이다. 개별적으로는 의미 없는 잡음(Noise)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동기화(Sync)될 때, 그것은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강력한 '트래픽 폭탄'이 된다.
이를 막는 방법은 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진 리듬을 아주 미세하게 비틀어, 스스로 발이 꼬여 넘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흐름의 운용'이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7쪽 (집단 심리 편).
## 에피소드 36. 사이비 교주와 '무한 리필' 디도스 공격
외계인들이 남기고 간 '우주적 선물' 덕분에,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웠다.
황 소장은 자신의 책상 위에 루이 비통 트렁크를 펼쳐놓고 있었다. 그 안에는 톡톡이(콜라 외계인)가 뱉어낸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해 만든 보석들이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김 팀장, 이거 봐. GIA 감정서 나왔어. 컬러 D등급에 투명도 FL(Flawless). 이 정도면 경매 붙여서 100억은 거뜬해."
그녀는 샤넬 트위드 재킷 소매를 걷어붙이고, 까르띠에 시계를 찬 손목을 흔들며 환호했다. 그녀의 금발 웨이브는 자본주의의 축복을 받아 성스럽게까지 빛나고 있었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는 핫바 군의 꼬치 막대기(초고밀도 탄소섬유)를 보관하기 위해 주문 제작한 특수 강화 유리 케이스가 놓여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황 보. 이제 '건물주'가 아니라 '재벌' 소리를 들으시겠군요."
김경훈은 소파에 앉아, 스승이 주고 간 낡은 메트로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는 로로 피아나 캐시미어 니트를 입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편안하지 않았다.
그의 귀에는 슈어 정전식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통해 사무실 주변의 미세한 파동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왜 그래? 돈방석에 앉았는데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황 소장이 샴페인 잔을 건네려다 멈칫했다.
"데이터 트래픽이... 이상합니다."
김경훈이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트래픽? 조 실장 서버 말이야?"
"아니요. 이 건물 주변의 '영적 트래픽' 말입니다. 평소라면 불규칙해야 할 도시의 소음들이... 마치 군대 사열식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정렬되고 있습니다."
김경훈은 메트로놈의 바늘을 튕겼다.
똑, 딱, 똑, 딱.
메트로놈의 규칙적인 박자와 창밖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진동이 묘하게 엇박자를 내며 신경을 긁었다.
[팀장님... 저기 창밖 좀 보세요.]
책상 밑에서 한우 갈비뼈를 뜯던 탱고가 뼈를 내려놓고 으르렁거렸다. 에르메스 하네스 가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개의 예민한 청각이 김경훈보다 먼저 '물리적'인 위협을 감지한 것이다.
"뭔데 그래?"
황 소장이 짜증스럽게 블라인드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딱 벌어졌다.
"저... 저게 다 뭐야?"
사무실이 있는 7층 아래, 대로변은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수백 명, 아니 어쩌면 천 명이 넘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건물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피켓과 깃발이 들려 있었고, 대형 트럭에 실린 거대한 스피커들이 건물을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었다.
[타락한 영적 사기꾼을 몰아내자!]
[천년왕국의 성업을 방해하는 악마 김경훈을 처단하라!]
[용신도령의 신통력을 훔친 도둑놈!]
"악마? 도둑놈?"
황 소장이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것들 뭐야? 시위대야?"
그때, 대형 스피커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하울링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아—! 들리나! 사기꾼 4대 석학! 나 박 PD가 돌아왔다!"
트럭 단상 위에 박 PD가 서 있었다.
지난번 '산신령 파동' 도용 사건으로 쫄딱 망해 쫓겨났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번쩍이는 금색 개량 한복을 입고, 목에는 굵직한 염주를, 손에는 최신형 무선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박 PD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흰색 양복에 백구두, 그리고 선글라스. 마치 80년대 홍콩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남자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기이한 '흡입력(Suction)'을 가지고 있었다.
김경훈이 오클리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저자가... 그 '교주'로군요."
조 실장이 에일리언웨어 노트북을 들고 뛰어왔다.
"팀장님! 신원 파악됐어요! '천년왕국'이라는 신흥 종교 단체 교주, '마성진'이에요. 신도 수만 5만 명에, 보유 자산이 조 단위래요! 박 PD가 저기에 붙었나 봐요!"
"신도 여러분! 저기가 바로 우리 교단의 앞길을 막는 '마귀'의 소굴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저 건물을 무너뜨립시다!"
박 PD의 선창에 맞춰, 수백 명의 신도가 일제히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얍! 얍! 얍!"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명의 맹목적인 믿음(혹은 광기)이 하나로 뭉쳐 쏘아 보내는 거대한 '염파(念波) 디도스 공격'이었다.
우우웅---.
건물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물리적인 지진이 아니었다. 수백 명의 뇌파가 만들어낸 'G# 삑사리'의 집합체가 건물의 고유 진동수와 공명하며 일으키는 현상이었다.
사무실의 유리창이 찌르르 떨렸다. 황 소장의 바카라 잔에 담긴 물 표면에 동심원이 그려졌다.
"으으윽..."
김경훈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의 '디지털 공감각' 인터페이스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것은 차승목의 '소닉 재머'보다 훨씬 더 지독했다. 기계적인 노이즈는 필터링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인간의 '감정(증오)'이 실린 이 파동은 방화벽을 뚫고 들어와 뇌세포를 직접 타격했다.
[경고. 과도한 트래픽 유입. 데이터 처리 지연.]
"김 팀장! 괜찮아?"
황 소장이 다급하게 김경훈을 부축했다.
"괜찮습니다... 다만, 저들의 '서버' 용량이 생각보다 크군요."
김경훈은 비틀거리며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JH 오디오 이어폰을 귀에 깊숙이 꽂고, 앰프의 볼륨을 조절하며 밖에서 들어오는 파동을 분석했다.
"단순한 소음이 아닙니다. 저 '마성진'이라는 교주...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김경훈의 분석 화면(뇌내 이미지)에 마성진의 파동이 그려졌다.
그는 박 PD처럼 날뛰지 않았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신도들이 뿜어내는 광기 어린 에너지를 '흡수(Absorb)'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증폭시켜 다시 신도들에게 되돌려주는 '증폭기(Amplifier)'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한 루프(Infinite Loop)입니다. 신도들의 광기가 교주를 거쳐 증폭되고, 다시 신도들을 자극합니다. 이대로라면 저들의 파동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그럼 어떡해? 경찰 불러도 소용없어. 저런 종교 단체는 건드리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골치 아프다고!" 황 소장이 발을 동동 굴렀다.
"물리력으로는 안 됩니다. '해킹'으로 서버를 다운시켜야죠."
김경훈이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마크 레빈슨 앰프에 연결했다.
"조 실장. 저쪽 스피커 시스템 주파수 따낼 수 있습니까?"
"네! 저런 야외용 무선 시스템은 보안이 허술해요. 1분이면 뚫어요!"
"좋습니다. 그럼 우리는... 저들의 '리듬'을 깹니다."
조 실장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마성진 교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벌렸다.
"자! 이제 '천년의 빛'을 쏘아 보냅시다! 통성 기도 시작!"
"와아아아아!!"
신도들의 함성이 절정에 달했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건물을 덮쳤다.
사무실의 조명이 깜빡거리고, 책상 위의 물건들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인위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꺄악! 내 다이아몬드!"
황 소장이 굴러떨어지는 보석함을 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팀장님! 무서워요! 귀가 터질 것 같아요!]
탱고가 괴로워하며 짖었다.
김경훈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압력이 너무 강했다. '집게'로 끄집어내기에는 상대의 덩어리가 너무 컸다. 스승의 말대로, 거대한 파도는 집을 수 없었다.
'받아넘겨야 해... 흐름을 타야 해...'
김경훈은 눈을 감고 메트로놈의 소리를 떠올렸다.
똑... (공백)... 딱.
저들의 함성에도 '빈틈'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합창이라도, 숨을 쉬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파동과 파동 사이의 미세한 '정적'.
김경훈은 JH 오디오의 차음성을 믿고, 외부 소리에 집중했다.
박 PD의 선창, 신도들의 복창.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스피커의 잡음.
찾았다.
박 PD가 숨을 들이마시는 0.5초의 순간.
신도들이 다음 구호를 외치기 위해 입을 벌리는 그 찰나.
"조 실장! 지금이야! '역위상(Anti-phase)' 신호 송출!"
조 실장이 엔터키를 눌러 GBI에서 가져온 고주파 발신기를 작동시켰다. 동시에 김경훈은 마크 레빈슨 앰프를 통해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밖으로 쏘아 보냈다.
그 소리는 '공격'이 아니었다.
아주 미세한 '딜레이(Delay)'였다.
박 PD의 마이크 소리가 스피커로 나올 때, 0.2초 정도 늦게 나오도록 조작한 것이다.
노래방에서 에코가 심하면 박자를 놓치듯, 자신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늦게 들리면 사람은 말을 더듬게 된다.
"악마를... 처단... 처단... 하라... 하라... 어? 어?"
박 PD의 멘트가 꼬이기 시작했다.
선창자가 버벅거리자, 신도들의 구호도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물러... 가라... 가라? 가..."
리듬이 깨졌다.
일사불란하던 파동의 정렬이 흐트러지며, 거대했던 에너지가 서로 부딪혀 상쇄되기 시작했다. '공명'이 깨진 것이다.
"이... 마이크가 왜 이래!"
박 PD가 마이크를 두드렸다. 퍽, 퍽 하는 소음이 불쾌하게 울렸다.
그 틈을 타, 김경훈이 두 번째 수를 뒀다.
그는 아스텔 앤 컨에 저장해 둔, 아주 특별한 음원을 재생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7살 은아의 '장례식장 울음소리'에서 추출한, 인간의 가장 본원적인 '슬픔(Fm)'의 파동 샘플이었다.
그 소리를, 신도들이 듣고 있는 '스피커' 주파수에 섞어서 흘려보냈다. (조 실장의 해킹 덕분이었다.)
... 으허엉... 할아버지... 보고 싶어...
신도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초저역대의 파동. 하지만 그들의 무의식은 반응했다.
광기에 차서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분노가 가라앉고, 이유 모를 슬픔과 허무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집에 있는 아이들은 밥을 먹었는지,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은 왜 나는지...
"어... 엄마..."
맨 앞줄에 섰던 청년이 피켓을 내렸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집단 광기의 'G#' 파동이 순식간에 우울하고 차분한 'Fm' 파동으로 '조율'되어 버렸다.
"이 이 멍청한 것들이! 기도 안 해? 소리 질러!"
마성진 교주가 당황해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흐름은 바뀌었다. 그의 '흡입력'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김경훈이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로로 피아나 코트는 땀에 젖었지만, 표정은 여유로웠다.
"황 보. 지금입니다. '금융 치료' 들어가시죠."
황 소장이 샤넬 선글라스를 끼고 루부탱 힐을 또각거리며 1층으로 내려갔다. (물론 탱고와 조 실장, 그리고 경비업체 직원들을 대동하고.)
그녀는 메가폰을 잡고 시위대를 향해 외쳤다.
"자, 자! 여기 주목! 여러분 교주님께서 방금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신도들이 웅성거렸다.
"저희가 조사해 보니까, 여러분이 낸 헌금 500억이 교주님 개인 계좌로 '승천'하셨더라고요! 여기 입출금 내역서 사본입니다!"
조 실장이 해킹으로 빼낸 마성진의 비자금 장부를 대형 스크린(건물 외벽 광고판)에 띄웠다. 유흥주점, 외제차 구입, 해외 도박 내역이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뭐야? 내 헌금이 룸살롱으로 갔어?"
"이 사기꾼 새끼!"
슬픔에 잠겨 있던 신도들의 감정이 순식간에 교주를 향한 '살의(Real G#)'로 바뀌었다.
"으아악! 아니야! 저건 모함이야!"
마성진과 박 PD는 성난 군중에게 포위되었다. 그들의 '종교'는 '회계 장부'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황 소장이 부른 것이 아니었다. 사기 피해를 깨달은 신도들이 신고한 것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경훈은 마크 레빈슨 앰프를 껐다.
"후우..."
그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번에는 '약'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김 팀장, 대박이야. 신도들이 고맙다면서 사례비를 걷어줬어. 5천만 원!"
황 소장이 현금 뭉치를 흔들며 들어왔다.
"박 PD 놈이랑 교주는 구속될 거고, 천년왕국은 해체될 거야. 건물주님이 시끄럽다고 싫어하셨는데 잘 해결됐네."
[팀장님! 저기 봐요! 핫바 꼬치 케이스가 깨졌어요!]
탱고가 소리쳤다.
아까의 진동으로 유리 케이스에 금이 가 있었다.
그런데... 깨진 틈 사이로 꼬치 막대기가 미세하게 진동하며 '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탄소 섬유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의 '호출'에 반응하는 안테나처럼, 우주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김경훈이 꼬치를 집어 들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파동이 심상치 않았다.
"스승님이 말한 '상어'가...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밤하늘에서 유성 하나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대구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소원은 빌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건 별똥별이 아니라, 우주선일 테니까.
(에피소드 36.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