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아버지
산사의 새벽은 고요하다.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는 법당에서 스님들은 예불을 드린다. 4시에 일어나 하루 한 끼로 족하게 여기며, 일체의 욕망을 내려놓고 도를 구하는 분들이다. 그 절제와 수행의 강도는 범인이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님들을 존경한다.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우리가 걷지 못하는 길을 홀로 걸어가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을 나오는 길에서 나는 다른 생각에 잠긴다.
아버지는 평생 사진관을 하셨다. 몇 년 전 문을 닫을 때까지 40여 년을 한 자리에서 버티셨다. 결혼식이며 돌잔치며, 사람들의 기쁜 날이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고나가셨다. 무거운 장비를 어깨에 메고 하루 종일 서 있어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셨다. 까다로운 손님들 앞에서도 늘 웃으셨고, 밤늦게 현상실에서 사진을 뽑아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사진관 뒤편 좁은 방에서 살았다. 현상액 특유의 냄새가 배어 있던 그 공간에서 아버지는 우리 남매를 키우셨다. 화려한 꿈같은 건 애당초 없으셨다. 그저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그것만이 아버지의 전부였다. 남의 인생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어주며 평생을 보내시면서도 한 번도 허투루 일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하루는 언제나 똑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고, 밤늦게까지 일하시다가 집으로 돌아오셨다. 쉬는 날이라고는 없었다. 명절에도 누군가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찾아왔고, 아버지는 손님들의 행복한 순간을 성의껏 담으셨다.
스님들은 부처가 되기 위해 자신을 비운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비우셨다. 스님들은 산중에서 홀로 정진한다. 아버지는 세상 한복판에서 우리와 함께 견뎌내셨다. 스님들의 수행은 눈에 보이지만, 아버지의 수행은 일상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누가 더 도가 높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도란 세상을 등지고 혼자 완성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도 도다. 어쩌면 후자가 더 어려운 길일 수도 있다. 온갖 유혹과 번뇌가 도사린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무게까지 함께 지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니까.
문 닫힌 사진관 앞을 지나며 생각해 본다. 아버지도 도인이셨다고. 가사를 입지 않고 염주를 들지 않았어도, 당신이 걸어온 길 자체가 수행이었다고.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도를 닦고 있는 것 아닐까.